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을 위한 학교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보인다. 모두 열심히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는 차이가 난다. 배움이 느린 학습자들 속에서도 교사의 말에 오래 집중하고 배움에 대한 의지가 있는 분들을 가끔 만난다.
숙이 어머니도 그중 한 분이다.
늘 웃는 얼굴로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는 인상이다. 처음으로 응시한 검정고시에서도 바로 초등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중등반으로 올라가셨다. 쓰는 속도가 조금 느려 걱정이긴 하지만 이해력도 빠르고 지적 호기심도 있으니 중등반에 올라가서도 잘 따라갈 것이다.
숙이 어머니가 아주아주 옛날 결혼하기 전 추억을 들려주셨다.
그때는 신랑이 될 사람의 얼굴도 안 보고 부모님이 맺어준 짝과 결혼하던 시절이었다. 나의 아버지도 어른들이 정해주신(은진 송 씨 양반집 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지만) 신부의 집에 가서 부엌을 지나며 반짝거리는 솥뚜껑과 부뚜막을 보고 살림을 잘할 것 같다는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신부가 될 여자의 인상이 아니라 솥뚜껑과 부뚜막을 보고 왔다니... 지금의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결혼을 앞둔 아가씨였던 숙이 어머니에게 약혼한 신랑이 보내온 러브레터 이야기를 들어보자. 멋진 글씨로 쓴 편지에는 정성껏 그린 새 세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 시절에는 예쁜 편지지도 없었으니 이렇게 직접 그림까지 그려 넣어 편지를 보낸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 서랍 속에도 아버지가 직접 그리신 삽화와 그 시절 유행가 가사가 아버지의 멋들어진 글씨로 적힌(돌아가신 나의 친정아버지는 글씨를 매우 잘 쓰셨다. 나훈아나 이미자의 노래 가사를 적은 어른의 글씨가 난 참 좋았다.) 커다란 노래책이 있었다.
막 글씨를 깨우친 어린 나는 그걸 매일 읽고 써보며 달달 외우기도 했었다. 안방 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의 필체를 흉내 내며 어른 글씨를 써보는 것이 큰 놀이 중 하나였다.
글을 읽지 못했던 숙이 어머니는 그 동네에 사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인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매우 난감했다고 한다. 글을 못쓰는 것을 들키고 싶지는 않고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더듬더듬 그림을 그리듯이 편지를 써서 답장을 보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 나이에 한 자 한 자 배워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글씨를 다 읽을 수도 있으니 이제 어딜 가도 당당하다고 말씀하신다.
숙이 어머니가 더 일찍 글을 배웠으면 세상 사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숙이 어머니가 글을 못 써서 가장 답답했던 순간들을 말씀해 주셨다. 오랜 기간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주문 전화나 문의 전화를 받게 되면 통화를 하며 중요한 메모를 해야 할 때가 당황스럽고 힘드셨다고 한다.
바로바로 글씨를 적지 못하니 대충 그리듯이 메모해 놓고 통화가 끝나고 보려고 하면 뭐라고 메모한 건지 어려웠던 순간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누구에게는 당연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이렇게 절실하고 소중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공부의 기회를 함께 하니 나는 또 얼마나 귀한 일을 하는 것이냐...
나의 시간과 재능을 참 잘 쓰고 있구나!
김 선생 잘하고 있네...
자신이 새삼 기특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