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조직이 만든 수렴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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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고,
누군가는 인턴을 하고,
누군가는 공모전에 나가고,
누군가는 포트폴리오를 만듭니다.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직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보고서를 더 잘 쓰는 법을 익히고,
누군가는 AI를 먼저 배우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다릅니다.
방식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그런데 조금 오래 보고 있으면
이상한 장면이 보입니다.
준비는 다른데,
결론은 자꾸 비슷해집니다.
다들 차별화를 말하는데
점점 더 닮아갑니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원래는 결과도 더 다양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비슷한 기준을 의식하고,
더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다듬고,
더 비슷한 방향으로 몰려갑니다.
경영학에서는
서로 다른 경로가 같은 종착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점을
동일종착점(equifinality)이라고 부릅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목적지로 향하거나 결과물을 창출하는 방법은 여럿일 수 있지만,
도달한 결과는 꽤 비슷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오늘의 경쟁이
이 말을 조금 더 불편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취준생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직장인은
자기만의 경쟁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막상 움직일수록
사람들은 자꾸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게 됩니다.
증명 가능한 경험.
설명 가능한 성과.
이력서에 적히는 문장.
면접에서 말할 수 있는 서사.
평가표에 반영될 수 있는 기술.
여기서부터 준비는
개성의 문제가 아니라
통과 가능성의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통과될 것 같은 것을 선택합니다.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우지 않습니다.
평가에 반영될 것 같은 것을 익힙니다.
잘하고 싶은 것만 잘하려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설명 가능한 방식으로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준비는 점점 닮아갑니다.
조직이론은 이 현상을 꽤 오래전부터 설명해 왔습니다.
DiMaggio와 Powell은 조직이 효율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 모방과 압력 속에서 점점 비슷한 형태로 닮아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제도적 동형화(institutional isomorphism)라고 불렀습니다.
이건 조직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도 비슷합니다.
취준생은
합격한 사람의 이력을 보며 자기를 조정합니다.
직장인은
평가받는 사람의 말투와 방식, 성과의 형태를 보며 자기를 조정합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시장에서 통하는 언어를 익히며 자기를 조정합니다.
우리는 자기 기준만으로 살지 않습니다.
항상 남과 비교하며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늠합니다.
심리학자 Festinger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상태를 이해할 때
타인과의 비교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의 취업시장과 직장 문화는
그 비교를 훨씬 더 빠르고 촘촘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비교의 대상이 좁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합격 후기, 링크드인 경력, 포트폴리오, 커뮤니티, 유튜브, 생성형 AI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타인의 준비 과정을 실시간으로 봅니다.
그 결과는 선명합니다.
준비는 더 많아졌고,
비교는 더 촘촘해졌고,
자유는 더 커진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들의 불안은 더 닮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조직에 들어갈 때도,
새로운 직무를 맡을 때도,
이직을 고민할 때도,
사람은 예측 가능한 선택을 더 선호합니다.
Van Maanen과 Schein은
조직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역할, 평가,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조직의 규칙과 기대를 학습하고 그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전환기일수록 사람은
‘나답다’는 감각보다
‘통과될 수 있다’는 감각에 더 끌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다양성이 아니라 모방이 강해집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참고하고,
이미 통과된 경로를 따라가고,
검증된 언어를 익히고,
설명 가능한 성과를 만들려 합니다.
창의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사람은 원래 그렇게 움직입니다.
결국 우리는
아주 다른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비슷한 기준 앞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조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준비가
너무 뻔해 보인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게으른 선택이 아니라,
이 시대가 더 자주 요구하는 합리성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조금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것을 향해 준비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통과될 것 같은 것을
원하는 것처럼 믿게 된 걸까요.
다른 준비가
정말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같은 문턱 앞에서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인지는
조금 더 오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시대의 경쟁은
다양성을 약속하면서도
정교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닮게 만드는 구조인지도 모릅니다.
왜 이렇게 다른 선택 끝에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에 도착하게 되는 걸까요.
어쩌면 중요한 것은
무엇을 준비했는가 보다
그 준비가 사람을 어떤 상태로 밀어 넣는가인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으로 내려가 보려 합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불안해지는가.
그리고 왜 지금의 성실함은
안정이 아니라 초조를 더 자주 남기는가.
어쩌면 그 답은
개인의 마음보다
그 마음을 오래 흔들어온 시대의 구조에 더 가까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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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aggio, P. J., & Powell, W. W. (1983). The iron cage revisited: Institutional isomorphism and collective rationality in organizational field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2), 147–160.
Festinger, L. (1954). A theory of social comparison processes. Human Relations, 7(2), 117–140.
Gresov, C. (1997). Equifinality: Functional equivalence in organization design.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2(2), 403–428.
Van Maanen, J., & Schein, E. H. (1979). Toward a theory of organizational socialization. In B. M. Staw (Ed.), Research in organizational behavior (Vol. 1, pp. 209–264). JAI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