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라는 이름의 짐을 내려놓을 때

자식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수많은 부모님과..

by 조이

자식은 독립된 타인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부모라는 이유로 마음을 다 쏟지만

그 마음이 항상 같은 크기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차갑게 명확한 엄마가

애매하게 마음 쓰는 엄마보다 덜 미움받는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관계다.

그래서 기대를 줄여야 산다.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나를 이해하겠지.’


이런 미련이 고개를 들 때마다 멈춘다.

담담하게 선을 긋는다.


내 마음의 크기로 아이를 재단하지 않을 때,

비로소 아이도 나도 숨을 쉴 수 있다.


침묵은 감정을 식히는 가장 고요한 도구다.

즉각적인 반응을 경계하자.


서운함이 밀려올 때

굳이 서둘러 말할 필요는 없다.

서둘러 답장할 필요도 없다.


시간은 날 선 감정을

가장 부드럽게 식혀주는 도구다.


‘내 자식은 성인이다.’

이 서늘한 인식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의 바탕이 된다.


기대가 줄면

오해도 줄어든다.


내어주는 마음이 줄면

돌아오는 상처도 줄어든다.


거리 두기를 하면

자식과의 관계만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 전체가 가벼워진다.


이것은 차가워지는 것이 아니다.

뜨거웠던 집착이

제 온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할 아이는 하고, 안 할 아이는 안 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과하게 주지 않으면 빼앗길 것도 없다.


이것은 냉소가 아니다.

삶의 균형이다.


할 아이는 한다.

안 할 아이는 하지 않는다.


지금 내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훗날 갑자기 달라질 기적은 흔치 않다.


반대로

말없고 무뚝뚝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곁을 지키는 아이도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얼마나 잘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자식의 효도는

보상받아야 할 적금이 아니다.


이미 어린 시절

재롱으로 다 받은 선물이라 여기자.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면

오늘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는

오지 않은 미래에

삶을 저당 잡히게 된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까지

걱정을 안고 살기에는

우리의 시간은 너무 짧다.


그 허무함은

훗날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제는

자식이 아닌

‘나’를 위해 오늘을 채운다.


자식을 위해 살던 시간을 내려놓는 순간

내 삶은 다시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