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쓰잘데기 없는 지지배여도......

by 운촌

쓰잘데기 없는 지지배여도......


우리 반에는 후남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들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그 시절 시대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영주, 영숙, 숙이...... 이런 이름이 아니라 후남......

딱 봐도 남동생 보기 위해 딸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딸이 많으셨어요? 남동생 기다리며 지어주신 이름 같은데......”


“맞아요. 큰 집이랑 우리 집 모두 세 집에서 내리 딸만 여섯이 있었는데 내가 남동생을 봐서 우리 할머니가 나는 지지배여도 이뻐해 주셨지요.”


역시나!!! 였다.

딸은 살림 밑천이라거나 오빠나 남동생을 서브하는 존재로서 가치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쓰잘데기 없었던 지지배들은 그래서 공부할 기회도 없었다.

자신이 귀한 존재인 줄도 모르고

오빠를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


후남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수학을 잘하신다. 지금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학교를 다녔다면 똘똘한 이공계 여성 인재가 되었으리라.


나도 1남 5녀의 딸 부잣집 둘째 딸이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호랑이 태몽을 꾸셨단다. 커다란 엄마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 셋을 데리고 오는 꿈. 꿈을 깨서도 호랑이는 새끼를 두 마리까지만 낳는데 이상하다 생각하시며 친하게 지내던 동네 할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배속에 지지배 들어있고, 지지배 동생 셋을 보겠네!”


허걱! 아들 하나 더 낳으려고 기대하던 엄마는 매우 실망하셨고 며칠 동안 서운해서 그 할머니랑 말도 하지 않으셨단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히다. 나는 건강하고 튼튼한 둘째 딸로 태어났고 여동생 셋을 보았으니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실망을 준 존재라는 사실을 내가 몇 살 때 눈치챘을까? 내 아래로 내리 여동생 세 명이 태어날 때마다 부모님의 실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작아진 오빠 옷을 나에게 입히고, 머리를 빡빡 밀고, 아들처럼 걷게 하고...... 그렇게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나를 아들인 척 키우셨다.

몇 장 안 되는 어린 시절 흑백 사진 속에 언니와 여동생들 사이에 있는 이상하고 꺼벙한 어린 남자아이.

그게 나였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어린 여자애는 도대체 몇 살부터 했을까?


어쩌면 열심히 공부하고 착한 딸이 되려고 애썼던 동기에는 그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오빠보다 더 나은 성적표로 부모에게 인정받으려는 어리고 욕심 많은 계집애의 슬픈 몸부림이 있지 않았을까?


참으로 속상하고 슬픈 이야기다.


지금이야 제사 문화도 점점 없어지고 여자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면서 아들 선호 문화가 많이 없어졌다. 오히려 딸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노후에 더 외롭고 딸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우리 엄마만 봐도 그렇게 당신에게 실망감을 줬던 다섯 딸들로부터 노후에 살뜰한 보살핌을 받고 계시지 않은가?


쓰잘데기 없는 지지배들이 아닌 것이다.



동백.png 그림 by 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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