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설을 찾아가는 길
아버지 윤노가 남긴 마지막 유언, "검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윤검의 가슴속에 박힌 날카로운 가시였다. 대장장이로서 이름은 얻었으나, 그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그저 쇳덩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연장이 아닌, 하늘의 뜻을 담은 검은 대체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윤검은 지리산 깊은 곳에 은거한다는 '송추거사'를 찾아 나섰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구름을 부리고 쇠의 영혼과 대화하는 신선이라 했다. 험한 암벽을 타고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를 헤치며 사흘 밤낮을 헤맨 끝에, 윤검은 깎아지른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초옥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바위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노인이 있었다. 윤검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생, 검의 본질을 깨닫고자 왔습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노인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찻잔의 김만 바라보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눈비가 윤검의 어깨 위로 쌓여도 거사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송추거사가 입을 열었다.
"검은 살생의 도구다. 선비의 자식이 어찌 피 냄새 진동하는 길을 가려하느냐?"
"제 아버지는 검을 만들라는 명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가문의 한(恨)이자, 제가 태어난 이유입니다. 답을 얻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썩어 문드러지겠습니다."
윤검의 눈에는 광기에 가까운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거사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윤검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 속에는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집념이 들끓고 있었다.
"검을 만들고 싶거든, 먼저 네 마음부터 찾아라. 마음이 없는 검은 그저 날카로운 흉기일 뿐이다."
그날 이후, 지리산의 모진 풍파 속에서 윤검의 십 년 수행이 시작되었다.
2. 마음과 피의 선문답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오의 햇살이 지리산 계곡에 쏟아질 때, 윤검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서늘한 칼날이 햇빛을 퉁겨내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십 년 전의 백면대장장이는 간데없고, 허리까지 내려온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거친 수염을 기른 한 마리 야수와 같은 사내가 그곳에 있었다.
윤검의 검무(劍舞)는 신(神)을 부르는 무속의 춤사위와 같았다. 번뇌가 고개를 들 때마다 그는 제 살을 베어내듯 공기를 갈랐다. 그때, 지팡이를 짚은 송추거사가 다가와 나직이 물었다.
"검을 찾았느냐?"
"……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윤검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건조했다. 거사는 비수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검은 곧 마음이다. 네가 만드는 검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
"마음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무형의 마음을 어떻게 쇳덩이 속에 새겨 넣어야 합니까?"
"피를 새겨 넣어야겠지."
"피를…… 어떻게 새긴단 말씀입니까? 누구의 피를 말입니까?"
윤검의 절박한 물음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평소 인자하던 송추거사의 입에서 산천을 뒤흔드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이놈! 그것은 네 몫이 아니다! 하늘이 부릴 일을 어찌 인간인 네가 탐하려 하느냐!"
벼락같은 고함에 윤검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얼떨결에 올려다본 하늘은 티 없이 맑고 깊었다. 순간, 윤검의 머릿속을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 그것이다. 피를 새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나의 소임은 오직 무심(無心)으로 검을 벼리는 행위 그 자체에 있을 뿐.'
가슴을 짓누르던 바윗덩어리가 사라졌다. 검의 완성은 자신의 아집이 아니라, 하늘이 허락한 순리에 맡기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 윤검은 비로소 하산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았다.
3. 사부의 눈물과 불길한 예감
하산을 앞둔 윤검이 사부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다. 송추거사는 제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직이 불러 세웠다.
"네가 만든 검을 꼭 보고 싶구나."
"반드시 천하제일의 검을 만들어 사부님께 보답하겠습니다."
윤검의 다짐에 거사는 탄식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는 네 검은 볼 수 있겠으나, 너를 다시 보지는 못할 것이다."
윤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 본 사부의 눈가에는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평생 바위 같던 이의 눈물은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그만 내려가거라. 네 운명이 기다리는 곳으로."
거사는 제자에게 흔들리는 마음을 보이기 싫은 듯 재빨리 등을 돌렸다. 사부의 눈물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십 년 만에 만날 아내 승희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 모든 의문을 덮어버렸다. 윤검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4. 무너진 하늘, 부서진 영혼
마을 어귀에 들어선 순간, 윤검의 발걸음이 굳어버렸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정겨운 밥 짓는 냄새가 아니라, 썩은 나무와 이끼의 눅눅한 악취였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잡초와 덩굴이 뒤엉켜 집어삼킨,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폐가였다. 서까래는 주저앉았고, 아내 승희가 정갈하게 닦아놓았던 장독대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럴 수가…… 이럴 리가 없다."
윤검은 미친 듯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이웃에 살던 홍 여인이 그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윤 서방 아니오? 어휴, 왜 이제야 오셨수!"
"어머니는…… 제 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왜 집이 이 꼴입니까!"
홍 여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치맛자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죽은 지 벌써 삼 년이 넘었소. 그 지독한 염병이 온 마을을 휩쓸 때, 새댁이 글쎄…… 병든 노인네를 끝까지
수발들다가 본인마저 그렇게 허망하게 갔단 말이오. 둘이 한날한시에 나란히 묻혔소."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귓속에선 날카로운 이명이 울려 퍼졌고, 눈앞의 풍경은 핏빛으로 번지며 무너져 내렸다. 십 년 동안 산속에서 '마음'을 찾겠다고 버틴 시간들이 돌연 거대한 비웃음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내가!"
윤검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터져 나온 절규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흙바닥 위를 굴렀다. 십 년의 수행으로 얻은 평정심은 단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부인! 어머니! 으아아아악!"
그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닥을 기며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성은 이미 마비되었다. 홍 여인이 옆에서 무어라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으나, 윤검의 귀에는 그것이 저승사자의 조롱이나 바람 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정신 차려요, 윤 서방!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아이는 살았단 말이오! 윤 서방 아들, 충이는 살았단 말이오!"
홍 여인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흔들며 소리쳤지만, 윤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죽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부서진 장독 조각을 손에 꽉 쥐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나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늘은 무너졌고, 그가 찾으려 했던 '마음'은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산산조약 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