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AI는 선택지를 늘렸지만, 왜 우리는 불안한가?

더 많은 가능성은 왜 더 많은 안도를 주지 못했을까?

by NOAH KIM

[먼저 보기 : 3. 열심히 사는데, 왜 다들 비슷하게 불안할까?]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4

[AI는 선택지를 늘렸지만, 불안까지 줄여주지는 못했다]


AI를 쓰기 시작하면

분명히 편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글을 조금 더 빨리 쓸 수 있고,

자료를 더 쉽게 정리할 수 있고,

막혀 있던 시작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참 걸리던 일이

이제는 훨씬 빨리 움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AI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AI는

시작의 비용을 낮춰주고,

시도의 문턱을 낮춰주고,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을

일단 해보게 만듭니다.


취준생에게는

자기소개서 초안을 더 빨리 써보게 하고,

직장인에게는

보고서의 구조를 먼저 잡아보게 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이력과 경력을 조금 더 정리된 문장으로 바꿔보게 합니다.


막막함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AI는 분명 유용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AI를 좋은 도구라고 느끼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경영정보학자 Fred D. Davis의 기술수용모형(Technology Acceptance Model)

사람이 어떤 기술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이유로

그 기술이 얼마나 유용한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쓸 수 있는지를 제시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AI가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됩니다.


생각보다 쉽게 쓸 수 있고,

실제로 써보면 금방 쓸모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입니다.


쉽고 유용한 기술은

금방 퍼집니다.


커뮤니케이션학자 Everett M. Rogers의 혁신확산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소수의 실험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넓게 확산되어

결국 다수의 표준처럼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은 저런 것도 쓰네”였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다들 저 정도는 하지 않나”로 바뀝니다.


선택이 기준이 되는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AI를 쓰는 사람이 앞서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AI를 쓰지 않는 사람이 뒤처져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AI는 기회인 동시에 압박이 됩니다.


취준생은

AI를 활용해 자소서를 더 잘 써야 할 것 같고,

직장인은

AI를 활용해 더 빨리, 더 많이, 더 매끄럽게 일해야 할 것 같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제는 경력만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즉, AI는

사람을 더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최소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예전에는

“저건 잘하는 사람이나 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점점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되어갑니다.


바로 여기서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꿉니다.


예전의 불안이

“나는 이걸 할 수 있을까”였다면,

지금의 불안은

“나는 이걸 아직도 안 쓰고 있나”

“다들 이렇게 일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괜찮은가”에 더 가깝습니다.


AI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만 불안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실한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실한 사람은

새로운 기준이 생기면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할 것 같고,

익혀야 할 것 같고,

적어도 뒤처지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AI는

게으른 사람을 몰아붙이는 기술이라기보다,

이미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숙제를 더하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이 지점을 이해하려면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만 보면 안 됩니다.


기술은

일을 대신해주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Hartmut Rosa의 사회적 가속 이론(Social Acceleration)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빨라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봅니다.


문제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이 더 많은 여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더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AI가 들어온 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도 비슷합니다.


분명 더 빨리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더 느긋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속도가 빨라진 만큼

기대 수준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일이

이제 몇 시간 안에 가능해졌다면,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에 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다른 일도 더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기술이 능력을 늘려주면

조직은 그만큼 더 많은 산출을 기대하고,

개인은 그만큼 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AI는

불안을 없애는 기술이기보다

불안을 더 정교하게 재설계하는 기술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할 수 있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나뉘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빨리 배우는지,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는지,

얼마나 그걸 자기 성과로 연결하는지가 다시 평가됩니다.


기술이 들어오면

경쟁이 사라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경쟁의 기준이 바뀔 뿐입니다.


더 잘 쓰는 사람,

더 먼저 익힌 사람,

더 자연스럽게 자기 일에 붙이는 사람이

다시 앞서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AI 시대의 불안은

기술이 어려워서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쉬워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사람이 쓸 수 있게 될수록

그 기술은 더 이상 차별화가 아니라

새로운 기본값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취준생과 직장인, 이직 준비자의 마음은 다시 닮아갑니다.


다들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들 압박도 느낍니다.

다들 가능성을 말합니다.

동시에 다들 조급해합니다.


AI는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은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많아질수록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선택을 얼마나 빨리 익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어떻게 앞서야 하는지가

새로운 질문으로 남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쓸 줄 아느냐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내 삶과 일의 속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빨라진 속도 속에서

내가 정말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지,

아니면 더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의 불안은

AI가 우리를 뒤처지게 만들까 봐 생기는 것이 아니라,

AI가 모두를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든 뒤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생기는 감정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봐야 할 것은

AI 그 자체보다

속도입니다.


왜 우리는

더 빨라졌는데도

더 편해지지 못하는 걸까요.


왜 효율은 늘어났는데

안도는 늘지 않았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더 빨라진 시대가 왜 사람을 더 편안하게 만들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문제는

우리가 아직 충분히 빨라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빨라질수록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 안에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5. 더 빨라졌는데 왜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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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avis, F. D. (1989). Perceived usefulness, perceived ease of use, and user acceptance of information technology. MIS Quarterly, 13(3), 319–340. https://doi.org/10.2307/249008


Rogers, E. M. (2003). Diffusion of innovations (5th ed.). Free Press.


Rosa, H. (2013). Social acceleration: A new theory of modernity (J. Trejo-Mathys, Trans.). Columbia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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