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함께 웃었던 사람
나에게는 네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또래라고 하기에는 차이가 있었고, 그렇다고 내가 동생을 보살펴야 할 만큼 큰 차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네 살의 간격은 늘 우리 형제를 갈라놓았다.
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동생이 중학생이 되면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동생이 고등학생일 때는 나는 군대에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서 있지 못했다. 함께 자랐지만 같은 계절을 살지는 못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내게 동생과의 추억은 아주 어린 시절에 많이 머물러 있다.
어릴 적 동생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냈다.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았다. 정말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구질구질하고 답답한 일상 속에서 동생은 내게 한 줄기 희망 같은 아이였다. 주변에서도 그런 내 모습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어쩜 그렇게 동생을 잘 챙기니.”
“동생이 그렇게 좋으냐.”
나는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로 동생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동생에게 마음이 많이 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우리 사이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동생에게 남아 있는 형의 기억은 그때부터일 것이다.
그 시절은 부모님의 폭력과 통제가 가장 심했던 때였다. 몽둥이로 맞고, 회초리로 맞고, 뺨을 맞고, 주먹질까지 당했다. 부모님은 나를 때리고 나서 끌어안고 울기도 했고, 연고를 발라주기도 했고, 어떤 날은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모님도 삶의 여유가 없었고, 사랑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중학생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더 아픈 것은, 부모님은 그 폭력을 아마도 사랑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훈육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자식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억은 부모님 안에서는 지나간 사랑으로 남았을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상처로 오래 남았다.
부모는 사랑으로 포장해 기억하지만, 정작 그 폭력이 누구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았는지는 끝내 모른 채 지나간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내 안에 쌓인 분노는 결국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그건 바로 동생이었다.
왜 나만 통제하지.
왜 나만 때리지.
왜 나만 괴롭히지.
동생은 왜 가만히 두는 걸까.
그건 어린 내가 잘못 이해한 것도, 혼자만의 피해의식도 아니었다. 부모님의 차별은 가끔 만나는 주변 사람들조차 알 정도로 분명했다. 친척들은 왜 큰아들만 그렇게 못살게 구느냐고 했고, 동네 주민들조차 큰아들한테만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내 친구들도 종종 물었다.
“너희 부모님은 왜 너한테만 그러시냐”고.
이상한 일은 부모님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배려심 많고, 인정 많고,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인 부모가, 유독 나에게만 그렇게 가혹하다는 사실이 어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그 모든 것을 견뎌내기에는 나는 너무 약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동생을 통제하고 있었다. 내가 동생을 때리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고, 원망했고, 증오했던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동생에게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를 멈추게 하는 법보다,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되풀이하는 법을 먼저 배우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걸 나는 동생 앞에서 처음 알았다.
어른이 된 뒤 나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물론 안다. 동생의 입장에서 그 사과가 얼마나 와 닿았을까. 부모님께 늘 맞고 혼나고, 평생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온 한심한 형이 뒤늦게 건네는 사과가 얼마나 깊이 닿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인지 동생과 나는 과거를 정면으로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애써 모른 척하며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행복했던 기억은 동생이 너무 어려서 잘 기억하지 못하고, 아픈 기억은 서로가 너무 잘 알기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금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동생이 누구보다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조차 사실은 동생의 응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과거를 길게 해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바란다. 상대가 조금은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래서일까.
나는 내 두 아들을 볼 때마다 자꾸 형이었던 나와 동생을 떠올리게 된다.
내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세 살 차이다.
어릴 때 둘은 누구보다 사이가 좋았다. 큰아들은 작은아들을 정말 잘 챙겼고, 많이 아꼈다. 내가 어릴 적 동생을 예뻐했던 것처럼, 큰아들도 동생을 향해 다정하고 따뜻한 형이었다.
그런데 큰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지나기 시작하면서 작은아들과의 갈등도 조금씩 시작되었다.
어느 날 큰아들과 단둘이 산책을 하다가 내가 말했다.
“아들, 당분간은 형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너 자신에게 집중해. 사춘기를 잘 지나가는 게 먼저야. 그리고 동생을 온전히 이해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다시 말해줘.”
그리고 다음 날에는 작은아들에게도 말했다.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형이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아꼈어. 지금은 형이 사춘기라 많이 혼란스러운 거야. 우리 같이 형을 조금만 기다려주자.”
두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자꾸 생각하게 된다.
형으로서의 나를, 그리고 동생을.
나는 왜 그때 그렇게 아팠는지, 왜 가장 사랑했던 존재에게 가장 미안한 사람이 되었는지, 왜 형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자주 가장 늦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
부디 내 아들들만은 나와 다르기를 바란다.
나중에 커서 현재와 미래만 겨우 이야기하는 사이가 아니라, 어린 시절 함께 웃었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형제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의 아픈 시간을 애써 덮어두는 형제가 아니라, 행복했던 과거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형제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동생과의 시간을 완전히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어린 시절은 돌아오지 않고, 내가 준 상처 또한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만은 그 슬픔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란다. 형이라는 이름이 짐이 되지 않고, 동생이라는 자리가 서운함이 되지 않도록, 나는 이제 아버지로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어쩌면 형제란 그런 관계인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함께 웃었던 사람이고, 때로는 가장 오래 미안해하게 되는 사람.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어야 하는 사람.
나와 동생은 오늘도 과거를 길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내일을 조용히 응원한다.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응원만으로도, 우리가 완전히 멀어진 형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