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낭만, 나의 혼란
"덜썩 큰 가시네가 일찍 일찍 다니지 않고 밤길 무서운데 늦게까지 돌아다닌다는 거야!"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엄마는 크게 소리 질렀다. 손에 든 휴대전화가 큰 소리에 가늘게 진동했었다.
웅크리고 잠든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다 문득 케이는 철민과 만나 저녁을 먹다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케이 모녀는 서로 안부 전화하는 사이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시 집에 들어가 살기도 했고 케이의 엄마는 항상 용건만 간단히 였다. 물론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케이는 휴대전화 저편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거친 소리가 창피했다. 옆 테이블까지도 들린듯 하다. 잘 보이고 싶었던 철민에게 가장 민망했다. 그래서 그날은 창피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저녁만 먹고 바로 헤어졌다. 그리고 그런 남자 꼬이지 말라고 굿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 그날 케이의 엄마가 전화를 하지 않았던들 케이는 철민과 한층 더 가까워졌을것이다. 엄마는 무얼 예감했던걸까?
'엄마가 무당 빤스라도 빌려입었나?'
정중한 절연을 하고 한 달이 흘러 철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일요일에 어제 거기 가서 기다렸어요. 혹시 케이가 들어오면 운명일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시간을 앉아있다 왔어요.'
케이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가 없었다. 어제 거기라니. 어제 나는 집에 있었는데 거기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소리와 이해되지 못할 언어들로 대화를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상야릇한 기분으로 철민과 통화 후 일주일이 흘렀다. 케이는 실험 폐수 처리를 위해 지역 교육청에 출장을 나왔다. 일이 일찍 끝나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한 건물 2층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거기'였다.
'뭐야, 뜬금없이 와서 저기서 날 기다리며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고? 혼자 낭만 소설 쓰셨고만.'
금사빠 기질이 다분한 케이는 처음엔 철민의 모습이 다 그럴듯하고 근사해보였다. 그러나 굿판을 벌이고 부적까지 구매해 찢기까지 한 지금에 와서는 그의 다정하고 낭만적이었던 모습이 참으로 하릴없어 보였다. 하긴 그는 그랬었지. 한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그래요. 당신의 그 삶을 응원합니다. 그런데 제발 한 여자만 사랑하길 바랍니다. 무당 말대로 여러 여자 울리지 말고.'
케이는 친구들과 수다 떨다 가정을 두고 바람난 남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선배 엄청 가정적이지 않았어? 좀 놀랍다."
"야, 너무 가정적이어서 가정 하나 가지고는 부족했나보지. 뭐."
케이는 생각했다. '우와, 이건 진짜 엄청난 통찰인데?'
또 생각했다. '엄마는 어떤 원초적인 직감이 있었던게 분명해. 뭔가 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그걸 온몸으로 막아낸 건가. 평소 하지도 않는 전화를 굳이 해서 소리를 질러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