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

비교와 선택적 노출, 자기왜곡

by NOAH KIM


[먼저 보기 : 5. 더 빨라졌는데 왜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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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완성본만 보게 되는 시대에, 내 삶만 유독 어수선해 보이는 이유]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가 유난히 뒤처진 것 같고,

남들은 다 자기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고,

나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남의 합격 소식 앞에서 그런 마음을 느끼고,


직장인은

남의 성과와 이직 소식을 보며 그런 마음을 느끼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깔끔한 경력 정리 앞에서

자기 삶이 유난히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이 감정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그리고 대개 아주 비슷한 문장으로 찾아옵니다.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 모양일까.


문제는 이 문장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삶을 볼 때

대체로 결과를 먼저 봅니다.


붙었다는 소식,

승진했다는 소식,

이직했다는 소식,

깔끔하게 정리된 포트폴리오,

잘 다듬어진 자기소개,

매끄럽게 완성된 문장.


반면 내 삶은

과정의 안쪽에서 봅니다.


망설임도 알고,

지연도 알고,

초조함도 알고,

미뤄둔 일도 알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까지 전부 압니다.


남의 삶은 결과로 보고,

내 삶은 과정으로 보니

비교가 공평할 리 없습니다.


이 장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Amos Tversky와 Daniel Kahneman의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은

사람이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빈도와 중요성을 판단할 때

실제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보다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즉, 눈에 잘 띄고 기억에 잘 남는 것이

실제보다 더 많고 더 일반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요즘 사람들의 비교가 더 힘든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유난히 눈에 잘 띄는 장면을 자주 봅니다.


합격 후기,

이직 성공담,

멋지게 정리된 커리어 서사,

짧고 강하게 포장된 성과.


그 장면들은

본래도 강하게 기억되는데,

온라인 환경에서는 더 자주 반복됩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스럽게

“남들은 다 잘되고 있구나”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실제로 다 잘되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되고 있는 장면만

계속 눈앞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층이 더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결과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리합니다.


사회학자 Erving Goffman의 자기제시 관점(Self-Presentation Perspective)은

사람이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도록 연출하고 관리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은 늘 자기 삶 전체를 드러내기보다,

타인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얼굴을 먼저 구성한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은

지금의 직장인과 취준생, 이직 준비자를 볼 때 더욱 선명합니다.


취준생은

자기소개서에 넣을 수 있는 경험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직장인은

평가와 이직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성과 중심으로 자신을 정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현재의 혼란보다 설명 가능한 경력의 흐름으로 자신을 정리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타인의 모습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잘 보이도록 정리된 앞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그 앞면을 보면서

그 사람의 전체를 상상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정리된 문장을 보면

삶도 정리되어 있을 것 같고,

매끄러운 경력을 보면

감정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 같고,


좋은 결과를 보면

과정도 자연스럽고 안정적이었을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그렇게 매끄럽지 않습니다.


다만

매끄럽게 보여야 할 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남들 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은

타인이 정말 더 잘 살아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우리가 타인의 삶을 편집된 장면으로 보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착시가 겹칩니다.


우리는 남의 완성본과

내 미완성본을 비교합니다.


남의 제출본과

내 초안을 비교하고,

남의 통과된 결과와

내 아직 진행 중인 과정을 비교합니다.


이 비교는 애초부터

나를 불리하게 만듭니다.


행동의사결정학자 Roger Buehler, Dale Griffin, Michael Ross의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는

사람이 미래의 과업을 예측할 때

실제로 걸릴 시간과 노력보다 더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에는 더 빨리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곧 정리될 것 같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주 그 예측보다 늦고 복잡하게 흘러갑니다.


이 이론은 단지 일정 관리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우리는 늘

곧 괜찮아질 것 같고,

조금만 더 하면 정리될 것 같고,

다음 달쯤이면 훨씬 나아질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삶은

예상보다 더 늦게 정리되고,

예상보다 더 많은 변수에 흔들리고,

예상보다 더 오래 어수선합니다.


그러니 사람은

타인의 이미 정리된 결과를 보면서

“저 사람은 벌써 저기까지 갔는데”라고 느끼고,

동시에 자기 삶은

“나는 왜 아직도 여기지”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결국 이 착각은

자존감이 낮아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잘 보이는 장면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며,

나는 내 삶의 모든 미완성과 지연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깁니다.


즉,

남들이 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은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현실이 보이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이걸 안다고 해서

비교가 바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유난히 부족해서

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조금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지금

타인의 완성본을 너무 자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사이에서

내 삶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뒤처진 사람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여주는 순간보다

보여주지 않는 순간이 더 깁니다.


정리된 문장 뒤에는

정리되지 않은 시간이 있고,


통과된 결과 뒤에는

여러 번의 수정과 흔들림이 있고,


매끄러운 경력 뒤에는

설명되지 않은 혼란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 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을

너무 쉽게 사실로 믿어버리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이 편집되어 보이는 방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남들의 삶이

생각보다 더 정리된 것이 아닐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향해 “나는 아직 멀었다”는 말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요.


왜 비교의 결과는 늘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감각으로 이어질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요즘 사람들은 왜 늘 아직 멀었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그 감각은

실제로 우리가 너무 뒤처져 있어서가 아니라,

도착해야 할 기준이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7. 요즘 사람들은 왜 늘 아직 멀었다고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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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Buehler, R., Griffin, D., & Ross, M. (1994). Exploring the “planning fallacy”: Why people underestimate their task completion tim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7(3), 366–381.


Goffman, E. (1959).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Doubleday.


Tversky, A., & Kahneman, D. (1973). Availability: A heuristic for judging frequency and probability. Cognitive Psychology, 5(2), 20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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