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설계자의 고백
서울 강연장의 공기는 서늘할 만큼 정제되어 있었다.
폐교의 목공소에서 묻혀온 짙은 나무 향은 강남 한복판, 최고급 호텔 강연장의 인공적인 방향제 냄새에 맥없이 지워졌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단상 위의 지성을 향해 화살처럼 쏟아졌다.
그중에는 그의 복귀를 시샘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동료들도, "얼마나 대단한 걸 들고 왔나 보자"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섞여 있었다.
지성은 심호흡을 하며 PPT 첫 장을 넘겼다.
화면에는 지성이 서산의 폐교에서 구상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설계도가 띄워졌다.
하지만 객석에서는 기대했던 탄성 대신, 미묘하고도 차가운 술렁임이 일었다.
화면 속의 설계도는 기이했다.
예전 임지성의 전매특허였던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날카로운 직선과 압도적인 효율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김중업의 건축에서 보았던 것처럼 기묘하게 뒤틀린 나선형의 계단과, 자를 대지 않고 그린 듯한 부드러운 곡선들이 가득했다.
“임 소장, 저 계단은 뭐야? 오르내리기에 너무 가파르고 위험해 보이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비효율적인 설계를?”
“건축이 아니라 조각을 해놨군. 조명 시설도 제대로 안 보이고... 저게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인가?”
객석 여기저기서 노골적인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성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꽉 쥐었다.
서울의 건조한 공기가 폐부를 찌르자, 잠잠하던 공황의 전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고, 마우스를 쥔 오른손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예전처럼 현란한 수식과 미학적 변명으로 저 설계도의 ‘의도’를 포장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성은 비겁하게 손을 숨기는 대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맞습니다. 제가 설계한 이 집의 계단은 좁고 높습니다. 노약자가 오르기엔 숨이 차고, 바삐 뛰어 내려가기엔 발끝을 조심해야 하는 불편한 계단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 '빨리' 가기 위해 인생의 모든 곡선을 잘라내고 직선의 고속도로만 깔아왔습니다. 이 계단을 오를 때만큼은 사람들은 숨을 고르게 됩니다. 좁은 보폭을 맞추려 주의를 기울이고, 그러다 보면 계단참 옆으로 난 작은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을 발견하게 되죠.”
지성은 화면 속 조명 하나 없는 거실을 가리켰다.
“이 집은 조명이 필요 없습니다. 빛이 머물다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했으니까요. 조명은 스위치를 켜면 그만이지만, 이 집의 빛은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저는 다시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지성은 마지막 슬라이드를 넘겼다. 화면 가득 띄워진 것은 화려한 투시도가 아니었다.
낡은 로고가 박힌 내과병원의 ‘공황장애 처방전’이었다.
“오늘 제가 보여드린 설계도가 여러분의 눈에는 부실해 보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더 이상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절대 변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로만 믿었고, 자신 또한 그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완벽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기괴한 강박이었습니다.”
강연장이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내가 지은 성벽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계도에는 일부러 많은 ‘틈’과 ‘곡선’을 남겼습니다. 그 틈으로 옆 사람의 한숨이 들리고, 서로의 체온이 건너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기울어진 틈새, 갈라진 균열 사이로만 비로소 하늘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강연회는 화려한 박수갈채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시간 낭비했다"며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지성에게, 한 젊은 건축가가 다가왔다.
그는 지성처럼 손을 미세하게 떨며 고백했다.
"소장님... 저도 사실 매일 밤 숨이 안 쉬어져서 약을 먹습니다. 제가 지은 건물이 완벽해야 하듯 제 인생도 오차가 없어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소장님의 그 비뚤어진 설계도를 보고... 처음으로 숨이 쉬어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이, 제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지성은 그 청년의 떨리는 손을 가만히 맞잡았다.
완벽한 성공담은 아니었지만, 정직한 무너짐이 누군가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지성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약함은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수신하는 가장 예민한 안테나가 되었음을.
[작가 코멘트]
세상은 우리에게 ‘완벽한 결과물’을 가져오라고 다그칩니다. 조금이라도 금이 가거나 기울어지면 '부실'이라는 낙인을 찍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침 가면이라는 시멘트를 바르고, 가장 반듯한 척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빛은 매끄러운 대리석 벽면이 아니라, 투박하게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가시를 빼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을 때, 돌아온 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가시가 아니었다면 그는 교만이라는 성벽에 갇혀 하나님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이 조금 기울어져 있다면,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올 은혜를 기대해 보세요.
우리의 약함은 수리해야 할 고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당신의 떨리는 손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떨림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기도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