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줄

흔들리는 선 위에서 묻다

by 연휘



서울에서 날아온 제안서는 눈부시게 매끄러웠다.


강남 한복판에 세워질 30층 높이의 주거 타워.


한때 내가 목숨처럼 지켰던 수직의 세계,


그 정점이 도면 속에 찬란하게 그려져 있었다.


소식을 들은 선배의 전화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비열했다.


"임 소장, 소문 들었어. 거기서 닭장이나 고치고 있다며? 사람들이 다 비웃어. 천재 건축가가 시골에서 나무나 깎다니, 완전히 맛이 갔다고 말이야. 이번 프로젝트로 복귀해. 다시 수트를 입고 네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증명해야지. 무엇보다... 네가 내팽개치고 간 뒷수습 하느라 고생한 네 아내 생각도 해야 할 거 아냐."


전화를 끊고 지성은 물끄러미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카락, 손톱 밑에 낀 검은 톱밥 가루.


거울 옆에 놓인 화려한 조감도 속의 자신은 빛나는 대리석 복도 위를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설렘이라기보다 비참함에 가까웠다.


10화에서 아내가 쏟아냈던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왔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던 아내의 눈물.


이 제안만 수락하면 아내의 구겨진 자존심을 단번에 펴줄 수 있었다.


지성은 자기도 모르게 선배에게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때, 천장 들보에 매달아 놓은 다림줄이 지성의 눈에 들어왔다.


낡은 실타래 끝에 녹슨 못 하나를 묶어 내린 다림줄은, 지성의 흔들리는 호흡에 맞춰 좌우로 위태롭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성은 휴대폰을 쥔 채 그 못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건축에서 수평계는 편리하지만 교활하다.


딛고 선 땅이 기울면 수평계 속의 액체도 함께 속인다.


서울에서의 삶이 그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커지면 그것이 수평인 줄 알았고, 통장의 숫자가 올라가면 그것이 수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선들은 세상이 조금만 흔들려도 함께 휘어지는 가짜들이었다.


지성은 요동치던 못이 서서히 멈추며, 오직 중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따라 '하늘과 땅'을 잇는 팽팽한 수직을 찾아내는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줄에 나를 매달고 살아왔나.'


다림줄은 땅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건물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중심만을 가리키며 섰다.


지성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서울의 화려한 조감도들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림줄 옆에 가져다 대니 그것들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사람의 욕망으로 세운 건물에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옆에서 문제집을 풀던 연우가 물었다.


지성은 떨리는 손으로 다림줄을 가만히 툭 건드려 보았다.


다시 요동치는 못을 보며 지성은 생각했다.


다시 선을 긋는다면, 이제는 사람의 박수가 아니라 나를 이곳에 보낸 이의 시선에 그 선을 맞추겠노라고.


그것이 비록 지금은 비웃음을 사는 비뚤비뚤한 선일지라도 말이다.


지성은 다시 제안서를 덮었다.


당장 거절할 용기는 아직 부족했지만, 적어도 무엇이 진짜 '수직'인지는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 코멘트]


우리는 저마다 손에 수평계 하나씩을 들고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내 인생의 기울기가 세상의 기준에 맞게 반듯한지 끊임없이 눈금을 확인하죠.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선 땅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면, 그 수평계는 우리를 가장 완벽한 방향으로 속이기 시작합니다.


11화의 지성이 꺼내 든 '다림줄'은 땅의 비위를 맞추지 않습니다.

오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정직한 힘에 자신을 맡길 뿐이죠.


혹시 지금 당신을 흔들고 있는 것은 타인의 박수 소리인가요, 아니면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다림줄의 침묵인가요?

오늘 당신의 하루가 세상의 수평에 맞추느라 급급하기보다, 당신을 이 땅에 보낸 이가 그어둔 단 하나의 선에 정렬되는 평온한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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