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왜 결혼하고 싶은거냐고 묻는 거야. 갑자기 너에게 결혼이 필요해진 까닭이 뭐야?"
"그러니까... 그게..."
케이는 언니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직설적으로 준비 작업 없이 핵심으로 바로 뚫고 들어와버린 결혼의 이유.
'그러게. 나는 왜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을까?'
여태 케이는 가볍게 살길 원해왔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절대 짐을 늘리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배낭 하나만 짊어지면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삶을 원했다. 먹고, 명상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산책을 좋아하고 연극을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외국여행도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막연하게 이렇게 살다가 60정도 되면 출가승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생의 방향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서른 넘어 갑자기 결혼을 못해 이렇게 발싸심이 났으니 언니로서는 궁금할 수도 있겠다.
"난, 너 하나라도 결혼을 안했으면 좋겠어. 봐라. 우리 8남매 대부분 결혼하고 한 명은 이혼했다. 그리고 너 하나 남았지. 여덟 중에 하나 정도는 결혼 안해도 돼. 결혼 뭐 그거 별거라고"
이 무슨 유머러스한 계획인가. 결혼 비율을 맞추기 위해 나의 미혼을 유지해야한다니. 언니도 만만치 않은 종자가 분명하다고 케이는 생각한다.
"그러게, 언니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뭘 원하는 건지 생각 좀 해봐야겠네."
사랑이 하고 싶어서? 성관계를 하고 싶어서? 아니면 주변에서 자꾸 채근해서? 남 보기 창피해서?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싶어서?
이 중 그래도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사랑이 하고 싶어서라고 봐야겠다. 케이는 10대 후반부터 명상을 해왔는데 그 부작용인지 정작용인지 성관계 욕구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퇴근 후 홀로 노을을 뒤로 하고 명상에 빠질때 지복의 느낌에 빠졌다. 그러한 사마디가 매번 오지는 않아도 그 덕분인지 남자의 사랑 없이도 케이의 삶은 늘 충만했다. 그렇다고 남자를 보고도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케이 좋다고 하는 남자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쉽게 빠지는 금사빠 기질이 강하다고 봐야 맞긴 하다.
주변에서 아무도 결혼하라고 채근하는 이조차 없다. 일제 강점기에 청소년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홀로 남은 엄마는 어떤 심정인지 묻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막내딸의 결혼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적어도 케이가 듣기로는. 케이는 결혼의 유무가 창피하고 말고 할 주제에 포함된다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또 교사 월급이 쥐꼬리라고는 하나 오랫동안 하면 연금도 나올 것이고 목구멍 하나 건사하지 못할 쏜가. 게다가 케이는 철민이나 제이를 만나면서 계속 얻어먹기만 하지는 않았다. 꼭 번갈아 가면서 밥을 샀고 금액으로 차이가 나게 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케이는 독립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대학 시절 호감을 보내는 많은 눈길을 맑눈광으로 막아내며 케이는 선후배 관계 이상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서른이 넘으니 갑자기 이렇게 결혼을 못해 안달이 난 것인가?
케이는 생각한다. '개인 하나만 돌보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 나 자신이 소중한것은 만고의 진리이나 그것도 뒤집어 보면 그냥 날 때 부터 가진 본능에 불과한 것을. 뭔가 더 소중한 것을 갖고 싶다. 나 자신이 아니면서 나를 던져 맞바꿀 수 있을 만한 소중한 것.'
'나는 부모에게서 생명을 받아 삶을 산다. 내가 누군가에게 뭔가 정말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생명일 것이다. 더 나아가 창조의 순환에서 인간 단계의 생을 나누어주어 완성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것. 내가 부모가 되는 것.'
"애를 낳아야 할 것 같아. 나라는 생물 기계가 성능 테스트도 못한 채 삭아빠지게 놔둘 순 없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