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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Jul 31. 2020

복직 후 생긴 변화

복직 한 달.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행복한 변화는 남편과 덜 싸우게 된 것이다. 휴직 중에는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작은 다툼, 한 두 달에 한번 정도 큰 싸움을 벌였었고, 날이 선 신경전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 점차 싸움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지난주에 우리 부부는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1) 서로에 대한 기대치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편이 나의 집안일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화장실에 물때가 좀 껴 있어도, 아침은 시리얼 저녁은 치킨을 시켜먹어도 뭐 그럴 수 있지가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밥 짓고, 국 하나 끓이고, 이틀에 한번쯤은 메인 요리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 또한 남편의 집안일/육아 도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도 내가 별로 힘들지 않으니 기대하지도, 그래서 실망하고 화나지도 않게 되었다.


2) 남편은 모르는 나의 사생활

휴직 중에 느끼는 가장 큰 불균형은 남편은 내가 모르는 바깥 생활이 있는데 나는 남편이 익히 아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난 남편이 오늘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얘기를 했는지가 궁금한데 남편은 나에게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 그게 약 올라서 준이가 오늘 어떤 앙증맞은 짓을 했는지를 일부러 말 안 해주는 날도 있었는데, 번번이 내가 참지 못하고 얘기해 버리곤 했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 나니 나한테도 남편이 모르는 재밌는 사생활이 생겼다. 그리고 나의 회사생활은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남편의 것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니 남편도 나의 사생활이 궁금해지는 것. 이제 좀 균형이 맞는다.


3) 여유가 생긴 삶

휴직 중에 그토록 고대하던 내 자리에서의 모닝커피. 그 모닝커피를 드디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커피뿐 아니라 아이 챙길 걱정 없이 고상함을 유지하며 점심밥도 먹고, 짬을 내어 온라인 쇼핑도 할 수 있다. 미국 주식 얘기를 하고 다른 회사 서비스 품평을 하며 어른의 대화를 맘껏 할 수 있다. 이렇게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나도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아들의 칭얼거림을 한 번 더 참고 받아줄 수 있고, 남편의 잔소리 한마디도 몇 번 흘려 넘긴다.


4) 심리상담

우리 회사는 사내에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복직과 함께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상담 예약을 한 것이다. 상담에서 특별히 기대하는 바는 없었고, 심리상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마음 그리고 이왕이면 복직 후 회사 적응에 도움이 좀 될까 하여 신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웬일, 상담 첫날부터 예상과는 다르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회사 얘기, 가족 얘기, 내 얘기를 하나도 거르지 않고 다 쏟아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일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위안일 줄이야. 상담사분은 내 얘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한 단계 나아간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지 못한 나의 깊은 속내가 드러났다. 내가 맺는 관계에는 패턴이 있는데, 거기서 내가 힘듦을 느끼는 부분이 있어 이걸 조금씩 바꿔보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복직은 다행히 우리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위의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아이가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크면 나아진다는 말, 조금만 더 버티면 살 만해 진다는 육아 선배님들의 얘기가 이런 뜻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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