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망령의 행보
윤검은 걸었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진물이 짓이겨져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피가 솟아도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통증이 반가웠다. 육체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가슴을 난도질하는 죄책감이 아주 잠시나마 무뎌지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십 년이었다. 내가 산속에서 허상을 쫓던 그 긴 세월 동안…….’
어머니는 병마와 싸우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고, 아내는 홀로 가정을 지키다 차가운 흙바닥에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들이 가장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자신은 지리산 품에 안겨 ‘마음’이니 ‘하늘의 뜻’이니 하는 한가로운 소리나 읊조리고 있었다. 스스로가 짐승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게 섰거라! 수상한 놈이다!”
적막을 깨는 서슬 퍼런 외침이 들렸다.
야간 순라를 돌던 포졸 두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넝마가 된 옷가지에 초점 없는 눈동자로 휘청이는 윤검의 행색은 누가 보아도 범죄자였다. 포졸들은 긴장한 기색으로 창끝을 윤검의 목전에 들이댔다.
"이 놈이!"
그 순간, 윤검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십 년간 연마한 무아의 경지는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발현되었다. 그는 앞을 막아선 포졸의 팔을 낚아채 그대로 허공으로 내던져버렸다. 남은 한 명의 멱살을 움켜쥐었을 때, 포졸이 비명처럼 내뱉었다.
“살려주시오! 제발…… 내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소!”
‘처자식’이라는 소리가 윤검의 고막을 찢고 들어와 뇌리를 강타했다.
멱살을 움켜쥐었던 손에서 비로소 힘이 빠져나갔다. 포졸은 컥컥거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졌고, 윤검 또한 끊어진 줄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의 분노조차 다스리지 못한 채, 무고한 가장을 해치려 했던 흉측한 괴물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부끄럽고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2. 조인식, 보이지 않는 그물
차디찬 옥방의 흙바닥 위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기약 없는 수감 생활은 오히려 윤검에게 자아를 돌아볼 침묵의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옥문이 열리며 그는 현감의 사택으로 인도되었다.
은은한 향나무 냄새가 감도는 방 안, 그곳에는 눈빛이 가을 서리처럼 맑고 예리한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이 고을 현감, 조인식이었다. 조인식은 자상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차를 달였다.
사실 조인식은 평범한 현감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왜국의 동태와 조선 내부의 당파 싸움을 지켜보며, 머지않아 이 나라에 전무후무한 환란이 닥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전국 각지에 자신만의 정보망을 가동하여 인재들을 남몰래 수집하고 있었고, 윤검 역시 그 ‘그물’에 걸려든 대어였다.
윤검이 지리산에서 하산하여 옛집에서 울부짖을 때, 순라군들이 그를 즉시 체포하지 않았던 것도 조인식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그자가 스스로 광기를 쏟아내게 두어라. 슬픔이 바닥을 쳐야 비로소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법이다.”
조인식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윤검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그래, 앞으로 무엇을 하시겠소? 죽음으로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남겨진 천명을 완수할 것인가? 말이요”
윤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아내와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자에게 ‘앞날’이란 사치였다. 조인식은 그런 윤검의 패배주의를 깨뜨릴 마지막 한 수를 던졌다.
"내 그대에게 소개할 아이가 하나 있소. 그 영특함이 가히 하늘이 내린 듯하여 내 이리로 들라하였으니, 직접 대면하여 그 자질을 한 번 살펴보시구려."
방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들어왔다. 초라한 옷차림이었으나 몸가짐은 단정했고, 눈매에는 서슬 퍼런 기운이 서려 있었다. 윤검은 홀린 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윤충이라 합니다.”
순간, 윤검의 뇌리를 거대한 벼락이 치고 지나갔다. 아들의 나이와 이름. 자신이 지리산으로 떠나기 전 아내의 복중에 있던 그 생명이었다. 갑자기 홍여인의 아들이 있었다는 말이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윤검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너의 아버님은…… 아버님은 어디 계시냐?”
아이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님은 성함이 ‘윤’자 ‘검’자 되시는 분으로, 하늘의 검을 만들기 위해 산으로 가셨다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할머님을 수발드시다 돌아가셨으나, 제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반드시 돌아와 조선의 운명을 지킬 검을 만드실 분이라고 말입니다.”
윤검의 시야가 순식간에 흐려졌다.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굶주림과 병마 속에서도 아들에게 아버지를 향한 긍지와 ‘충’이라는 대의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윤충은 또박또박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어머님은 제게 무사가 돼라 하셨습니다. 검을 잡은 자에겐 나라에 대한 충성밖에 없다고, 그래서 제 이름을 충이라 지어주셨습니다. ”
윤검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지리산에서 찾으려 했던 ‘마음’은 산속의 공허한 화두가 아니라, 바로 가족의 희생과 아내의 믿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을.
“아아…….”
윤검은 마침내 참아왔던 오열을 터뜨렸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를 향해 거친 손을 뻗어 부서질 듯 힘껏 껴안았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는 차가운 쇠붙이가 아닌, 따스한 핏줄의 온기를 품에 안았다. 그 온기는 차갑게 식어버린 윤검의 가슴속에 다시금 뜨거운 불꽃을 지피기 시작했다.
3. 박승희의 마지막 절규
조인식은 십 년 만에 아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윤검을 보며, 오래전 기억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것은 현풍 현감으로 부임하던 첫해, 코끝을 찌르던 매캐한 약초 냄새와 피눈물로 얼룩진 어느 서늘한 오후의 기억이었다.
당시 마을은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썩어가는 시신들이 길가에 방치된 가운데, 한 초가집 앞에서는 살기등등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 할망구를 당장 내다 버리지 않으면 우리 마을 사람 다 죽어! 어서 비키지 못해!"
역병에 걸려 거친 숨을 내뱉는 노파를 멍석에 말아 버리려는 마을 사람들 앞을, 한 여인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윤충의 어머니, 박승희였다.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절규했다.
"안 됩니다! 내 시어머니십니다! 산 사람을 어찌 구덩이에 던진단 말입니까! 나를 먼저 죽이고 데려가십시오!"
감찰을 나갔던 조인식이 군관들을 시켜 사람들을 물린 뒤, 박승희에게 다가가 나직이 타일렀다.
"부인, 이대로 있다간 부인마저 감염되어 목숨을 잃을 것이오. 시어머니는 이미 운명을 다해가고 있으니, 이제 그만 손을 놓으시오."
그러나 박승희는 지극정성으로 노파의 입술에 물을 적시며 조인식에게 답했다.
"나으리, 제 어머니는 제가 반드시 살릴 것입니다. 제 목숨은 이미 하늘에 맡겼으니, 제발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한 생명이라도 살리려 사투를 벌이는 그녀의 숭고한 고집 앞에 조인식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이미 집 안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박승희가 갑자기 방구석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어린 아들, 윤충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조인식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으리... 소인의 마지막 청이옵니다. 이 아이만은, 우리 충이만은 제발 데려가 주십시오. 이 어미의 미련함 때문에 이 귀한 생명까지 역병의 제물로 바칠 수는 없습니다. 나으리 같은 분이라면 이 아이를 사람답게 키워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인식은 아이의 맑은 눈망울과 박승희의 애절한 눈빛을 번갈아 보았다. 윤충의 총명함을 읽어낸 조인식이 아이의 손을 잡으려 하자, 어린 윤충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싫습니다! 어머니랑 같이 있을래요! 어머니 두고 안 갑니다!"
그때였다.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보살피던 박승희의 손이 돌연 매정하게 아들의 뺨을 후려쳤다.
"이놈! 정녕 네가 내 아들이라면 어찌 이리 어리석게 구느냐! 네가 여기 남아 내 수의라도 짜겠다는 것이냐!"
박승희는 모질게 아이를 밀쳐내며, 차가운 흙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아이의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으나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아들을 향해 휘두르며 소리쳤다.
"가거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너 같은 겁쟁이는 내 자식이 아니다! 다시는 이 어미를 찾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마라!"
윤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배신감에 젖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조인식이 아이를 억지로 말 위에 태우자, 박승희는 그제야 몽둥이를 떨어뜨리고 무너져 내렸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를 향해, 그녀는 땅을 치며 피 맺힌 당부를 토해냈다.
"충아! 꼭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훌륭한 무사가 되어라! 네 칼로 억울한 생명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인식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통곡 소리를 들으며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어머니의 마지막 절규였다.
그날 이후, 윤충은 단 한 번도 나태해지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내치며 했던 그 모진 말들을 심장에 새겼고, 그 상처 위로 단단한 충절의 근육을 키워냈다.
조인식은 윤충이 아버지 윤검을 부둥켜안은 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광경을 안쓰러움과 흐뭇함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지켜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제야 칼날이 바로 서겠구나. 하늘의 명을 받은 검, 그 검은 이 아이의 눈물 위에서 제련되리라.’
조인식은 이미 머릿속으로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윤검과 윤충 부자를 주축으로 하여, 머지않아 닥칠 환란에 대비할 비밀 무사조직의 기틀을 닦을 계획이었다. 윤검의 압도적인 무력과 윤충의 충심, 그리고 자신의 정보력이 합쳐질 때 조선의 희망은 시작될 것이었다.
윤검은 아들의 어깨를 잡고 결연한 눈빛으로 조인식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죽음을 갈구하던 망령의 눈빛이 아니었다.
“현감나리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이 아이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검을 만들겠습니다.”
조인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찻물을 따랐다. 십 년의 고행 끝에, 비로소 하늘의 검, 천검의 진짜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