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지반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법

by 연휘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태풍은 기세가 남달랐다.


폐교의 낡은 유리창들이 비명을 지르며 덜덜 떨렸다.


지성은 가족들을 안전한 교실 안쪽으로 피신시킨 뒤, 홀로 창고 목공소로 향했다.


거센 비바람 속에서 대충 지어진 그 허름한 목재 창고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때 서울에서 다급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몇년 전, 지성이 온 힘을 쏟아 설계했던 강남의 랜드마크 빌딩 관리실이었다.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빌딩 하층부 강화유리 수십 장이 한꺼번에 터져나갔습니다. 프레임이 뒤틀린 건지, 태풍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있어요!"


지성은 빗줄기 사이로 자신의 창고를 바라보았다.


그 빌딩은 지성이 '완벽'을 신봉하던 시절의 정점이었다.


단 하나의 공기 구멍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밀폐, 미동도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강철 뼈대.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한 딱딱함'이 독이 되었다.


유연하게 휘어질 줄 모르는 강철은 태풍의 거대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다 결국 가장 약한 고리인 유리창부터 터뜨려 버린 것이다.




반면, 지성이 서산에 내려와 지은 목재 창고는 기괴한 모습으로 폭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성은 이 창고를 지을 때 일부러 판재 사이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틈'을 남겨두었다.


완벽한 도면이 없어서 생긴 실수였지만, 지금 그 틈들은 바람이 휘몰아쳐 나가는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었다.


창고는 거세게 흔들렸다.


끼익, 끼이익—


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비명처럼 들렸지만, 그것은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의 박자에 맞춰 몸을 내맡기는 '춤'에 가까웠다.


"아빠! 무너지는 거 아냐?"


어느새 뒤따라온 연우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지성은 연우를 품에 안고 흔들리는 창고의 기둥을 가리켰다.


"아냐, 연우야. 저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견디고 있는 거야. 너무 단단한 건 부러지기 쉽지만, 저렇게 같이 흔들려주는 건 절대 쓰러지지 않아."




지성은 깨달았다.


자신이 서울에서 쌓아 올린 믿음이라는 성벽이 왜 그토록 쉽게 무너졌는지.


그는 하나님을 '절대 변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로만 믿었고, 자신 또한 그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완벽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강박이었다.


진짜 강함은 폭풍 앞에 뻣뻣하게 버티는 고집이 아니라, 바람의 길을 인정하며 그 거대한 힘과 함께 흔들릴 줄 아는 정직한 부드러움이었다.


기초가 땅 밑 깊숙이 박혀 있다면, 지상의 뼈대는 얼마든지 비명을 지르며 휘어져도 괜찮았다.


땅 밑 깊숙이 박힌 기초가 단단하다면, 지상의 뼈대는 얼마든지 유연해도 괜찮았다.


오히려 그 흔들림이 폭풍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된다.


"연우야, 겁낼 거 없어. 이 창고의 기초는 아빠가 저 땅 밑 깊은 곳까지 사랑으로 박아넣었거든. 기초가 사랑이면, 위는 좀 흔들려도 괜찮아."


태풍이 지나간 뒤, 서울의 그 화려한 빌딩은 깨진 유리 파편으로 흉측한 상처를 입었지만, 서산의 틈새 많은 창고는 젖은 몸을 털어내며 그대로 서 있었다.


지성은 젖은 손으로 창고의 거친 벽면을 쓸어내렸다.


완벽한 수직보다 중요한 것, 그것은 폭풍 속에서도 함께 춤출 수 있는 유연한 지반이었다.


이제 지성은 서울로 돌아가 그 '부드러운 요새'를 지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작가 코멘트]


우리는 인생에 태풍이 올 때마다 더 단단한 벽을 쌓으려 애씁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완벽한 상태를 '강한 믿음'이라 오해하기도 하죠. 하지만 너무 딱딱하게 굳은 마음은 예상치 못한 압력 앞에서 허망하게 깨져버리곤 합니다.


오늘 당신의 삶은 어떻게 바람을 맞고 있나요? 혹시 부러지지 않으려 버티다 비명을 지르고 있지는 않나요?


기억하세요. 흔들리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초가 그분의 깊은 사랑에 박혀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그 흔들림이야말로 폭풍을 통과하게 하는 가장 거룩한 춤입니다.


keyword
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다림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