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늦게 사는 연습

I패랭이꽃의 행복 감각들I

by 작가 기안장


젊었을 때였다. 작은 사무실 벽에‘세상을 바꾸자’는 거창한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이유였다. 그 문구가 마치 사는 것을 대변하는 정답처럼 느껴졌다.

한 번쯤 당찬 꿈을 이루고 싶다는 욕망, 감당하기 어려운 거창한 꿈의 성취를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커다란 착각이었다. 더 큰 집,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돈을 얻는다고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막연한 생각 속에서 그려놓았던 인생 이미지였다.

하지만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알게 되었다. 세상은 더 바쁘게, 더 경쟁적으로 살 것을 요구하지만, 진짜 행복은 마음의 여유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나에게 속삭이는 시간의 틈에서 진짜배기 나를 만날 수 있다.

인생의 쉼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의 숨결이 숨어 있다.

마음의 여유, 단 하루 중 몇 초라도 숨을 길게 들이키며 나를 붙잡는 시간이다. 새벽 공기의 차가움이 목을 지나며, 정신을 맑게 하던 순간이었다. 나를 지키는 중심 잡기였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거나, 복잡한 상황 앞에서도 깊이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회복하던 충전의 시간이었다. 삶의 에너지를 채워 놓았을 때,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충분히 이 순간을 즐길 수가 있다.


한때지만, 생활 속의 여유를 게으름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게으름은 멈춤의 시간이었고, 여유는 비워냄의 상태였다. 마음을 쉬게 하고 새롭게 에너지를 비축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는 여유였다.

부지런히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언젠가 과중된 피로와 번아웃burn-out이 찾아온다. 게으름이 지나치면 삶의 활력이 떨어지고, 실패의 늪으로 끌려가는 뼈아픈 현실이 다가온다.

사실 여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급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보다, 조용히 길을 걸으며 풍경과 바람, 사람과의 관계를 음미하는 능력.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내면의 쉼터이다.

이럴 때,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찾아온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부족함 속에서도 풍요를 바라본다.

바쁘게 사는 것보다 의미 있게 사는 것을 마음에 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평안함을 즐기는 마음의 상태다. 무언인가를 거창하게 이루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 진짜 행복은 여유라는 호흡에 숨어 있다.


“마음이 급할수록 삶은 멀어진다. 여유를 가질수록 행복은 가까워진다.”


문득 그 오래된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하루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사람이 되었다. 행복은 무엇을 더 가지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조급해지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상태였다. 마음이 여유롭게 쉬고 있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내면의 기쁨이다.

오늘 하루, 조금 늦게 걸어가도 괜찮다. 그 느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 행복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박자 늦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도 자주 서두르지만, 그럴 때마다 숨을 고른다. 그 순간만큼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용히 내 안에 머물고 있는 온화한 미소다. 직선보다는 곡선의 삶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작은 여유 속의 행복감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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