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에게는 좋은 친구라는 말을 들었고, 친척들에게는 괜찮은 아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좋은 선배이자 좋은 후배로 기억되었고, 결혼한 뒤에는 좋은 남편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좋은 아빠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가며 여러 자리에서 나름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나는 끝내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한 번만이라도 괜찮은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한 번만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어릴 때는 말을 잘 들으면 될 줄 알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번듯한 직장과 행복한 가정, 사랑스러운 아이들까지 보여주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나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원했던 것은 존중도, 칭찬도 아니었다. 그냥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 그렇게 네 식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중 유독 나만 다른 사람이었다. 생각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상처를 느끼는 방식도,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나만 지나치게 달랐다.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같은 시간을 지나왔는데도, 나는 늘 조금 엇나가 있는 사람 같았다.
아버지와 동생은 닮아 있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했지만 자기 사람에게는 다정했고, 내면이 단단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단단함이 종종 너무 확고한 기준이 되었다는 데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노력이나 성취도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가볍게 평가절하했다. 피해를 주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않은 채 자기 기준대로 사는 사람들.
그야말로 강한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그 기준에 나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마음이 약했고, 감정이 쉽게 요동쳤다. 화가 나면 화를 냈고, 슬프면 울었고, 짜증이 나면 그대로 짜증을 냈다. 꾸미거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솔직했고, 다르게 말하면 너무 아이 같았다. 아버지와 동생은 그런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해했고, 감당했고, 그러려니 하며 살아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아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꾸 바꾸고 싶어 했다. 더 어른스러워졌으면 했고, 더 이성적이었으면 했고, 감정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길 바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머니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셈이다.
사실 내가 바랐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서로를 비난하는 대신 비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상처 주기 위해 몰아세우는 말이 아니라, 서로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말이 오가는 집이길 바랐다. 사랑하니까 말해주고, 사랑하니까 들어주는 가족. 나는 그런 관계를 꿈꿨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비판보다 비난이 더 많았다.
대화는 늘 비슷한 자리에서 멈췄다. “부모가 말하면”, “자식이면”, 같은 말들. 그 말이 시작되면 내 생각은 늘 버릇없음이 되었고, 내 감정은 예민함이 되었고, 내 문제 제기는 철없음이 되었다. 부모의 권위는 언제나 옳았고, 나는 그 앞에서 틀린 사람이 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 입장에서 나는 인정할 만한 아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몸도 약했고, 끈기도 부족했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통제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고, 자꾸만 그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특별히 내세울 재능도 없었고, 성격도 부모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내가 지금은 부족해도,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정말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내가 내 힘으로 살아낼 수 있게 되면, 돈을 벌고 직업을 갖고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이 되면, 그때는 부모님도 나를 다르게 볼 줄 알았다. 아이였을 때는 인정받지 못해도, 어른이 되면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오래 버텼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직업을 가져도,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 앞에서 부족한 아들이었다. 여전히 몸도 마음도 약하고, 여전히 훈육과 교정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내가 쌓아 올린 삶은
내게는 분명 애써 이룬 것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인정받기 위해 내미는 초라한 증명서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못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부모님 주변을 맴돌았다. 혹시 이번에는 봐주지 않을까. 혹시 이제는 내 삶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혹시 이제는 아들로서 부족하지 않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직업도, 가정도, 아이들도 어쩌면 나는 끝내 그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끝까지 사랑을 구걸한 것이다.
부모에게 단 한 번이라도 “너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잘난 아들이 아니어도,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마음. 나는 평생 그 한마디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존중받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사실은 그냥 내 존재를 인정 받고 싶었다.
누군가는 나를 욕하며 말할 것이다.
부모는 무조건 존경해야 하고,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고. 나도 그렇게 믿으려 노력했다. 어릴 때는 통제에 따르려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려 했다. 번듯한 직장, 행복한 결혼, 사랑스러운 아이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부모님의 마음도 움직일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내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서러웠을 텐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조금 다르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할 만큼 해봤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끝까지 애써봤기에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선택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그 선택을 바꾸기 위해 내 마음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구걸하며 내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대신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인정받기 위해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인정해주는 사람이.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주고 싶다. 아내에게, 그리고 두 아들에게.
남은 인생만큼은 그렇게 살고 싶다.
아내에게는 조건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는 남편으로, 아이들에게는 성취보다 존재를 먼저 안아주는 아버지로. 잘해야 사랑받는 집이 아니라, 부족해도 사랑받는 집.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가 지켜지는 가족. 나는 이제 그런 가족을 만들고 싶다.
부모에게 끝내 받지 못한 인정은 내 마음 어딘가를 오래 시리게 할 것이다.
아마 완전히 아무렇지 않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시린 마음 덕분에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는 것을. 사랑은 상대를 바꾸기 위해 내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위해 건네는 것이라는 사실. 인정은 조건 끝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를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는 태도라는 사실.
나는 오랫동안 부모의 주변을 맴돌며 사랑을 구걸하며 살았다.
하지만 남은 삶에서는 그러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아내기보다, 내가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부모에게 끝내 받지 못한 것을, 내 삶 안에서 비로소 완성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