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랑은 머리가 아닌 손과 발과 가슴으로

by 케이

"응, 괜찮아. 넌 그대로 앉아있어."

"얘들아, 이불은 이따 개고 운동장 가서 새벽바람 쐬고 오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재민이만 남았다. 늘 똘똘한 표정이던 아이가 멍하니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어 케이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우선 급히 재민이네 집에 전화를 넣었다. 다행히 아침기도 중이던 재민이엄마가 바로 받았다.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오기에 재민이는 화장실로 보내고 이불을 대충 개켜서 젖은 부분을 숨기고 케이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재민이는요. 반장이 솔선수범하라고 하셨으면서."

"어젯밤에 먹은 수박이 탈이 났나 봐. 배가 아프다네."


아이들과 아직 안개가 다 걷히지 않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있자니 멀리서 재민이 엄마가 보였다. 화장실로 가라고 눈짓을 해주고는 다시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안개가 빠르게 걷혀가자 화단의 화초 끝에 매달린 이슬이 더 영롱하게 반짝였다. 뒷뜰 야영 둘째날 아침은 햄과 계란을 넣은 토스트다. 케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간다.



재민이네 집은 동네 작은 교회다. 신도수가 20명이나 될런지. 재민이네 형제들은 이 시골구석에서 집앞에 플랭카드를 걸어본 유일무이한 수재들이다. 둘 다 무려 서울대에 다니기 때문이다. 재민이는 둘째형과 12살 터울이다. 늦둥이인 셈인데 교회 사모님이신 재민이엄마가 어찌나 애지중지하는 지 모른다. 사실 케이는 재민이엄마와 만나거나 통화해 본 적도 없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씩 꽃다발을 전해 받았다. 그 꽃들은 교회 화단과 작은 정원에서 재민이 엄마의 손길로 길러진 것들이다. 아마도 교회 재단을 장식하는 김에 아이 교실에도 보내고 있는 것인데 케이는 그 소박한 꽃다발에서 재민이 엄마의 아들 사랑과 자식을 맡기는 부모의 마음을 읽었다. 재민이는 별 탈이 없는 아이였다. 적당히 똑똑했고 아이들과도 원만한 편이었으며 똘똘한 눈동자가 가끔 멍해질 때 빼고는 건강한 초등학생 5학년이었다. 바로 몇 달 전까지는 국민학생이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혀 그늘을 못느꼈어요. 두 분, 아버님 어머님께서 정말 애 많이 쓰셨겠어요."


재민이는 전라도 익산역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보호자 없이 떠돌던 아이가 경찰에 인도되어 6개월을 기관에 머물다 교회에 오게 된 것이 8살 무렵인데 재민이 말로는 서울 지하철에서 앵벌이를 했다고도 한다. 밤중에 이불에 실례를 하는 것은 2년여만에 고쳐졌다고. 그래서 아무 걱정없이 학교에서 재운 것인데 이렇게 실수를 해 선생님을 번거롭게 했다고 연신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재민이 어머니다. 케이는 오히려 민망해졌다.

'이게 죄송할 일인가?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재민이아버님은 교회 목사이시다. 키가 작고 그가 자라던 시절 흔했던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를 전다. 신체조건 때문인지 만혼이었던 그들은 연이어 두 아들을 낳았고 두 아들은 지역의 자랑이 되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은총 덕분이라 생각한 목사님은 신원 확인도 되지 않는 아이를 데려와 아들로 삼았다. 케이는 제사 때마다 소요를 일으키는 독실한 크리스천 새언니 때문에 교회신도들에 대한 반감을 어릴 적 부터 갖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목사님 내외를 보며 제사를 지내네 마네로 시름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찮게 생각되었다. 진짜 기독교인을 만난 것이다.


점심을 먹고 뒷뜰 야영은 마무리 되었다. 캠핑매트와 요와 이불이 깔려 있던 교실 바닥도 정리되었다. 다들 어젯밤 대숲에서 머리를 풀고 흰 옷을 나부끼며 쫓아왔던게 케이였던 것을 알고는 '그럴줄 알았어요' 한다. 알기는... 무서워서 잔뜩 쫄았으면서.


케이는 다음날 신문지에 싸인 꽃다발을 받았다. 쑥갓꽃이었다. 쑥갓꽃은 화원에서는 꽃으로 쳐주지도 않지만 실제로 꽃이 피기 전에 먹어버리는 나물이라 꽃을 보기 쉽지 않다. 사모님은 이렇게 소박한 꽃으로 재단을 채우고 계셨다. 재민이도 그렇게 자랄것이었다. 안정되고 진솔하고 소박하게 늙은 부모님의 안전한 울타리에서 건강하게 말이다.




케이는 갑자기 초임 때 만났던 재민이네가 생각났다. S선생님이 부탁을 해왔다. 만일 늑대남매의 월반이 결정되면 케이가 그 중 하나는 맡아주어야겠다고 말이다. 당장 일어난 일도 아니지만 케이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늑대남매는 간이 큰 애들이다. 학교 컴퓨터실의 본체를 리어카에 실어내 어디에 팔 생각을 했던 걸까? 본체를 다시 실어와 연결하고 아이들은 훈방 조치 되었지만 케이는 그 아이들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김결추의 의리가 있으니 어쩌랴, 일이 그러하게 된다면 그래야지!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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