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김결추 해산 위기 - 의자 넣어주는 남자, 숨막히는 여자

by 케이

김결추는 결의한 대로 최선을 다했다. 친구의 아들, 다른 학교 교감 선생님의 아들, 그 귀하다는 인근 초등학교 남교사, 대기업 다닌다는 친구의 아들 등 각종 아들들을 케이에게 소개시켜줬다. 참으로 괜찮은 아들들인데 모두 퇴짜를 놓으니 김결추 회원들은 점차 소스가 말라갔다. 1인당 1명을 소개시켰으니 할당된 의무는 다한 셈이라고 생각들을 했다.


김결추는 마지막으로 찾아내고 찾아내어 C선생님의 고향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의 아들을 소개하기로 하였다. 김결추의 말을 빌자면 이번은 진짜라고 한다. 케이가 선자리에 다녀올 때마다 기대와 안타까움, 실망의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며 김결추도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처지였다. 그래서 케이도 김결추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집안 좋고 화목하고 인물좋고 많이 배우고 재산도 많고 노후준비 다 된 부모님. 완벽 그 자체.


"케이, 이번엔 진짜야. 너 이번에도 엎으면 너 데려갈 사람 이 세상에는 없다고 봐야해."



그는 퇴역 육군 장군의 아들이었다. 케이는 투스타가 어느 정도 직급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타라고 하니 꽤 높을 것이라 예상만 했다. 퇴역 후 이 도시 인근의 작은 시골 마을의 땅을 사서 귀농을 하셨는데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집안이 부유하고 친인척들도 기울어진 사람이 없어 화목하고 어머님이 매우 다정하시다고 한다. 이러저러하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케이는 핸드백을 고쳐맨다. 향교로 향하는 다리 곁에 검은 차량 앞에 선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케이는 이럴 때 더 빨리 걸어야하는지, 아니면 제 속도를 유지해야하는지 난감했다. 멀리서나마 고갯짓으로 너 만나러 온 사람이다라는 표시를 했다.



남자가 성큼 성큼 걸어와 마중을 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말쑥한 이런 느낌이 바로 서울 남자인건가 하고 케이는 생각한다. 지방이라고는 1그램도 허용하지 않은 듯한 맵씨. 옅게 퍼지는 향수 냄새.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는 긴 팔과 긴 손가락. 둘은 도심을 벗어난 외곽의 유명카페로 가기로 한다.


남자는 조수석 쪽으로 와서 차 문을 능숙하게 열어주었다. 케이는 '고맙다' 인사를 건네고 앞자리에 몸을 실었다. 남자는 카페의 문을 열어주고 기다리고 닫았으며 의자를 빼주고 케이가 무릎을 굽히려는 순간 의자를 살짝 밀어넣어주었다. 커피를 주문할 때도 받을 때도 마실 때도 대화할 때도 매너와 에티켓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말씨는 드라마에서 보던 서울말이었다. 케이는 서울 남자는 처음 만나보았다.


시골 논밭과 야산을 막대기 하나 들고 누비며 오빠들의 전쟁놀이와 칼싸움에서 살아남은 케이었다. 이런 세련된 매너를 원치 않은 건 아니었으나 케이는 뭐랄까 너무 말랑말랑해서 재미가 없었다. 문을 열고 의자를 넣어주고 커피잔의 손잡이까지 조절해주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여자였던 것이다. 서양의 저택에서 허리를 꽉 조인 하체 풍성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수발드는게 케이눈에는 어려서도 좋아보이지 않았었다. 이 멋진 남자의 그런 에티켓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좀 삐딱했던 케이는 그런 모습을 오히려 여성을 길들이는 문화로 이해했다.


그 남자와의 대화는 온화했다.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세련되고 편안했는데 케이는 재미가 없었다. 너무 케이에게 맞춰주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남자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나왔는지 케이에게 결혼하면 부모님과 살든지 분가하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직장도 계속 다닐 수 있다고 했다. 케이는 서울에서 온 매너남과 즐거운 주말 오후를 보냈다.



"야, 승용차 문 열어 줘서 싫다는 게 말이 되냐?"

"케이, 여자는 그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남자를 만나야 되는거야. 그런 남자도 결혼하고나면 변하는데."

"그러니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제가 그런 대접을 처음 받아봐서 어색했나봐요."

"우리 케이가 아직 어리네. 어려."


이제 케이는 김결추에서 매장되기 직전이 되었다. 김결추는 해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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