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데이터 과학자로 첫 출근하던 날

소호

by 시상
"El Dia de la Suerte!"


이 말은 내가 자주 쓰는 스페인어 표현으로, 직역하면 '운수 좋은 날' 정도의 뜻이다. 미국에 살면서 황당한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니, 오늘은 그냥 운이 좋은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Hmart에서 과자 몇 봉지를 사겠다고 긴 줄 뒤에 서서 계산을 기다리다가, 옆 계산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줄 때처럼 말이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리쿠르터들에게 콜드메일을 보내고, 언제 잡힐지 모르는 면접을 대비해 예상 질문들을 정리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3년 차 직장인이었고,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위해 이직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녹록지 않은 미국 취업시장에 벽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인터뷰 일정이 빠르게 잡혔다. 그렇게 2주 만에 기술 면접과 임원 면접까지 모두 마쳤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세계 최대 도시 뉴욕에서 일할 수 있는 오퍼레터를 받게 되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미국 전역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내가 속한 팀은 미국 전역에 유통되는 generic drug(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을 데이터로 분석해 최적의 가격을 찾는 일이 하고있었다. 약값 하나를 정하기 위해 복잡한 통계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회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이전 회사보다 더 큰 책임감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역할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뉴욕에서의 첫 출근 날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렜다. 새 오피스는 소호에 위치에 있었는데, 덕분에 아침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뉴요커들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미리 배송받은 카드 배지를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을 마주쳐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내 책상을 찾고 회사 내부를 둘러보던 중 루프탑 라운지를 발견했다. 그곳에 그곳에 올라간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앞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이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브루클린 브리지, 왼쪽에는 허드슨 강이 보였다. 뉴욕은 안에서 보는 것보다 위나 바깥에서 바라볼 때 더 멋있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동료들과 CAVA(지중해식 음식점)에서 점심을 픽업해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며, 이 오피스가 제공하는 가장 큰 복지는 어쩌면 이렇게 멋있는 전경을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소호 스프링 스트릿 역으로 더 많은 패션 피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나는 노트북을 챙겨 집으로 향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잠시나마 뉴요커들만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운이 참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이런 날이 가끔은, 정말로 찾아온다. 긴 줄에서 계산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옆 창구가 열리는 것처럼.

Picture1.png 회사 라운지에서 찍은 맨해튼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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