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자동차의 미완된 설계도를 가슴에 묻고 복귀한 나를 기다린 것은 K자동차의 데이터 모델링 프로젝트였다. '봉고차'가 나라의 언어가 될 만큼 찬란한 역사를 가졌던 대기업이었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는 그 거함을 H자동차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1990년대 중반 K자동차그룹은 재계 8위 대기업으로 소유와 경영 분리가 잘 된 전문경영인 체제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봉고차’를 히트시킨 바로 그 회사다.
봉고차는 차 한 대가 회사를 살리고, 차 이름이 한 나라의 언어가 된 사건이었다. 출시 2년 만에 상장사 순이익 1위 기록을 안겨줌과 동시에, 비슷하게 생긴 타사 승합차들도 아예 다 봉고차라고 부를 정도로 차 이름 자체가 차종의 대명사가 된 사례이다.
그러나 승용차 사업의 취약한 이익 구조와 자동차 외 중공업·특수강·건설·금융까지 확장된 구조 때문에 만성 적자에 시달렸고, 결국 외환위기 국면에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국제 입찰 끝에 H자동차가 최종 인수자로 선정되어 경영권이 이전되었다. 그 후 비자동차 계열사를 대거 청산하고, 인력과 공장을 효율화하며, RV차량에 집중하여 피인수 22개월 만에 회생에 성공했다. 이제는 H자동차보다 수익성이 좋은 브랜드로 성장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데이터 모델링 프로젝트는 H자동차로의 인수 직후, H자동차 CIO가 K자동차 CIO를 겸직하게 되면서 이른 시일 안에 IT시스템 전반에 걸친 조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IBM 컨설팅 그룹이 H자동차의 데이터 모델링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 없이 수주했으니까 절반의 예산과 일정으로 수행하라는 게 CIO의 요구사항이었다.
이번엔 PM도 아니고, 실행 팀원도 아니고, 내 매니저가 ‘자문역’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아서 옆팀에 '대여'해 주었다. 데이터 모델링의 거장 밑을 지키며 H중공업 프로젝트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S자동차 프로젝트에서는 자동차 BOM의 데이터 모델을 실제로 체험한 내가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동차 도메인을 좀 안다는 이유로 덥석 맡게 된 데이터 모델링 강의. 제임스 마틴의 정보 공학론을 부랴부랴 독학하며 교안을 만들었지만, 진짜 문제는 교재나 강의 실력이 아니었다.
차출된 고객사 IT팀 과장들의 표정은 잿빛이었다.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했고, 개인의 커리어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들에게 '엔티티'니 '관계'니 하는 논리 구조는 사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프로젝트는 '하루에 엔티티를 몇 개나 찾아냈느냐'는 저렴한 양적 지표로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품질이 뒷전이 된 현장에서는 정체불명의 데이터 모델들이 잡초처럼 번식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낮 동안 양산된 이상한 엔티티들을 데이터 모델링 원칙에 맞춰 하나하나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검증 작업이 이어졌다. 고객사 멤버들과의 논리 싸움은 날카로웠고, 프로젝트 룸에는 인간적인 유대감 대신 차디찬 원칙의 칼날만 난무했다.
물리적인 고통도 극에 달했다. 고객사가 임대료를 내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사무실의 난방은 가차 없이 끊겼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동토의 방에서 코트 깃을 세우고 손가락 끝부분을 자른 장갑을 낀 채, 무늬만 빨간 전기 히터와 모니터의 열기에 의지해 데이터와 사투를 벌였다.
프로젝트 시작 한 달, 팀은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콩가루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절친이자 PM이 늦장가를 가면서 설 연휴를 끼고 2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빈 자리에 남겨진 것은 얼어붙은 사무실과 서로를 믿지 못하는 팀원들뿐이었다.
영하의 기온보다 더 차가운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 이 붕괴 직전의 전선을 지켜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끼리라도 저녁이나 한 끼 합시다."
그것은 단순한 친선 회식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불신과 불안이 가득 찬, 폭발 직전의 긴장된 압력밥솥 같은 자리였다.
술잔이 몇 차례 돌자, 예견된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특히 고객사 팀 내에서 여론을 주도하던 실력파 과장이자 핵심 인플루언서였던 A과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포문을 열었다.
"자문역님? 우리 회사 사정도 이렇고, 데이터 모델링인지 뭔지 엔티티 숫자나 채우고 있는데, 이게 정말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우리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자문역이라는 타이틀이 좀 과한 거 아닙니까?"
순간 식탁 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난방이 끊긴 사무실보다 더 차가운 정적이 흐르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전문성보다는 '나이'라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컨설턴트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잔을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여기서 밀리면 프로젝트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차분하지만 비장한 목소리로 내 실제 나이를 밝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는 동안이었던 덕분에 다들 나를 아래로 보고 있었으나 사실 그들보다 형이었다.
"토끼띠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보다는 제가 형인 것 같은데, 이제부터 나이로 모실까요, 아니면 데이터 모델링 원칙으로 모실까요?"
A과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홍길동과 서당개 컨설턴트로 시작해 여러 해 치열한 현장에서 다져진 내공에서 나온 역공은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기선 제압은 성공적이었다. A과장의 "아이고 형님! 얘들아, 형님께 인사드려!" 소리와 함께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우리는 그 길로 2차, 3차 끝장 술자리로 이어졌다. 나이로 서열이 정리되자, 비로소 속마음들이 터져 나왔다.
불투명한 미래, 의미없는 지표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회사의 새 주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밤새 받아내며 했던 "나잇값 하겠다."는 선언은, 단순히 서열을 잡겠다는 뜻이 아니라 "형으로서 이 프로젝트 제대로 마무리해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난방은 나오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룸의 공기는 어제와 달랐다. 콩가루처럼 흩어지던 멤버들이 비로소 '우리 팀'이라는 끈적한 화학적 반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PM은 없었지만, 그 빈자리를 메운 건 나이라는 한국적 정서와 밤새 나눈 진심 어린 술잔이었다.
프로젝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엔티티의 개수가 아니라, 정보의 구조와 관계가 중요해졌다. 현업을 잘 알고 있는 멤버들이 데이터 모델링의 원칙을 배우니 속도와 품질에 박차가 가해졌다. H자동차 데이터 모델과의 형식적 비교도 무의미해졌다.
2주간의 달콤한 신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PM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달라진 공기에 놀랐다. 떠날 때만 해도 서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던 콩가루 팀이 아니었다.
여전히 난방도 안 들어오는 추운 사무실이었지만, 고객사 과장들과 컨설턴트 팀이 머리를 맞대고 엔티티의 관계도를 치열하게 논쟁하는 모습은 그에게 가히 놀라움이었을 것이다.
"헬로 자문역, 나 없는 2주 동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그의 물음에 그저 씩 웃어 보였다. 마법은 없었다. 그저 '나이'로 튼 물꼬에 '진심'을 술잔에 채웠을 뿐이었다.
중간 보고회 날짜가 잡혔다. 통합 CIO가 참석하는, 그야말로 프로젝트 멤버들에 대한 첫 평가가 걸린 자리였다. 보통 이런 자리는 컨설턴트가 총대를 메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고객사 팀원들이 먼저 손을 들었다.
"우리가 직접 발표하겠습니다. 우리 시스템이고 우리 데이터니까요. IBM 팀은 저희 전문 분야가 아닌 자료 작성이랑 리허설을 좀 도와주세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수동적으로 엔티티 숫자나 채우던 그들이, 이제는 H자동차 데이터 모델과의 차이점까지 분석하고 그 의미를 스스로 도출해 내고 있었다.
발표 리허설만 10번 넘게 반복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불안한 피인수 기업의 직원이 아닌, 데이터 전문가의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PM도 나도 주말을 반납한 채 진심으로 그들을 도왔다.
보고회 당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발표가 이어졌다. 현업의 업무 흐름과 맥락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발표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발표가 끝나자 장내에는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CIO의 입에서 뜻밖의 찬사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받아본 수많은 프로젝트 보고회 중 가장 훌륭했습니다. 외부 컨설턴트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 직원들의 고민과 통찰이 생생하게 느껴지는군요."
그 한마디에 지난 두 달간의 추위와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보고회가 끝나자마자 CIO는 우리를 근처 참치집으로 이끌었다. 점심때부터 시작된 낮술은 오후 내내 이어졌다.
난방조차 끊긴 사무실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 그들과 나누는 소주 한 잔은 그 어떤 명술보다 달콤했다.
자문역으로 시작해 형님으로 끝난 이 프로젝트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걷게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