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고개를 드니, 한 해의 절반인 8월이다. 분명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애석하게도 상반기를 되돌아보면 쉼 없이 일한 기억만 가득하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은 연간 1천915시간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였다. 근로시간이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다. 노동시간이 긴 우리에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단연코 여름휴가다. 여름휴가는 쉼 없이 달려온 우리에게 주어진 짧지만 달콤한 보상이다. 휴가의 사전적 의미는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이다. 하지만 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달랠 틈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휴가는 일을 쉰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쉬면서 몸과 마음을 돌본다는 의미까지 확장할 수 있겠다.
다들 휴가에 진심이다. 여행 성수기인 여름에는 비행기 티켓은 이미 매진이고, 휴양지는 어딜 가나 사람이 붐빈다. 올해 여름 휴가 기간을 정해놓은 한국 기업들의 평균 여름휴가 일수는 3.7일로 짧은 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짧은 휴가 기간에 긴 노동시간의 고되고 지친 마음까지도 서둘러서 달래야 한다. 작고 소중한 휴가이기에 집에서 보내기엔 아쉽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다 보면 짧은 휴가 내내 빼곡하게 일정을 채우게 된다. 자칫하면 여름휴가가 또 다른 노동이 되어 피로가 더욱더 누적된다.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면서 지혜롭게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어제와 같은 오늘입니다.’ 심보영 그림책 『식당 바캉스』(2019,웅진주니어)의 첫 문장이다. 그림책 속 주인공이 사람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다. 겨우 도착한 사무실엔 서류가 산더미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쳇바퀴를 도는 것 같다. 그때 야옹 사장님이 주인공에게 ‘식당 바캉스’ 티켓을 건넨다. 이름부터 이색적인 ‘식당 바캉스’는 어떤 곳일까? 그곳은 모든 것이 음식으로 만들어진 맛있는 상상력이 있는 곳이다. 따끈한 붕어빵 버스를 타고 가면 ‘식당 바캉스’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따끈한 어묵 온탕, 시원한 냉면 온탕 있다. 비빔밥 재료들의 고소한 공연도 있다.
주인공은 ‘식당 바캉스’에서 쇼핑도 하고, 꿀잠도 자고, 한바탕 즐겁게 논다.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맛있는 음식이다. 주인공은 짜장면을 먹으며,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린다. 음식은 주인공을 어린아이로 만들고, 그때 그 시절 포근했던 추억을 되새긴다. 음식이 주는 위로는 크다. 소울 푸드 Soul Food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음식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지친 영혼을 달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잘 먹는 것은 어린 시절 우리에게 제일 중요했던 미덕이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음식의 맛을 즐기기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끼니를 대충 때우기에 바쁘다. 심보영 그림책의 <식당 바캉스>는 고된 일상에 음식이라는 유쾌한 상상력 한 스푼을 휴식으로 건넨다.
이진희 그림책 『도토리 시간』(2019,글로연) 은 ‘아주 힘든 날이면 나는 작아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소용돌이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이유가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고 지치는 순간이 있다. 작고 쪼그라든 마음과 함께 주인공의 크기도 물컵보다 작고 작아진다. 그리고는 ‘여행을 떠날 시간이야.’라고 말한다. 작아진 주인공에게 일상 속 사소하고 평범했던 사물들은 만만치 않은 여행길이 된다. 빵은 거친 계곡 길이 되고, 책은 희미한 숲속이 된다. 마음이 지칠 때는 평범한 일상의 무게 또한 견딜 수 없게 버겁다. 주인공은 일상을 떠나 하염없이 어디론가 향한다.
주인공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도토리 속 작은 방이다. 도토리 집에서 주인공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푸른 들판에 뒹굴기도 한다. 그렇게 도토리 시간, 자기 위로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 누구에게나 도토리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을 돌아보고 달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진희 그림책 『도토리 시간』(2019,글로연)은 자연 속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휴식을 말한다.
개개인의 성향마다 휴식의 방식은 다르다. 분명한 건 몸과 마음이 지칠 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보영 그림책 『식당 바캉스』(2019,웅진주니어)처럼 음식을 통해 휴식을, 이진희 그림책 『도토리 시간』(2019,글로연)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쉬어가자. 지친다면 잠깐 땅바닥에 주저앉아도 괜찮고, 한바탕 엉엉 소리 내어 크게 울어도 괜찮다. 훌훌 털어내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어떤 방식이든 좋다. 잘 쉬고 난 뒤 툴툴 털어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좋은 휴식은 그때 그 추억으로 다시 일상을 버티게 해주거나, 일상을 다시 씩씩하게 지켜나갈 힘을 준다. 올해 여름, 잠깐 쉬어가자.
<팽샛별의 심심 心心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 팽샛별이 공감과 치유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원수문학관 소식지 <꽃대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다채로운 세상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팽샛별
그림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여보세요?>(2017,위즈덤하우스), <어떡하지?>(2017,그림책공작소)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