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상처받을 순 없다
팩트리어트 미사일.
나의 불주둥이를 가리켜 남편이 지어준 별명이다.
팩트 폭력도 폭력이라고, 그 주둥이 멈춰! 뭐 이런 대화가 오가던 중이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어서 웃고 넘겼다.
치와와는 결코 참지 않는다고 했던가.
나는 시방 위험한 치와와다.
나라고 왜 억울한 순간이 없었겠는가.
최저 시급은 무슨, 인근 업주들이 담합한 금액이 내 노동의 가치려니, 무슨 횟집의 '시가'처럼 일하던 20대 초반.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서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에 웃지 않고 감히 일을 했다며 내게 가르침을 내려주겠다던 꼰대 부장.
몇 년을 일하던 그곳을 그만두던 순간에조차 차마 정치질에 신물이 나서 떠난다고는 말 못 하고 그저 내 탓이려니 하고 나오던 날의 심정.
차라리 맑은 눈의 광인이고 싶었던 많은 시간들이 쌓여 중년의 나는 불면의 밤마다 되받아치지 못한 과거에 또 한 번 상처받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왜 무엇도 잊지 못하는 걸까.
딱 어느 순간부터라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나 혼자 받고 넘어간 상처들이 쌓여 샤워를 하다가도, 잠 못 드는 밤에도, 그냥 어딘가에 이동하는 시간에도 울컥 화가 났다.
그날 하루 별 다른 일 없이 평범했어도, 기대하던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도 한 번씩 불쾌한 감정이 밀려드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당혹스러웠다.
몇 년 전 그때 이렇게 받아쳤으면 좋았을 걸 싶어 뒤늦게 온갖 대사 연습만 하고 있자니 이건 뭐 거의 병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바로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한 모욕감과 분노, 수치가 조금만 흔들려도 속을 흙탕물로 만드는 격이었다.
그런데 이 성질에 늘 참고당했을 리 없었다.
분명 적절히 맞받아친 적도 있었고, 아예 한 방 먹여줬다 싶은 통쾌한 순간도 있었으며, 소심하게나마 할 말은 하며 도망갔을 때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그리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결국 문제는 나만 당했다는 분한 마음 같았다.
20년이 지난 일도 여전히 분할 거라면 어쩌겠나.
나도 살아야지.
마침 새치도 심하겠다, 동안도 아니겠다 이제 노인정만 아니면 뭔 말 같지도 않은 나이 타령도 제낄만하고, 겸사겸사 나는 더 참지 않기로 했다.
나만 상처받고 속상해하느니 상대에게 일말의 당혹감이라도 심어주고 싶은 거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네가지가 없어지나?
이제 어리다고 눈치 볼 게 없어서?
아니면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니까?
'요즘 젊은이는 참지 않긔.+중년은 이제 참지 않겠어!+나는 원래 안 참는 꼰대야.'가 더해져서 이 사회가 점점 더 지랄병이 나는 건가!
공평하게 서로 맥여주는 사회, 이런 공평도 공평인가?
그렇다면 무서운 일이다.
지랄이 대물림 되는 중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 다정함이 이긴다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어쩌면 외눈박이 세상의 두눈박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겁한 나는 외눈박이 세상이라면, 외눈박이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