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부모를 버렸다.

부모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 가족을 지킨 것

by 허버지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하시면서도 자판기 커피 한 잔조차 아깝다며 드시지 않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평생 집에서 삼시 세끼를 챙기며 살아온 가정주부였다.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없이, 늘 집안과 자식들만 바라보며 억척스럽게 사셨다.

없는 살림에도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영화나 공연은 공짜표가 생기면 겨우 한 번 보는 것이었고, 여행이라야 계곡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는 게 전부였다.
외식이라고 해봐야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월급날이 있는 주말에 피자헛 점심특선을 먹으러 가는 정도였다.

어린 내게 그 일상은 구질구질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근검절약하며 사는 부모님을 보며 대놓고 불평할 수는 없었다.
두 분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공부가 인생을 좌우하고, 공무원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문제는 그 확신이 너무 단단했다는 데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면 부모님은 양옆에 앉아 내가 졸지는 않는지 지켜보셨다.
조금이라도 꾸벅거리면 등에 회초리가 날아왔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한 척만 했을 뿐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공부가 싫었던 것보다도, 그렇게까지 통제받는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는 집을 벗어나고 싶어 가출을 했고, 일주일을 노숙하다 결국 부모님에게 붙잡혀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믿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공부를 못해서 실망하신 거라고.
내가 더 잘하면, 더 나아지면,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실 거라고.
그래서 늘 죄송했다.
나를 옥죄는 그 통제조차 사랑이라고 믿으려 했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결국 부모님이 그토록 평생 최고라고 말하던 공무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원하던 공무원이 되었다.
이쯤 되면 조금은 인정받을 줄 알았다.
이제는 한심한 자식이 아니라, 적어도 부모님 기준에 어느 정도는 도달한 아들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부족한 존재였고, 여전히 부모님 눈에는 못미더운 아들이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 통제가 더 이상 내게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내 아내에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까지 그 손길이 뻗어가기 시작했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삶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부모님은 간섭하고 통제하려 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물 안에서만 살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와 하늘을 처음 보듯,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사랑의 이름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는 집착이었고 괴로움이었고 통제였다.

내가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까지 그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와 연을 끊기로 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아내와 동생은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다.
‘그래도 부모인데’라는 말 앞에서, 나는 수없이 흔들렸다.
연을 끊었다가도 다시 관계가 시작되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최대한 멀리 지내며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완전히 끊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가까워지지도 못한 채 애매한 거리에서 버티고 있다.

그러다 며칠 전,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빠, 할머니가 아빠 하는 거 배우지도 말고 따라 하지도 말래.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맨날 아빠를 나쁘게 얘기해?
나는 아빠 너무 좋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내 험담을 아내에게 하고, 아내는 그런 나를 감싸고,
나는 또 속으로 무너졌다.
참 이상했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끝없이 무너지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응. 아빠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래.”

그 말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아이 앞에서까지 사랑을 미움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처를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 대신 분명한 한 가지를 배웠다.
나는 그런 부모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

부모라고 해서 모두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모도 부족할 수 있고, 부모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사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식이라고 해서 내 뜻대로 다루어도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할수록 더 조심해야 하고, 사랑할수록 더 배려해야 한다.

나는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를 버렸다.
이 문장은 내게 아직도 아프다.
누군가는 나를 나쁜 아들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기대에 끝내 닿지 못한 아들이었으니, 나는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있다.

나는 그저 두 분이 남은 여생만큼은 평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나처럼 못난 아들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자식을 만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부모님이 평생 사랑이라고 믿으며 해왔던 그 많은 일들이,
사실은 집착이었고 괴로움이었다는 사실을
끝내 모르고 사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효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