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패랭이꽃의 행복 감각들I
“네, 고향이 강릉이죠?”
그 한마디에, 다시 내 말투를 의식했다. 누구나 허점을 숨기고, 완벽해지길 꿈꾼다. 하지만 내 허점은, 나를 붙잡아주는 작은 표식이었다.
“네가 인간 같아서 좋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이었다. 처음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말 끝에 숨은 뜻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완벽하지 않고 흠이 많은 인간이라서 좋다.”
칭찬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나의 결점을 톡톡 건드리는 손가락질 같았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움츠리게 만드는 그림자가 되곤 했다.
내게 가장 큰 허점은 사투리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면, 가슴이 쿵 내려앉고 강원도 산골의 투박한 억량이 불쑥 튀어 나왔다. 누군가는 농담처럼 “어디서 왔는지 단번에 알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벼운 농담이었을지 모르지만, 날카로운 화살처럼 가슴에 와서 박혔다.
그럴 때면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스스로를 ‘강원도 촌놈’이라고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곤 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더욱 심각했다. 말투 몇 마디만으로 고향을 맞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출신이 허점처럼 달라붙어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저, 고향이 강릉이죠?”
“아니요. 태어난 곳은 대관령입니다.”
짧은 대답 속에서도 말투는 나를 건드렸다. 다른 지방 사투리를 섞어 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유독 투박한 사투리를 결점처럼 여겼다. 밤마다 모나미 볼펜을 입에 물고, 거울 앞에서 같은 문장을 열 번씩 되뇌었다.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고향 정취를 품고 있었다. 글로 표현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 어딘가 어색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투리는 결함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다. 내가 지나온 길에 남아 있는 고향의 흙냄새 같은 것. 허점은 숨겨야 할 상처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답게 붙잡아주는 삶의 무늬였다.
사람들은 깨끗한 유리잔보다, 손때 묻고 약간의 금이 간 도자기처럼 어딘가 허점이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진짜이고, 부족하기에 더 다정해진다.
무척이나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발표를 앞두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입술이 떨렸다. 마이크 앞에서, 내 말투가 나보다 먼저 나갈까 봐 두려웠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부족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허점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완벽할 수 없기에 사람다운 것이고, 허점을 드러낼 수 있기에 조금 더 자유롭기도 하다. 허점을 품고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마음,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조금 더 자유로워지며 조금 더 나에게 다가갈 수 있다. 말투도, 행동도, 마음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허점은 가끔씩 나를 흔든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운명적인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