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물 그리고 머리숯이 뭐라고

by 케이

"케이야, 나 그 사람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근데, 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야... 오늘 알았는데 그 사람 대머리야. 가운데 숯이 너무 없어."

"그게 왜."

"하, 그게 왜냐니......."


결국 케이는 경미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일인이 되었다. 경미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는 시청에 다닌다고 한다. 경미보다 두 살이 연하라고 하니 더욱 기대를 안고 갔다. 베란다에서 강아지에게 사료를 부어주고 있는 연하남은 훤칠한 키에 캐주얼한 옷차림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가 케이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케이는 경미가 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단박에 알게 되었다. 놀랍도록 잘 생긴 얼굴!


남자가 쌍꺼풀이 있어도 느끼함없이 잘 생길 수 있구나라고 케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저렇게 잘 생긴 연하를 만나는 경미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화기애애한 소개가 이어졌다.


"실내인데 캡 벗어도 돼. 괜찮아."

"그럴까?"


케이는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 했다. 그 잘 생긴 귀공자가 갑자기 세월이 흘러 40대 중반 아저씨로 변모해있었다. 물론 잘 생긴 40대 말이다. 케이는 아까 느꼈던 그 호감,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욕구랄까 이런게 순간 감소하는 기분이었다. 케이는 '내가 이럴진대 다른 이들은 더 놀라겠지. 저 친구 마음의 상처가 많겠네.' 싶었다. 케이는 순간 느꼈던 당혹감을 들킨 건 아닐까 염려하며 더 수다스럽게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다정하고 센스있고 유머러스했다. 연상의 여자친구의 친구라 그런지 케이에게 적당한 예의도 차렸다. 참 좋은 사람같아 보였다. 케이는 경미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못내 궁금했다. 그날 저녁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케이는 역 근처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카페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케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두리번 거리는 순간 출입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손을 흔들며 일어섰다.


커피와 몇개의 과자가 같이 나왔다. 케이는 뜨거운 커피를 연신 홀짝거리고 과자 봉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봉지를 천천히 뜯었다. 과자 이름은 로터스. 로터스면 연꽃이란 말인거 같은데 연꽃향이 나나? 과자를 두 조각으로 쪼갰다. 부스러기가 탁자에 떨어진다. 부스러기 하나 하나 천천히 손가락으로 눌러 집어낸다. 남자는 뭐라고 계속 말한다. 케이는 커피를, 과자를 계속 먹으며 부스러기를 계속 떨어뜨리고 또 계속 집어낸다. 케이에게 시간은 멈춘 것 같다. 한 시간 쯤 흘렀을까?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아, 벌써요?"


밖으로 나온 둘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케이는 시계를 본다. 그와 만나 이야기한 한 시간, 최대한 커피를 홀짝이고 로터스 쿠키를 조각내어 천천히 먹고, 부스러기를 한 알 한 알 집어 내었던 그 길었던 한 시간. 케이와 그는 단 20분을 앉아 있었다. 김결추의 첫번째 시도는 이렇게 끝났다. 그 남자는 이공계쪽 박사였다. 유능할 뿐 만 아니라 집안도 좋다고 했다. 공부하느라 다른데는 신경쓸 틈이 없었던 그야말고 범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케이의 첫눈에 들지는 못했다. 인물 때문에. 이렇게 완벽한 조건의 남자를 이후에 소개받을 수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깟 얼굴 그게 뭐라고. 여태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취향을 알게 된 케이는 내일 S선생님을 어떻게 뵈어야 하나 걱정하며 바로 눈 앞의 만두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매운 쫄면을 시켜 먹었다.


'아, 나는 여태 얼굴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내가 외모에 영향을 많이 받네.'



경미는 나중에 소식을 알려왔다. 그 남자의 모든 면이 좋지만 대머리는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경미는 결국 연하남과 헤어졌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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