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이 모여 이루는 평화
연희동의 낡은 주택들이 어깨를 맞댄 채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 궁동산 산자락이 마을의 등을 포근히 감싸 안은 그 언덕 끝에 지성의 집이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따로 이름 붙이지 않고 그저 ‘틈새’라고 불렀다.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노출 콘크리트 지붕의 곡선이었다.
김중업의 건축에서 보았던 것처럼, 지붕은 육중한 무게를 버리고 안산의 능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위압적인 담장 대신,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커다란 유리창과 낮은 처마가 놓였다.
마당에 서면 연희동의 붉은 벽돌집들이 퍼즐 조각처럼 정겹게 내려다보였고, 고개를 들면 안산의 거친 바위 능선이 장엄하게 서 있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외벽과 지붕이 완전히 맞닿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지붕은 벽체 위에 육중하게 얹혀 있는 대신, 마치 궁동산의 기류를 타고 떠 있는 듯 벽면과 한 뼘 정도의 간격을 두고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설계 실수처럼 보이는 그 외벽의 틈새들은 사실 지성이 의도한 ‘숨구멍’이었다.
그 사이로 궁동산의 솔바람이 거침없이 드나들며 숲의 냄새를 실어 날랐고, 비가 오면 빗방울이 곡선형 처마를 타고 흐르는 모습이 거실 유리창 너머로 한 편의 영화처럼 상영되었다.
이곳의 또 다른 백미는 거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조각 작품처럼 우아하게 휘어진 계단은 아름다웠지만, 폭이 좁고 가팔라 오르내리는 이의 보폭을 강제로 늦추게 만들었다.
“아빠, 이 계단은 오를 때마다 꼭 기도를 하는 기분이야. 한 칸씩 조심조심 마음을 고르게 돼.”
딸 연우의 말대로였다.
지성은 일부러 편리함을 깎아내고 그 자리에 ‘주의 깊은 관찰’을 심었다.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찰 때쯤 고개를 돌리면, 벽체 사이의 좁은 틈새(Slit)를 통해 쏟아지는 날카로운 햇살이 발등을 비추었다.
지성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할 성벽을 쌓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족들이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꺼내 놓을 수 있는 ‘정직한 평면’을 제공했다.
“아빠, 여기 은하수가 생겼어.”
80만 원짜리 중고 원목 테이블에 앉아있던 연우가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를 가리켰다.
궁동산 너머로 기울어가는 오후의 햇살이 곡선 벽면을 타고 부드럽게 굴절되어 들어오자, 공중에 떠다니던 먼지들이 금가루처럼 반짝이며 춤을 추었다.
지성이 서산 폐교 창고에서 보았던 그 ‘먼지 은하수’가 연희동 우리 집 거실에도 내려앉아 있었다.
조명이 필요 없는 집.
빛이 머물다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으니, 공간은 스스로 밝아졌다.
강연회에서 만났던 선배 건축가가 이곳을 찾아와 물었다.
발아래 펼쳐진 연희동의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그는 외벽의 틈새를 보며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임 소장, 풍광은 끝내주는데... 이 계단은 너무 위험하고, 지붕이랑 벽 사이로는 찬바람이 다 들어오잖아. 보안은 또 어쩔 거고? 이게 정말 집이야? 예술이지.”
지성은 안산의 바위 능선을 바라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선배, 완벽하게 막히고 편리한 집은 감옥이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따뜻하고 안전하게만 살려다가 서로의 소리를 못 듣게 됐잖아요. 좀 춥고 시끄러워도 괜찮아요. 이 틈새가 있어야 옆 사람의 한숨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로 하늘의 은혜도 흘러 들어오거든요. 저 아래 동네가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집집마다 불이 켜지며 그 틈새로 온기가 새어 나올 때예요.”
저녁 무렵, 연희동 골목에 어둠이 깔리자 ‘틈새’에서 새어 나온 빛이 궁동산 언덕길을 밝히기 시작했다.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그 빛은 눈부시지 않았지만, 길을 잃고 헤매던 이들에게는 더없이 포근한 이정표가 되었다.
지성은 연우와 아내가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설계도를 내려놓았다.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천국은 대단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 빈틈을 사랑으로 채우는 소박한 식탁 위에 이미 그 나라는 임해 있었다.
연희동의 붉은 지붕들이 보랏빛 노을에 물들어가는 풍경 속에서, 지성은 처음으로 완벽한 수평계 대신 곁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 자신의 시선을 맞추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지성의 진짜 건축은, 이제야 비로소 첫 삽을 뜬 셈이었다.
[작가 코멘트]
우리는 늘 빈틈없는 인생을 꿈꿉니다. 결점 하나 없는 경력, 흠 잡을 데 없는 관계,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이라 믿죠.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성벽 안의 고요가 아니라, 담장을 허물고 서로의 연약함을 껴안는 떠들썩한 사귐 속에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 난 그 보기 싫은 ‘틈새’를 미워하지 마세요. 그곳은 당신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천국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요새가 아닙니다. 깨진 조각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며, 그 틈 사이로 흐르는 빛을 함께 누리는 낮은 식탁입니다. 궁동산 자락에서 내려다본 연희동의 불빛들처럼, 우리의 틈새는 오늘 어떤 온기를 통과시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