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태양, 푸시킨

위대한 문학의 나라, 러시아

by 이헌철
image.png 푸시킨 Ⓒnamu.wiki

1837년 1월 2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은 유난히 차갑고 어두웠다. 눈 덮인 거리를 따라 한 소식이 번개처럼 퍼져나갔다. “푸시킨이 죽었다.” 결투에서 입은 총상으로 이틀간 고통받던 시인은 서른일곱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차르 정부가 대규모 장례식을 금지했음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집 앞에 모여들었다. 귀족도, 농노도, 상인도, 학생도 함께 울었다. 그날, 러시아는 단순히 한 시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태양을 잃었다. 러시아인들은 왜 푸시킨을 '태양'이라 불렀을까? 그것은 그가 어둠 속에서 빛을 창조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눈부신게 아름다운 시인

19세기 초 러시아 귀족사회는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프랑스 문학을 읽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정작 러시아어는 농노들이나 쓰는 상스러운 언어로 취급받았다. 그런 시대에 푸시킨은 러시아어로 시를 썼다. 그것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를 썼다. 그는 러시아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노래할 수 있는 악기임을 증명했다. 구어의 생동감과 문어의 우아함을 하나로 녹여낸 그의 언어는, 마치 얼어붙은 강물에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그의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으면, 운문으로 쓴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하나의 혁명임을 깨닫게 된다. 시의 리듬으로 흐르는 이야기, 그 안에서 춤추듯 살아나는 인물들, 사교계의 냉소적인 청년 오네긴과 순수한 시골 처녀 따띠야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한 시대의 초상화다. 따띠야나가 오네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는 지금도 러시아인들이 암송하는 명장면이다. 밤을 새워 편지를 쓰는 소녀의 떨리는 마음이 한 구절 한 구절에 배어 있다.

“당신께 이 편지를 씁니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제 운명은 당신 손안에 있습니다... 만약 제 마음속에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리라는 것...”

순수한 영혼의 고백 앞에서 그 어떤 수사학도 무색해진다. 따띠야나는 묻는다.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제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을까요? 아니예요, 온 세상에서 저는 당신만을 선택했을 거예요.’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온 마음을 내어주는 한 여인의 떨림이,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용기가 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푸시킨은 또한 희망의 시인이기도 했다. 유배지에서 쓴 그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한국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작품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나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억압받는 시대를 살면서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슬픔도 지나가고, 고통도 지나가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짧은 시 속에 담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쉰다. 푸시킨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시였다. 그는 사랑했고, 방황했고, 저항했고, 고뇌했다. 자유주의적 시를 써서 황제의 미움을 샀고, 그 때문에 유배를 당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도 그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크림반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와 캅카스의 험준한 산맥 사이에서 그는 계속해서 썼다. 자유와 사랑과 조국을 노래했다.

그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단순히 아름다운 시와 소설 모음이 아니다. 푸시킨 이후 러시아 문학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닦아놓은 길 위로 고골과 투르게네프와 도스토옙스키와 그리고 톨스토이가 걸어갔다. 그들은 모두 푸시킨의 자식들과 같은 자들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푸시킨 안에 러시아의 모든 것이 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푸시킨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언어의 품격’과 ‘예술가의 용기’에 관한 것일 것이다. 모국어를 사랑하고 그것을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만들려 했던 한 시인의 열정일 것이다. 권력의 탄압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의 자존심, 그리고 삶과 문학을 분리하지 않고, 온 몸으로 시대를 살아냈던 한 인간의 뜨거운 심장이었다.

푸시킨은 결투로 죽었다. 프랑스 출신의 근위대 장교 조르주 당테스가 그의 아내 나탈리야에게 집요하게 구애했고, 이 일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는 소문이 떠돌았다. 푸시킨은 참을 수 없었다. 아내의 명예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는 권총을 들었다. 1837년 1월 27일, 눈 덮인 들판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불필요한 죽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명예와 사랑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문학에서도,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영원히 서른일곱 살의 청춘으로 남았고, 러시아인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 되었다.

오늘도 모스크바 아르밧 거리의 푸시킨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한때 푸시킨이 신혼의 단꿈을 꾸던 이 거리에서, 동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존경과 그리움이 어려 있다. 그들은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한 시인이 한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를 안다. 태양은 지지 않았다. 그의 시구들은 지금도 러시아어로 말하고 쓰는 모든 이들의 입술과 가슴에서 살아 숨 쉰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다. 한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가 남긴 언어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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