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에서 피어나는 신성(神聖)

러시아 정교회 예배

by 이헌철
주현절 얼음물 입수 @/brunch.co.kr/@youngstrana/138

1월의 러시아는 혹독하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연못의 얼음은 두껍게 얼어붙는다. 그러나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오히려 물을 향해 나아간다. 얼음을 깨고 만든 십자가 모양의 구멍 속으로 몸을 담그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주현절(主顯節, Theophany)의 풍경이다.

러시아를 포함한 동방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을 따라 1월6일을 주현절로 기념한다. 이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어로 ‘테오파니아(Θεοφάνεια)’라 불리는 이 절기는 ‘신의 현현(顯現)’, 즉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드러나신 순간을 의미한다.

복음서에 기록된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예수께서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음성이 들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동시에 현현하신 유일무이한 순간이었다. 정교회는 바로 이 신비를 매년 재현하고 기념한다.


물의 거룩함, 축복의 의식

주현절의 핵심은 ‘대성수의식(Great Blessing of Waters)’이다. 정교회 신학에 따르면, 예수께서 요단강에 들어가셨을 때, 물에 씻김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을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셨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세례는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한 피조세계 전체를 구속하고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의식의 정점에서 사제는 물을 향해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의 강림으로 이 물을 거룩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숨결은 생명의 상징이다. 창조 때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듯, 사제는 물에 신적 생명을 불어넣는다. 축복 십자가가 물속에 담겨지고, 회중의 찬송이 울려 퍼지는 순간, 평범한 물은 성수(聖水)로 거듭난다. 정교회는 이렇게 축복된 물이 성령의 은총을 입어 물질적 부패를 초월하는 신성한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한다.

image.png 주현절 얼음물 입수 @ 중앙일보

많은 정교회 공동체에서는 실내 성수의식에 이어 야외 의식을 거행한다. 러시아에서는 얼어붙은 연못이나 강의 얼음을 십자가 모양으로 깨어 ‘요단’이라 불리는 목욕터를 만든다. 이곳에서 다시 성수의식이 거행되고, 사제는 십자가를 물속에 던진다. 젊은이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어 십자가를 건져 올리려 경쟁하고, 첫 번째로 십자가를 건진 이는 그 해에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고 여겨진다. 신자들은 최소한의 옷만 걸친 채 영하의 얼음물에 온몸을 담근다. 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 들어가심으로써 저주받은 물을 축복으로 바꾸셨듯, 그들도 차가운 물에 들어감으로써 영적 갱신과 정화를 경험한다. 죽음과도 같은 차가운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세례의 의미를 재현하는 것이다.

축복받은 물, 축복하는 삶

의식이 끝나면 신자들은 성수를 작은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간다. 이 물은 일 년 내내 가정에 보관되며 그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다. 많은 정교회 신자들은 매일 아침 기도와 함께 성수를 조금씩 마신다. 병들었을 때, 유혹에 빠졌을 때, 위험한 순간에 성수를 마시며 기도한다.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 가기 전 성수로 축복한다.

주현절 이후 몇 주 동안, 사제는 교인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성수를 뿌리며 가정을 축복한다. 러시아에서는 새로 산 자동차를 교회로 가져와 축복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어업 시즌이 시작될 때 어선에 성수를 뿌리며 선원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한다. 그들은 이것을 단순한 미신이나 주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교회 신자들에게 성수는 그리스도의 현존, 성령의 은총이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통로다. 성수를 마시고 뿌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의 몸과 가정, 일상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기를 간구하는 기도의 실천이다. 교회안의 거룩함이 집과 직장, 길 위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창조의 구속, 물질의 거룩함

주현절 성수의식은 단순히 물을 축복하는 것을 넘어선다. 이것은 창조 세계 전체의 구속에 대한 정교회의 신학을 드러내는 의식이다. 창세기에서 창조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창조의 첫 요소였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 세계 전체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세례는 이 저주를 역전시키는 새 창조의 시작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 들어가신 것은 아담의 죄로 더렵혀진 물질세계 속으로 하나님 자신이 들어오신 사건이다. 그분의 신성이 물질과 접촉함으로써, 물질세계는 다시 “심히 좋았더라”는 창조 당시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교회가 성찬 예배에서 빵과 포도주를, 세례에서 물을, 혼인에서 반지를 거룩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질세계는 악한 것이 아니라 타락했으나 구속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 세계 전체가 회복되고 변화될 수 있다. 성수 의식은 이 우주적 구원의 신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성사다.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들

주현절 성수 의식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먼저, 물질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현대 문명은 자연을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지금, 정교회의 성수 의식은 물을 비롯한 자연이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물을 축복하는 행위는 생태적 책임에 대한 영적 표현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 농작물에 주는 물, 공장에서 쓰는 물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인식은, 환경 파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거룩함의 영역을 확장한다. 성수를 집으로 가져가 매일 마시고, 자녀를 축복하고, 자동차와 배를 축복하는 관습은, 거룩함이 교회 안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세속과 성스러움 사이에 엄격한 경계를 긋는 대신, 정교회는 일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현대인이 겪는 삶의 파편화, 즉 종교적 시간과 세속적 시간, 영적 공간과 일상 공간이 분리되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또한 몸과 영혼의 통합적 구원을 선포한다. 영혼만 구원받으면 되고 육체는 버려야 할 것이라는 이원론적 사고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는 신자들의 모습은, 구원이 비물질적 영혼만의 탈출이 아니라 몸을 포함한 전인적 변화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몸을 학대하거나 무시하는 극단적 금욕주의도, 물질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육체주의도 아닌, 몸과 영혼 모두를 하나님께 드리는 균형 잡힌 신앙의 모습이다.

공동체적 신앙의 중요성도 재발견하게 한다. 주현절 의식은 개인의 경건이 아닌 교회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사제와 신자, 어른과 아이가 함께 모여 같은 성수를 마시고, 같은 축복을 받는다. 현대 사회의 극단적 개인주의, 각자도생의 문화 속에서, 이 의식은 우리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임을 일깨운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 예배하고 축복을 나누는 공동체적 경험이 신앙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역설적 신앙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영하 20도의 얼음물 속으로 뛰어드는 신자들의 모습은 외부인에게는 광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추위 속에서 생명을, 죽음 같은 물속에서 부활을, 고통 속에서 기쁨을 경험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죽음을 통한 생명, 낮아짐을 통한 높아짐, 고난을 통한 영광을 바라본다. 주현절 의식은 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역설을 몸으로 체험하게 한다. 편안함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이 역설은 더욱 빛을 발한다.

월, 화, 수, 금, 토 연재
이전 18화서약 없는 결혼: 모스크바의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