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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ttee Nov 26. 2020

남편과 베타

우리 집에서 지난 한 달 동안, 평균 1주일에 한 마리의 물고기가 죽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총 네 마리의,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조그마한 물고기가 우리 집 변기속으로 사라졌다.


한 달 전쯤, 남편은 아이의 정서를 위해 물고기를 키워 보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남편은 온몸이 루비처럼 빨간, 그리고 꼬리가 캉캉치마처럼 활짝 펴지는 화려한 물고기 한 마리와, 그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위한 것이라기엔 과해 보이는 장비를 양손 가득 사 왔다. 어항에 돌을 깔고, 수족관에서 받아온 물을 넣고 수초로 꾸며주고, 온도계, 여과기, 전등 갖가지 장비들을 달아 루비의 집을 만들어줬다. 남편은 어항을 이렇게 놨다, 저렇게 놨다, 불을 껐다 켰다 한참을 씨름하다 밤늦게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우리는 몸이 돌아간 채 움직임이 없는 루비를 발견했다.

 

남편은 인터넷에서 한참을 찾아보고, 수족관 주인과 수차례 전화를 하더니 '아마도 바닥에 깔아준 산호사가 문제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산호사를 빼고, 어항에 비해 온열기가 너무 큰 것 같다며 장치를 바꾸고, 물고기 영양제 등등을 구매한 남편은 이번에는 온몸이 파란, 역시나 꼬리가 반달처럼 펼쳐지는 ('하프 문 베타'라고 부른다) 물고기를 데리고 왔다. 그 물고기는 하루쯤 잘 노는가 싶더니 점점 움직임이 둔화되어 갔다. 아몬드 잎을 끓여 넣어주고 (베타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급하게 기포기도 사서 넣어주었지만 남편의 걱정과 염려에도 그 아이는 3일 만에 떠나갔다. 하지만 포기할 남편이 아니다. 며칠 동안 베타 관련 많은 지식을 습득한 남편은 치유실로 쓸 어항을 하나 더 준비하고, 더욱 정확한 온도계를 사고, 여과기는 아무래도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며 빼서 다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물고기를 데려왔다. 이번엔 두 마리다.


아이들이 오던 저녁, 더욱 철저하게 적응훈련을 시키고 아이들이 잘 노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헉! 어떡해! 떨어졌어 떨어졌어!!' 남편의 당황한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남편은 편히 잠들지도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물고기가 잘 있나 확인하고 어항 옆 소파에서 다시 잠들었는데, 그 사이 물고기가 어항에서 점프해서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베타들은 7cm까지 점프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가끔 이렇게 '점프死'를 한다고 한다. 발견한 즉시 어항에 넣어줬지만, 힘겹게 숨을 이어가던 그 아이는 결국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또 우리를 떠나갔다. '밥도 잘 먹고 정말 활발했는데.. 생긴 것도 정말 귀여웠는데...' 남편은 하루 종일 그 물고기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다. 다음날, 이번엔 온라인으로 주문한 베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 아이는 한 일주일을 잘 지내다 병에 걸렸고 치유실로 옮겨져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다 지난 주말 우리 곁을 떠났다.


남편이 구비한 각종 베타 영양제, 약, 세 종류의 먹이;;




한 달 전쯤, 남편과 일을 같이 하는 지인이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M, 너는 뭐할 때 행복하니?' 무슨 질문이든 막힘없이 술술 얘기하는 남편이 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40년 동안 '더 잘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고, 인생을 즐기는 일들은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그 즐거움에 빠져버릴까 봐, 그럼 계속 달릴 수 없을까 봐. 가만히 보면 남편이 하는 일 중 '필요 없는 일'은 없다. 무슨 일을 하던 남편은 꼭 필요한, 해야 하는 일을 한다. 가사든, 육아든, 일이든.


그랬던 남편이 조금 변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스포이드와 바가지를 들고 물고기 똥을 빨아내고, 이틀에 한번 수조 물을 갈아주고, 이삼일에 한번 아몬드 잎을 끓여 넣어주는 남편. 낯설지만 이 모습이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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