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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20. 2024

왁자지껄 한글 그림책



   한글은 호흡 같다. 아침에 눈 떠서 눈감기까지 일상 속 모든 순간에 한글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눈 떠서 챙겨 먹는 아침 식재료의 상표들, 대중교통의 안내방송, 상가의 간판들, 책상 앞 서류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들, 그림책 작업을 기획하는 일도 모두 한글이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한글을 쓰고 있다. 외국의 낯선 언어 환경에 동떨어지지 않는 이상, 한글은 호흡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한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그런 한글의 탄생과 의미를 기념하는 위해 만들어진 날이 바로 10월 9일 한글날이다. 한글날 기념 원고를 쓰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한글에 대한 감사함은 잠시뿐, 한글날을 출근하지 않는 공휴일로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라 고백한다.



   한글은 소리와 시각적, 의미적 요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멋진 글자다. 자음은 소리와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소리를 낼 때 혀나 입술, 이, 목구멍이 어떤 모양인지 생각해서 만들었다. 예를 들면 ㄱ과 ㄴ은 혀가 입안에서 구부러지는 모양이다. 모음은 우주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 ‘ㅣ’는 서 있는 사람, ‘ㅡ’은 평평한 땅, ‘·’은 둥근 하늘을 표현했다. 사람, 땅, 하늘이 화합하는 동양철학을 담았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서 만들어진 한글은 그림책과 많이 닮아있다. 그림책 또한 글자를 소리, 시각, 의미요소를 두루두루 잘 활용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글자를 이미지로 형상화하거나, 말놀이를 통해 리듬감 있는 언어를 구사한다. 또한 그림책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담는다. 그림책이야말로 한글을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장르다. 한글을 흠뻑 즐기는 그림책 세 권을 소개하려 한다.          





-이호백 그림책 『한글이 된 친구들』(2014,재미마주)

    


   이호백 그림책 『한글이 된 친구들』 자음과 모음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기발한 그림책이다. 한글을 블록처럼 사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작가는 자음 ‘ㅇ’과 ‘ㅊ’을 결합해 사람 형상으로 표현하는데 꼭 상형문자 같아 보인다. 모음 ‘ㅣ’와 자음 ‘ㅇ’, ‘ㅋ’가 모이면 어떤 이미지가 될까? 앞표지에 등장하는 토끼가 완성된다. 자음과 모음이 자유롭게 재구성되어 한글 친구들로 재탄생한다. 꽃, 나비, 잠자리, 강아지 등 다양한 이미지로 변신한다. 그렇게 탄생한 한글 친구들은 함께 즐거운 소풍을 떠난다. 위 그림책은 한글을 시각적 요소로 재해석하는 신선함이 있다. 한글은 소통으로써의 언어의 기능뿐만 아니라, 디자인적 요소로써도 아름답다. 위 그림책은 한글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조형적 잘 나타낸 작품이다. 한글을 처음 익히는 사람들에게는 자음과 모음을 놀이처럼 익힐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윤정미 그림책 『도시 가나다』(2022,향출판사)



  윤정미 그림책 『도시 가나다』 또한 한글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밌게 표현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익숙한 도시의 장소 곳곳에는 한글이 보물찾기처럼 숨어있다. 첫 페이지에는 커다란 다리가 시원하게 뻗어있고, 그 위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자세히 보면 다리가 한글 ‘가’처럼 보인다. 그림책 글도 재밌다. ‘O’로등이 잠들면 도시가 기지개를 켜요. 그림 속에서 그림이 된 한글을 찾아보고, 그림책 글에서는 빈 글자 안에 들어갈 글자를 채워보는 방식으로 한 페이지가 구성된다. 도심 속 높다란 나무들 사이 이야기 나누기 좋은 벤치가 한글 ‘나’가 되기도 하고, 하늘까지 치솟은 높은 빌딩이 한글 ‘다’가 되기도 한다. 한글 ‘가’에서부터 시작해서 ‘하’까지 글자를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 한글에는 도시의 색깔과 모양을 담았다. 모두가 바쁘고 스쳐 지나가기 쉬운 도시 속 무심코 숨겨진 한글은 도시를 환기하고 일상 속 다채로움을 되찾는 역할을 한다.           







-한연진 그림책 『옥두두두두』(2022,향출판사)



    한연진 그림책 『옥두두두두』는 말놀이 그림책이자, 타이포그래피를 재밌게 표현한 책이다. 타이포그래피는 편집 디자인에서 활자의 서체나 글자 배치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위 그림책은 옥수수 씨앗이 자라서 밥상에 오르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옥수수’라는 글자가 장면에 따라 확장하고 변형한다. 옥수수 씨앗이 자라는 그림과 함께 글은 ‘슈슈슈슈’라고 적혀있다. ‘슈슈슈슈’라는 글자가 점차적으로 커지는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했는데, 옥수수가 자라는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옥수수가 영글어서 떨어지는 모습은 글자 ‘옥두두두’로 표현했다. ‘옥두두두’라는 글자는 입으로 발음해보자. 위 단어는 총을 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타이포그래피 또한 사방으로 발사하는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소리 단어를 통해 내용을 잘 전달한다. 팝콘이 되어 튀겨지는 모습은 글자 ‘옥두둑’으로 표현한다. 옥수수에 귀 기울여보면 이런 다양한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고마운 먹거리가 되는 과정을, 말놀이를 통해 리듬감 있게 표현했다. 한글을 눈으로 보고 소리내어 읽으면 더 재밌는 그림책이다. 




  그림책 속 한글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그림책 속 한글의 변신은 무궁무진하고 실험적이다. 그림책 속 한글은 그림이 되어 신선함을 주고, 말놀이를 통해 한글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한 그림책 속 한글은 모여 문장이 되고 글이 되어 문학적 의미를 전달한다. 이를 통해 그림책은 한글의 깊이감과 정서적 울림을 선사한다. 그림책은 한글과 왁자지껄 한바탕 즐겁게 논다. 한글을 해체하기도 하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한바탕 잘 놀고 나면 한 뼘 더 자라는 것처럼 그림책 속 한글과 한바탕 잘 놀고 나면 한글의 깊은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한글날, 한글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그림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팽샛별의 심심 心心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 팽샛별이 공감과 치유가 담긴 그림책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원수문학관 소식지 <꽃대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정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다채로운 세상과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팽샛별

그림책작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여보세요?>(2017,위즈덤하우스), <어떡하지?>(2017,그림책공작소)가 있습니다.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한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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