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교회 예배
토요일 아침, 모스크바 시청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들과 검은 정장의 신랑들. 그들은 ZAGS라 불리는 민사등록국으로 들어가 20분 만에 결혼한다. 화려한 결혼 궁전에서 서약을 낭독하고, 반지를 끼우고, 샴페인을 터뜨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박수가 터진다. 그들은 결혼했다.
같은 날 오후, 같은 커플이 정교회 성당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거기에는 화려한 맹세나 감상적인 서약(Vows)의 낭독이 없다. 다만 사제가 “당신은 자유로운 의지와 선한 뜻으로 이 여인/남자를 아내/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 라고 묻고, 신랑 신부는 “예, 신부님”이라고 짧게 대답하는 것이 전부다. 사제는 그들을 향해 말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주님, 이들을 축복하소서.”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의식 내내, 신랑 신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사제가 그들의 머리 위에 황금빛 왕관을 씌운다. 그리고 한 잔의 포도주를 건넨다. 둘은 번갈아 그 잔을 입에 댄다. 세 모금씩. 그것이 전부다. 말 없는 의식이 끝나면, 그들은 결혼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가 된 것이다.
두 개의 결혼식
오늘날 러시아에서 결혼은 이렇게 두 번 일어난다. 먼저 국가 앞에서, 그 다음 하나님 앞에서 결혼한다. 소비에트 시대의 유산이다. 공산주의 정권은 종교를 탄압했고, 결혼을 국가의 행정업무로 만들었다. ZAGS만이 법적으로 유효한 결혼이 되었다. 정교회에서 축복을 받아도, 국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시절이 끝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습관은 남았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ZAGS에서 결혼한다. 많은 이들은 거기서 끝낸다. 신앙심 깊은 이들만이 성당으로 간다. 마치 선택 사항인 것처럼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ZAGS 결혼식에는 서약이 있다. 온갖 아름다운 약속들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혼율은 50%를 넘는다. 정교회 결혼성사를 받은 커플들의 이혼율은 훨씬 낮다. 서약이 없는 결혼이 오히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번 더 할 정도라면, 이들은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이혼율이 낮은 것이다.
약속의 역설
문제는 약속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ZAGS 결혼식의 핵심은‘우리의 약속’이다. 나는 당신에게 맹세한다. 나는 내 의지로 선택한다. 나는 책임지겠다고 약속한다. 모든 것이 ‘나’에서 시작된다. 두 개의 ‘나’가 만나 계약을 맺는 것이다. 계약은 조건부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나쁜 때가 오면 계약은 재검토된다. “내가 약속했던 그런 나쁜 때는 아니었어.” “이 정도일 줄 몰랐어.” 약속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뀌면 약속도 흔들린다
반면 정교회 결혼성사에는 인간의 약속이 없다.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무엇도 맹세하지 않는다. 사제도 그들에게 특별한 서약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유의사로 결혼하는 지에 대한 확인만 한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가 신랑 신부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울 때,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순교자의 면류관이다. 결혼은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라 자기희생의 길이다. 자신을 죽이고 ‘우리’로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왕과 왕비의 면류관이다. 부부는 함께 작은 왕국을 다스린다. 그들의 집은 작은 나라가 되고 교회가 된다. 그리고 공동 잔 의식이 온다.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눠 마시는 것은 말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함께 마시는 것이다. 그 잔에는 기쁨도 담겨 있고 고통도 담겨 있다. 단맛도 쓴맛도 모두 함께 마신다. 이것이 어쩌면 진짜 서약이다. 말이 아닌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침묵이 말하는 것
오늘날 많은 러시아인들이 ZAGS에서만 결혼하고 끝낸다. 편하고, 빠르고, 자유롭다. 자기 방식대로 할 수 있다. 원하는 음악을 틀고, 원하는 서약을 쓰고, 원하는 만큼 화려하게 꾸민다.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 것일 때, 우리보다 큰 것이 없을 때, 결혼은 위태로워진다. 사랑의 감정이 식으면 어떻게 될까? 의지가 약해지고, 약속을 지킬 힘이 없어지게 되면 우리 안에만 있는 결혼은 우리만큼이나 약하다.
정교회가 서약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간의 약속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다. 아무리 진심으로 약속해도, 3년 후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서 결혼은 인간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집처럼 일단 지어졌으면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짜 결혼인가
모스크바의 토요일은 이렇게 흘러간다. 아침에는 ZAGS의 화려함이 있고, 오후에는 교회의 침묵이 있다. 같은 커플이, 같은 날 두 번 결혼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한다. ZAGS가 진짜 결혼이고, 교회는 일종의 축복 의식쯤으로 여긴다. 법적으로 이미 부부가 된 후에, 하나님께 사후 승인을 구하는 것처럼 되었다.
정교회 전통은 반대다. 결혼식이 먼저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된 후에, 법적 등록은 사회적 형식일 뿐이다. 하지만 소비에트의 유산은 깊다. 국가가 먼저, 하나님은 나중이고, 법이 먼저, 은총은 선택 사항인 것처럼 되었다. 어쩌면 높은 이혼율은 이 전도된 순서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승인만 구할 때, 결혼은 여전히 우리 손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 손은 너무나 쉽게 놓아버린다.
정교회 결혼성사가 끝나면, 사제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신랑 신부에게 하는 말이지만,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선포다. 이 둘은 이제 하나다. 인간의 약속으로 묶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로 하나가 된 것이다.
모스크바의 어느 토요일 저녁, ZAGS에서 결혼한 커플과 성당에서 결혼한 커플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다. 둘 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 둘 다 법적으로 부부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차이가 드러난다. ZAGS 커플은 일어나서 생각한다. “어제 한 약속을 지켜야지.” 교회 커플은 일어나서 그저 산다. 약속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들은 약속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산다. 영원은 약속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다.
정교회가 천 년 넘게 지켜온 침묵의 지혜가 여기 있다. 말이 많을수록 실체는 얇아진다. 약속이 많을수록 믿음은 약해진다. 진정한 결합은 조용히 일어난다. 말없이, 신비롭게,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