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절망 그리고
사랑의 발견

위대한 문학의 나라, 러시아

by 이헌철
image.png 돌스토이Ⓒnamu.wiki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오늘 아침 무엇을 위해 눈을 떴나? 가끔은 행복한 순간들을 올리지만, 밤이 되면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찾아오기도 한다. 더 좋은 직장, 더 큰 집, 더 많은 돈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텅 비어가고,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공허하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똑같았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50대에 그는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었다. 너무나 쉽게 목숨을 끊어버릴 것 같아 자신의 방에서 밧줄과 사냥총을 치워야 했다. “내가 이토록 열심히 살고, 위대한 책을 쓰고, 더 많은 것을 이룬다 한들,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의 이성이 내린 답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우물 속의 나그네

톨스토이는 자신의 고뇌를 설명하기 위해 오래된 동양의 우화를 빌려왔다. 한 나그네가 맹수에 쫓겨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간신히 벽 틈의 관목 가지를 붙잡았다. 위에는 으르렁거리는 맹수가, 아래에는 입을 벌린 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그의 생명줄인 가지를 쉼 없이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그네는 곧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나뭇잎에 맺힌 꿀 한 방울을 핥으며 잠시 그 공포를 잊으려 한다.

이 우화 속 맹수는 우리 삶의 고통과 불안이다. 용은 죽음이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 즉 우리를 갉아먹는 시간이다. 그리고 꿀은 우리가 집착하는 일시적인 쾌락과 성취이다. 톨스토이는 우리 모두가 이 우물 속 나그네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어떤 이는 무지 속에서, 어떤 이는 쾌락에 취해서, 어떤 이는 자포자기한 채 그저 시간을 갉아먹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지금 어떤 꿀을 핥고 있는가? 승진? 집? 좋아요 숫자? 그것이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가?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깨달음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한 사람'이다. 판사로서 존경받는 지위, 좋은 집, 높은 연봉, 완벽해 보이는 가정까지 갖췄다. 그런 그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간다. 소설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이반의 죽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이제 누가 승진하지?'를 계산한다. 아내는 슬픔보다 '국가에서 연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에 몰두한다. 겉으로는 위로의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죽은 게 나 아니라 다행이야'라고 안도한다.

더 충격적인 건 죽음을 앞둔 이반 자신의 깨달음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평생 ‘남들의 기준’으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결혼... 정작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image.png 톨스토이Ⓒnamu.wiki

땀 흘리는 농민들의 얼굴에 있던 평화

절망의 끝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영지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가난했고, 교육받지 못했으며, 톨스토이보다 훨씬 비참한 조건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들의 힘은 이성이 아닌 신앙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땀 흘려 일하며, 이웃과 나누고, 때가 되면 돌아간다.”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빵 노동’ 사상이었다. “땀 흘리지 않고 빵을 먹는 것은 도둑질이다.” 농민 사상가 본다래프의 이 말은 톨스토이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형 니콜라이가 숲속 어딘가에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개미 형제'가 되는 비밀이 적힌 녹색 막대기가 묻혀 있다”고 했던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평생 그 막대기를 찾아 헤맸던 톨스토이는 이제야 그 비밀이 바로 농민들의 삶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고, 땀 흘려 일하며, 서로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달았다.


교회와의 결별 - 제도냐, 진리냐

1901년 2월 24일, 러시아 정교회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선언을 발표했다. 73세의 톨스토이를 ‘거짓 교사’로 규정하며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톨스토이는 무엇을 거부했는가?

그는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동정녀 탄생, 기적, 부활, 영혼 불멸 등 기독교 교리의 핵심 요소들을 모두 거부했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삶에 대한 진실함에 도달한 현명한 사람'으로만 인정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부활』(1899)에서 성찬례를 ‘마술’이라고 조롱한 것(소설 40장에서 톨스토이는 성찬례를 "blasphemous incantation over the bread and wine-빵과 포도주에 대한 신성모독적인 주문-이라고 표현함)은 교회의 분노를 사고 출교에 이르게 되었다. 출교 선언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변은 명확했다.

“내가 정교회라고 부르는 교회를 떠난 것은 완전히 옳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거역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내 영혼의 모든 힘으로 주님을 섬기고자 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

그가 찾은 것은 제도화된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산상수훈에 담긴 본래적 가르침—비폭력, 용서, 이웃사랑이었다. 흥미롭게도 톨스토이의 비폭력 사상은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평화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정교회에서 출교된 톨스토이의 사상이 인류의 평화 추구에 기여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종교적 탐구 끝에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 그가 쓴 이 단편소설(1885)에는 이 깨달음이 담겨 있다. 하늘에서 벌을 받고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지내며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는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허락되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는 깨닫는다. 사람 안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권리가 허락되지 않았으며,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image.png 톨스토이의 소박한 무덤 Ⓒnamu.wiki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소유하고, 경쟁한다.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중에'를 외치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미룬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시간을 ‘나중에’로 미룬다.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은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사랑이다. 내가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느냐가 삶의 무게를 결정한다.


간이역에서의 마지막 -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

1910년 10월 28일 새벽 82세의 노작가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홀로 집을 나섰다. 재산 포기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던 톨스토이는 마침내 가출을 감행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추종자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여동생이 수녀로 있던 샤모르디노 수도원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와의 관계에서 내적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여행 중 병이 악화되어 아스타포보 역에서 쓰러진 톨스토이는 옵티나 수도원의 수도승을 불러달라는 전보를 치도록 지시했다. 두 명의 성직자가 그를 방문하려 했으나, 톨스토이의 제자들이 이를 가로 막았다. 결국 톨스토이는 1910년 11월 20일, 교회와의 화해 없이 아스타포보 역 역장 관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부와 명성을 누렸던 대문호는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작은 간이역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비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평생 추구했던 가치들과 일치하는 죽음이었다. 소유보다 의미를, 명예보다 진리를, 안락함보다 신념을 선택한 삶의 자연스러운 결말이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그곳에서, 그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중얼거렸다.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 찾아라. 항상 찾아라.” 그리고 그가 평생을 바쳐 물었던 질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에 대한 마지막 답을 남겼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 살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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