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교회요?”
“그거 성모 마리아 숭배하고 성상 앞에 절하는 그런 이상한 교회아닌가요?
한국 개신교인 대부분은 솔직히 이런 반응일 것이다. 우리에게 러시아 정교회는 낯설다. 개신교도 아니고 가톨릭도 아닌, 어딘가 신비롭고 이국적이지만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기독교로 여긴다. 그저 성화 앞에서 향을 피우고 긴 수염을 기른 사제들이 그리스어 같은 언어로 주문을 외우는, 화려하지만 낯선 의식으로 화려한 예배 정도로 본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이해다. 러시아 정교회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온 거대한 영적 전통이다. 2억 명이 넘는 신자들이 속해있고,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땅을 형성해 온 문명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영혼을 빚었고,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깊이를 부여했으며, 러시아 혁명과 냉전의 배경이 되었고,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다. 무엇보다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간직하고 있다. 침묵과 묵상의 영성, 천 년을 이어온 예배의 아름다움,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신앙의 깊이, 그들은 70년간의 무신론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고, 수백만 명의 순교자를 낸 후에도 다시 일어섰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영적으로 메말라가는 한국 교회에, 정교회의 이야기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글은 두 개의 큰 질문에서 출발한다.
첫째, 러시아 정교회는 어떻게 천 년을 살아남았는가? 몽골의 칼날, 표트르 대제의 폭력적 개혁, 볼셰비키의 총살, 70년간의 공식적 무신론, 이 모든 파도를 견디고 어떻게 2026년 오늘까지 이어졌는가? 그들이 지킨 것은 무엇이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둘째, 러시아 정교회는 한국 개신교에 무엇을 말하는가? 서로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신학 전통을 가진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여섯 개의 문을 통과하는 여정으로 구성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은 분명 낯설음을 느낄 것이다. 성상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테오시스를 말하며 인간의 신화(神化)를 꿈꾸는 신학자들, 페리코레시스—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안에 거하며 하나 되는 신비—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교부들의 세계는 분명 한국의 개신교 전통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 이 책의 가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 전통만을 정통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500년, 우리는 서방 기독교의 눈으로만 신앙을 보아왔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넓고 깊다. 2000년 역사, 동방과 서방, 수많은 전통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같은 그리스도를 고백해 왔다.
정교회가 말하는 테오시스는 결국 개신교가 말하는 성화(聖化)와 다른 언어로 표현된 비슷한 영적 여정이다. 그들이 성상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 추구하는 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필리오퀘 논쟁이라는 천 년 묵은 신학적 갈등 뒤에는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어떻게 더 온전히 이해할 것인가라는, 동방과 서방이 공유하는 같은 갈망이 있다.
정교회를 배우는 것은 그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울을 보는 것이다. 정교회의 영광과 수치, 승리와 실패, 거룩함과 죄악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권력과 타협한 정교회의 역사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통에 집착하여 경직된 정교회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복음의 보편성을 잃어버린 정교회의 실패는 우리의 경고이기도 하다.
동시에,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정교회의 증언은 우리의 희망이다. 박해 속에서 더 깊어진 영성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침묵과 묵상, 예배의 아름다움,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이것들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보화다.
이 글은 학술 논문이 아니다. 어려운 신학 용어를 나열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러시아 정교회 이야기다. 천 년을 살아온 신앙 공동체의 이야기, 하나님을 찾는 인간 영혼의 이야기, 고난과 영광, 배신과 회개,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마치 소설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다. 블라디미르 대공이 드니프로 강에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라. 몽골 침략 속에서 기도하는 수도승들의 모습을 그려보라. 볼셰비키의 총살대 앞에 선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를 들어보라.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하라.
신학적 부분이 어렵다면, 일단 건너뛰고 다음 장으로 가도 좋다. 나중에 다시 돌아와 읽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진정한 만남이다. 낯선 전통과 만나고, 다른 영성을 경험하고, 더 넓은 기독교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신학적 논쟁을 하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은 천 년의 여정을 함께 걸을 것이다.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맞아, 우리도 이래야 해"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니야, 이건 잘못되었어"라고 반박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동의나 반대가 아니라 대화다. 이 책을 덮을 때, 러시아 정교회는 더 이상 낯선 타자가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비판하고, 때로는 배우고, 때로는 가르치면서,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제 988년 드니프로 강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블라디미르 대공이 강물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꿈꾸었는지, 그리고 그 꿈이 천 년 동안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함께 볼 것이다. 황금 돔 아래서 천 년 동안 울려온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다르면서도 같고,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하나님께 드려진 기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12년을 선교사로 보내면서 늘 주변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예배하는 모습을 보고, 또 교회 내부의 이콘을 보며 울면서 기도하는 순전한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면서 러시아 정교회를 깊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참 많았다.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퇴하고 한국에 머물면서 AI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에 열려있는 수많은 정교회 관련 자료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정교회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러시아 정교회를 알고 싶은 분들과 공유함으로 함께 러시아 정교회를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