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이 빛의 통로가 될 때
본가는 지성에게 안식처가 아닌, 도망치고 싶은 ‘실패한 도면’ 그 자체였다.
대문을 열 때마다 들리는 비명 같은 삐그덕 소리, 수평이 맞지 않아 제멋대로 열리는 문짝들.
지성은 평생 그 낡은 소음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를 대고 그은 듯한 매끄러운 수직의 세계를 지어 올렸다.
그에게 성공이란 본가의 가난한 소음을 세련된 마감재로 덮어버리는 일이었고, 부모님의 굽은 등을 자신이 지은 견고한 빌딩의 기둥으로 바꿔놓는 일이었다.
그런 지성에게, 무너져가는 본가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의 전 생애를 부정하는 치욕이었다.
지성은 차라리 폐교를 택했다.
본가의 삐그덕거림이 ‘고쳐야 할 책임’이었다면, 폐교의 삐그덕거림은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폐허’였기 때문이다.
이미 망가진 이곳에서만, 지성은 비로소 자신도 망가진 채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곳은 어떤 사회적 직함도 통하지 않는 ‘영점(Zero Point)’의 공간이었다.
장마가 시작된 밤, 낡은 천장의 서까래 틈 사이로 빗방울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지성은 공황에 빠졌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듯 요동쳤다.
건축가인 그에게 저 틈은 파멸의 전조였다.
그때, 노란 우비를 입은 이장이 들이닥쳐 찌그러진 양은 냄비를 빗물 아래 툭 밀어 넣었다.
챙그랑—!
“이장님, 저 틈... 당장 보수하지 않으면 건물이 주저앉아요!”
“이 사람아, 저 틈은 이 학교가 수십 년 동안 비바람 맞으면서 숨 쉬느라 생긴 ‘숨구멍’이여. 저게 있어야 나무가 안 썩고 버티는 겨! 임 소장, 자네가 밤새 걱정한다고 저 빗줄기가 멈춘대? 그냥 냄비 소리나 들으면서 잠이나 자!”
이장은 지성의 완벽주의를 비웃듯, “비 오면 양동이 받치고, 해 뜨면 말리면 된다”는 투박한 생존의 도리를 던지고 사라졌다.
지성은 밤새도록 양은 냄비가 내는 불규칙한 리듬을 들으며, 자신의 오만한 염려가 세상을 붙들고 있다는 착각을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하지만 아침은 지성의 저주 섞인 예언을 비웃듯 찬란하게 찾아왔다.
눈을 떴을 때 학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 그토록 두려워했던 ‘파멸의 구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정오의 햇살이 칼날처럼 예리하게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그 빛은 교실 안의 퀴퀴한 먼지들을 ‘은하수’로 바꾸어 놓았다.
지성이 밤새 공포에 떨며 쳐다보던 그 구멍은, 사실 하늘의 영광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단 하나의 통로였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누수’는 파멸의 전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어두운 내부와 눈부신 외부를 연결하는, 이 낡은 건물이 선택한 가장 정직한 통로였다.
원형의 설계자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빚었을 때도, 그 안에 ‘숨’이 머물 수 있는 텅 빈 자리를 가장 먼저 마련해두었을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창밖을 보니 이장의 손주들이 운동장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다.
창틀에 기댄 채 빛 속에서 유영하는 무지갯빛 방울들을 보며, 지성은 비로소 꽉 쥐었던 주먹을 펴냈다.
밤새도록 자신을 괴롭혔던 그 모든 공포 중에, 실재가 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성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
수화기 너머 아내의 숨소리가 들리자, 지성은 비로소 자신의 파산을 고백했다.
“나... 사실 많이 아파. 어젯밤엔 저 천장의 틈이 무너질까 봐 한숨도 못 잤어. 근데 여보, 아침이 되니까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더라. 내가 밤새 걱정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어. 학교도, 나도 무너지지 않았어.”
지성은 양은 냄비에 고인 맑은 빗물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파동이 번져 나갔다.
“연우랑 같이 이리로 와줄래? 여기 비 새는 낡은 학교에서, 우리 같이 빛 구경하자. 이제 도망치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