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돌로미티

오래 아껴 둔 풍경 앞에서 나는 왜 조용해지는가

by 문명의 해석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동쪽에 펼쳐진 대표적인 산악 권역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핵심 권역만 보더라도 약 1,419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서울의 두 배를 조금 넘는 규모다. 이 산악 지대는 북이탈리아의 세 지역, 곧 트렌티노알토아디제(Trentino-Alto Adige), 베네토(Veneto),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에 걸쳐 이어진다. 쉽게 말하면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북이탈리아 여러 지역에 넓게 펼쳐진 산지라고 보면 된다. 뾰족하게 솟은 석회암 봉우리와 넓은 초원, 깊은 계곡과 끝없이 이어지는 고갯길이 한데 어우러져 다른 알프스 지역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이 권역에 3,000미터를 넘는 봉우리만도 18개가 있다. 여름에는 하이킹과 드라이브, 산악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겨울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돌로미티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봄과 가을의 일부 시기는 흔히 비수기로 불린다. 큰 호텔이나 큰 식당 가운데 문을 닫는 곳도 적지 않지만, 대신 한층 더 조용한 돌로미티를 만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로마에 근무하는 동안 돌로미티에 가보지 못했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주말에 급히 보고 돌아올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가 아니라, 너무 아까워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시간을 제대로 내어 오롯이 그곳만을 위해 가야 할 장소, 그렇게 오래 아껴 둔 보물 같은 곳이 바로 돌로미티였다.


결국 나는 이탈리아를 떠난 뒤에야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 지역에 머물렀다. 대략 보름 정도 머무르며 보고 싶었던 곳들을 하나씩 직접 찾아갔다. 오래 기다린 만큼 기대도 컸지만,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그 기대를 전혀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으로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강하게 다가왔다.


사진으로 먼저 마음에 들어온 곳

돌로미티를 처음 만난 것은 실제가 아니라 사진 속에서였다. 날카롭게 솟은 능선과 거대한 바위 봉우리, 맑은 호수 위로 비치던 산의 모습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을 붙잡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정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익숙한 산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이라기보다, 마치 거대한 돌의 벽과 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듯한 장면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곳은 단순히 한 번 가 보고 싶은 장소가 아니었다. 언젠가 직접 가서 내가 사진으로 보았던 그 장면이 실제로는 어떤 크기이고 어떤 거리감이며 어떤 공기를 품고 있는지, 내 눈으로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사진 속 시선을 따라가며 본 실제의 풍경

그곳에 가서는 사진으로만 보던 장소들을 하나씩 직접 찾아갔다. 그냥 명소를 본다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포인트를 직접 찾아가, 아, 여기서 찍어서 저런 장면이 보였구나 하고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사진과 실제 풍경이 어떻게 닮았고 또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감동이었다.


세체다(Seceda)에서는 초원 너머로 솟아오른 바위 능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높게 다가왔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앞에서는 한동안 그냥 서 있게 되었다. 아무 말 없이 산만 바라보고 있어도 몇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 풍경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 나를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사진은 구도를 남긴다. 그러나 실제의 돌로미티는 그 장면에 공기와 거리와 침묵까지 함께 실어 보낸다. 그래서 눈앞의 풍경은 사진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왔고, 훨씬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끝없이 이어지던 산길의 기억

돌로미티에서 오래 남는 것은 산만이 아니다. 길 또한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가르데나 패스(Passo Gardena)와 팔차레고 패스(Passo Falzarego) 같은 고갯길을 넘을 때마다 길은 끝없이 굽이쳤고, 굽이를 하나 돌 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는 눈 덮인 비탈이 보이다가, 다음 굽이에서는 거대한 바위산이 갑자기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길은 단순히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었다. 길 자체가 이미 돌로미티의 일부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길, 그 길 위에서 계속 바뀌던 산의 표정, 운전하는 내내 차창 밖으로 밀려들던 풍경은 목적지 못지않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곳에서는 도착보다 지나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눈 내리던 4월이 남긴 장면

내가 갔던 때는 4월 중순쯤이었다. 봄이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현지에서는 눈이 꽤 많이 내렸다. 예상 밖의 눈은 여행을 불편하게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잊기 어려운 장면을 선물해 주었다. 눈 내리는 날 산길을 따라 운전하며 풍경을 바라본 경험은 내 일생의 큰 행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의 넓은 초원 뒤로 서 있던 산들, 눈발 속에서 더 묵직하게 드러나던 바위의 윤곽, 그리고 길을 따라 계속 모습을 바꾸던 봉우리들은 지금도 선명하다. 흰 눈과 검은 바위가 함께 만들어 내던 대비는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순간에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 풍경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했다.


비수기의 조용함이 준 선물

내가 머물렀던 시기는 흔히 말하는 비수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큰 호텔이나 큰 식당 가운데 문을 닫은 곳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약간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 점이 그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작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고, 조그만 가게에 들러 필요한 것을 사고, 손님이 많지 않은 호텔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일은 성수기에는 누리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북적이는 관광지의 활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창밖의 산을 바라보고, 조용한 공간 안에 머물고, 사람 많지 않은 계절의 공기를 천천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혼자 누리던 시간의 밀도

사람이 많지 않은 호텔에서 거의 혼자 그곳을 누리듯 바라보던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특별하다. 북적임이 없었기에 풍경과 더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소음이나 분주함 없이, 거대한 산과 눈과 길과 하늘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는 흔히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는지가 중요해지기 쉽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오히려 얼마나 깊이 머물렀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너무 아름다운 곳 앞에서는 사람이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냥 오래 바라보게 된다. 돌로미티가 내게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다는 말의 뜻

사람들은 인상적인 풍경을 보고 흔히 말로 다 담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돌로미티를 떠올리면, 그 말이 단순한 관용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렇다. 사진도 어느 정도는 보여 줄 수 있고, 글도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바위산 앞에 서서 느꼈던 압도감, 눈 내리는 고갯길을 달리며 차창 밖으로 바라보던 장면, 조용한 호텔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까지는 끝내 다 옮길 수 없다.


아마 그래서 더 오래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기억은 오히려 마음속에서 더 깊어진다. 돌로미티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오래 아껴 둔 보물이었고, 직접 가서 확인한 뒤에는 더 소중해진 장소였다.


나는 돌로미티에 또 갈 것이다.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돌로미티만을 위한 여행을 다시 계획할 것이다. 그곳은 한 번 보고 지나칠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머물러도 아깝지 않고, 다시 찾아가도 여전히 새로울 곳이다. 내게 돌로미티는 그런 장소로 남아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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