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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Aug 29. 2016

결과와 과정, 이런 앙숙 같은 사이.

페친으로세계일주_퓨전국악 강근화

< 영화 위플래쉬 中 >

  영화 <위플래쉬>의 주인공은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우며 혹독하게 연습한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드럼이다. 자신과 다른 길을 걷는 가족들도, 연습 시간을 잡아먹는 여자 친구도 그에겐 방해물일 뿐이다. 모든 것을 밀쳐내고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간 결과, 주인공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천재 드러머가 된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주인공의 노력과 집념의 결과에 환호했다. 하지만 난 주인공이 안쓰러웠다. 나에겐 주인공의 화려한 피날레 연주가 아니라,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어야만 했던 고난과 같은 과정들이 더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과정을 희생한 덕분에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최고의 연주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놓쳐버린 과정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을까? 글쎄. 결과보다는 과정을,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밤에 도착했던 세계, 그곳에서 만난 근화는 위플래쉬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퓨전 국악. 나에겐 굉장히 생소한 세계였다. 장구를 치며 퓨전 국악을 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녀의 사무실 입구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그러자 국악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은 세련된 이미지의 한 여성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녀의 이름은 강근화. 그녀는 어릴 적에 우연히 장구채를 잡았다. 그런데 그 끼와 재능을 인정받아 계속해서 장구를 치게 됐고 고등학교도 국악예고로, 대학교도 국악과로 진학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구를 치고 국악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배낭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퓨전 국악이란 장르를 발견한 그녀는 그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뭔가를 대충하기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탓에 그 후에도 혹독한 노력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해 나갔고, 집념의 결과로 큰 무대와 많은 기회들을 맞이하며 남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주원아, 나 사실 요즘 과도기인 것 같아. 고민이 너무 많아. 그래서 네가 페이스북에 쓴 글들을 보면서 너하고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동갑내기인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넌 뭐 하면서 살아?”

  상대방은 내가 꺼낸 만큼 이야기를 꺼낸다는 나름의 신념에 따라, 처음 보는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기탄없이 늘어놓았다.

  "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대기업에 입사했어. 그러다 두 달만에 퇴사하고 또다시 입사했다가 퇴사하는 걸 반복했어. 일이 없는 동안에는 행사장 단기 알바, 청원 경찰, 생동성 알바 같은 걸 하면서 버텼고. 지금은 한 공공기관 파견직으로 일하고 있지. 근데 이런 것들은 다 부업일 뿐이고 내 주업은 꿈톡이야. 꿈톡에서 청년들하고 고민이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너무 좋거든. 예전에는 내 삶에 후회가 많았다? 근데 퇴사 이후에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한 후회는 없더라. 앞으로도 내 맘대로 선택하면서 살 거야. 그럼 결과는 보장 못하지만 후회는 없을 것 같거든."

  별 것 아닌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그녀에게, 내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됐고 이제 네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퓨전 국악이란 장르에 뛰어든 이후, 그녀는 팀을 결성해 국내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뛰어난 실력과 신선한 컨셉 덕분에 그녀는 생방까지 진출했고, 그 인연으로 좋은 분들과 좋은 기회를 잡아 정기적으로 큰 무대에도 올라갔다. 그리고 현재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개척해가며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단했다. 정말 멋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느끼기엔 근화의 삶이 많이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근화야, 그래서 너 지금 행복한 것 같아?”

  그녀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어.”

  하지만 그녀의 대답이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나 지금 많이 힘들어.'

  그녀가 한 번의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쏟는 연습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느 정도냐면, 당신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연습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연습과정에서 자신을 정말 혹독하게 다그쳤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이유는 나태해지기 싫어서, 자기 자신에게 조금 쉬어도 된다며 합리화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연습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자기에게 왔던 모든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꼭 널 벼랑 끝에 몰아세워야 하는 거야? 그 과정을 조금만 즐길 수는 없을까?”

  내 말을 듣더니 근화는 아직 꺼내지 않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혼자서 아파트에 살만큼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그녀에게 큰 위기가 닥쳤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근화는 무너져가는 집안의 형편을 바라보며 좌절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는 싫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부모님을 도와드린다고 해서 부모님이 행복해하지 않으실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오히려 당신들 때문에 꿈을 포기한 딸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이 더 아플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를 꽉 물고 다짐했다.

  ‘내가 꼭 장구로 성공하리라, 내가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 당시 그녀의 손 >

  2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찢어진 손이 또 찢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연습했다. 친구들이 그녀를 보고 정신이 나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미쳐있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때의 난 미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 부우며 혹독하게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흘린 땀과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좋은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들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녀가 <위플래쉬>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가 공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번도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해본 적이 없는 난, 위플래쉬의 주인공이 안타까웠던 것처럼 그녀의 그런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난 그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장구를 치는 게 널 행복하게 하니?”

  그녀는 연습하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서 완벽한 무대를 펼치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 무언가를 이뤘다는 그 성취감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몇 번이나 자신을 좌절하게 만든다고 했다.

  “왜 연습하는 과정이 그렇게 힘든 것 같아?”

  그녀가 대답했다.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게 원인은 아닌 것 같아. 너랑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나 스스로를 계속 몰아세우려는 습관이 날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은연중에 과정을 즐기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경고했거든.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안 된다고 날 벼랑 끝으로 내몰았어. 그래야 더 절박하게, 혹독하게 연습할 테니까.”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연습했던 그 습관이 아직까지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심적으로 힘들었던 마음과 그 기억이 그녀를 꽉 붙잡고 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정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야만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근화야,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야.'

  난 결국 내 머리 속에 있는 이 뻔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그녀가 이를 꽉 물고 견뎌냈던 과거를 부정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이것뿐이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근화야.”


  영화 <위플래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마지막 신들린 듯 연주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내 머리 속에 계속 맴도는 장면은, 주인공이 '넌 나에게 짐일 뿐이니 헤어지자'며 이별을 통보했던 전 여자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장면이었다. 그는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용기를 내어 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그녀에겐 이미 다른 남자가 생겼고, 결국 그녀는 그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며 전화를 끊는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그의 표정엔 허탈함만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좋은 결과가 과거의 고통을 다 보상해줄 거라고 말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과정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번 지나가버린 과정은, 우리가 흘려보낸 과거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결과가 그것을 온전히 보상해줄 수도 없다. 때문에 흘러가는 과정의 순간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사실 난, 근화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결국 이야기를 꺼내진 못했지만 그게 내 진심이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 근화야. 근데 가끔은 결과를 과정에 조금만 양보했으면 좋겠어. 난 네가 결과뿐만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제일 중요한 건 네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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