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올랐지만 안도는 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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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는 빨라졌지만, 마음은 왜 더 급해졌을까?]
예전보다 빨라진 것은 분명합니다.
문서를 쓰는 시간도 줄었고,
자료를 찾는 시간도 줄었고,
처음 시작할 때 느끼는 막막함도 조금은 줄었습니다.
AI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더 빠르게 일할 수 있는 도구들을 계속 손에 넣어왔습니다.
검색은 빨라졌고,
소통은 즉시 가능해졌고,
정리는 자동화되었고,
이제는 생각의 초안까지 기술이 먼저 밀어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 더 빨라졌는데
더 편해졌다는 느낌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이전보다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마음은 더 바쁘고,
기준은 더 높아졌고,
잠깐 비는 시간조차
그냥 비어 있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기술이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말이
정말 누구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절약해주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역사학자 Cyril Northcote Parkinson의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은
일이 주어진 시간을 모두 채우는 방향으로 팽창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생각보다 정확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넉넉하면
일을 느긋하게 하지 않습니다.
대개 그 시간만큼
더 다듬고, 더 보완하고, 더 신경 씁니다.
문제는 기술이 빨라지면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대가 먼저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걸리던 보고서를
이제 몇 시간 만에 만들 수 있게 되면,
사람은 남은 시간에 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 더 좋은 보고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게 됩니다.
빨라졌다는 사실이
곧바로 여유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높은 완성도,
더 빠른 응답,
더 많은 처리량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술이 속도를 높여줄수록
일은 종종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다시 늘어납니다.
노동경제학자 Francis Green의 업무강화론(Work Intensification)은
현대의 노동이 단순히 오래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집중과 더 높은 강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고 설명합니다.
이 개념은 지금의 직장인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예전보다 덜 힘들어졌다고 느끼기보다,
같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취준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를 찾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래서 준비가 쉬워졌다고 느끼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보다 경력을 정리하고
시장 정보를 찾고
자기소개 문장을 다듬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준비가 가벼워지기보다
오히려 더 정교해져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따라옵니다.
기술이 시간을 줄여주면
우리는 그 줄어든 시간을
휴식으로 돌려받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간은 대개
더 잘해야 한다는 기대,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
더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기준으로 다시 채워집니다.
그래서 빨라진 도구는
사람을 덜 바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촘촘히 바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감정의 문제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심리학자 Philip Brickman과 Donald T. Campbell의 쾌락적응(Hedonic Adaptation)은
사람이 더 좋아진 환경이나 조건에 금방 익숙해지고,
그 변화가 오래 지속되는 만족으로 남지 않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와, 이거 정말 편하다”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곧 평범한 기준이 됩니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일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 상태가 금방 당연해지면,
사람은 더 이상 그것을 이득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부터
그 편리함은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기준의 일부가 됩니다.
처음에는
AI를 쓰는 것이 플러스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쓰지 않는 것이 마이너스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정도 속도는 당연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더 편해진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기준 위에서 다시 출발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요즘 느끼는 피로의 정체입니다.
분명 이전보다 도구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삶은 더 느긋해지지 않았고,
일은 더 단순해지지 않았고,
마음은 더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이 높인 속도는
곧 기준의 상향으로 이어지고,
기준의 상향은
다시 새로운 일상적 압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기술이 좋아질수록
조금 덜 힘들어지는 대신
조금 더 많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아주 조용하게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누가 노골적으로
“이제부터 두 배로 일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스스로 더 빨리 해야 할 것 같고,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이 정도는 당연히 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때 피로는
밖에서 밀어붙이는 압박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내가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믿는
내면의 기준으로도 들어옵니다.
그래서 지금의 피로는
과거보다 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도구는 좋아졌는데,
왜 나는 더 바쁜가.
분명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는데,
왜 나는 더 초조한가.
분명 시간은 아낀 것 같은데,
왜 마음에는 늘 시간이 부족한가.
어쩌면 문제는
우리가 시간을 절약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절약된 시간이
곧바로 더 높은 기대에 다시 흡수되는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기술은 시간을 벌어줍니다.
하지만 구조는 그 시간을 다시 가져갑니다.
도구는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더 급해진 이유는
바로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더 빠르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시대에는
남들이 더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더 빨리 정리된 결과,
더 매끄럽게 만들어진 문장,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일처리가
계속 눈앞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실제보다 더 쉽게
자기만 뒤처진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을 보려 합니다.
왜 우리는
남들 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걸까요.
왜 타인의 결과는 늘 더 정리되어 보이고,
내 삶만 유독 더 어수선하게 느껴질까요.
어쩌면 그 착각은
우리의 자신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환경이 타인의 완성본만 더 자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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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kman, P., & Campbell, D. T. (1971). Hedonic relativism and planning the good society. In M. H. Appley (Ed.), Adaptation-level theory: A symposium (pp. 287–302). Academic Press.
Green, F. (2001). It’s been a hard day’s night: The concentration and intensification of work in late twentieth-century Britain. British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39(1), 53–80.
Parkinson, C. N. (1955, November 19). Parkinson’s law. The Economist, 635–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