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남편, 무던한 아내
내 선택을 늘 좋다고 말해준 사람
나는 별다른 소득도 없이 성인이 되었고,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군대를 다녀왔다.
그때까지 내 삶은 늘 누군가의 통제 안에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의 통제 속에서 살았고, 군대에서도 그랬고, 제대 후 다닌 재수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시간보다 남이 정해준 시간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재수학원은 집 앞 종합반이었다.
하필이면 그 학원에는 학창 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 셋도 함께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끝까지 학생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분도 있었다. 그렇게 수능을 보고, 대학 입학을 앞둔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게도 자유라는 것이 찾아왔다.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돈은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나는 이상하게 설렜다. 부모님께 사정해서 받는 용돈이 아니라, 내가 직접 벌어서 내 마음대로 써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뜨던 때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집 앞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백화점에 내 운명의 사람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내는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부서의 직원이었다.
털털하면서도 밝게 웃는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관계는 생각보다 분명할 수 있는데도, 아내는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다정하게,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 다정함이 고마웠고,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은 말과 작은 행동에도 쉽게 흔들린다. 대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까지 챙기고 싶어 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놓치지 않고 싶었고, 혹시라도 부족할까 봐 혼자 오래 고민하며 세심하게 준비하는 편이었다. 다정하지만 예민한 사람, 아마 그게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반면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내가 결정한 많은 것들을 묵묵히 따라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부족했던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툴렀고, 고집도 있었고, 괜히 혼자 끙끙대며 결정한 뒤에야 보여주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도 아내는 단 한 번도 크게 불평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선택을 함부로 깎아내린 적이 없었다.
나는 몸도 약하고 체력도 좋은 편이 아니다.
신혼여행 첫날 아침에도 그랬다. 나는 무려 오전 열한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눈을 떠보니 아내는 이미 한껏 단장한 채 혼자 산책도 하고, 혼자 셀카도 찍고, 주변을 둘러보고 온 뒤였다. 충분히 서운할 수 있었고, 한마디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어났을 때 아내가 처음 한 말은 이것이었다.
“오빠, 많이 피곤했지?”
그리고는 자기가 혼자 근처를 둘러봤는데 너무 좋았다며, 신나게 이야기했다.
내가 인터넷을 수없이 뒤져가며 예약한 여행지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함도 있었고, 고마움도 있었고, 안도감도 있었다. 말없이 기다려주고, 내가 고른 곳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 짧은 한마디가 그날의 공기를 다 바꿔놓았다.
나는 늘 혼자 오래 고민하는 편이었다.
여행 일정을 정하는 일도 그랬고,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일도 그랬다.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무엇을 사가야 할지 목록을 만들고, 하나하나 챙기고, 빠뜨린 것은 없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피곤하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내는 달랐다. 식당을 골라도, 선물을 사도, 내가 무슨 결정을 해도 늘 좋다고 했다. 최고라고 했다.
그 말이 내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였다.
결혼한 뒤에도 우리의 사정이 금세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결혼하고도 4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다. 월급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아내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했고, 우리는 빚을 내며 살았다. 그 시절의 삶은 늘 빠듯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히 결정할 수 없었고, 미래를 생각하면 안심보다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그러다 결국 정규직이 되었다.
그때 우리 부부는 막연히 믿었다. 정규직만 되면 빚도 다 갚고, 그동안 못 누린 여유도 조금씩 찾아올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생활은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씀씀이는 그만큼 늘었고, 아이까지 생기자 오히려 더 빠듯해졌다. 돈이 생기면 삶이 한순간에 안정될 줄 알았는데, 삶은 늘 그보다 복잡했다.
자동차도 여러 번 바꿨다.
형편에 맞춰 싼 중고차를 사다 보니 늘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고, 참 부끄러운 마음이 많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차를 보며 쉽게 주눅 들었고, 어떤 날은 내 차가 창피해서 일부러 먼 곳에 주차하기도 했다. 그건 단순히 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형편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싫었고, 그렇게 초라한 나를 들키는 것 같아 괜히 더 위축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다시 맞벌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타던 중고차를 처분하고 새 차를 사기 위해 대리점에 갔다. 현실적으로 살 수 있는 중형차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말했다.
“오빠, 그냥 이런 거 말고 제일 좋은 차 사자.
오빠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
이제 나도 일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고는 영업사원에게 말했다.
“여기서 제일 비싸고 좋은 차 보여주세요.”
그날 우리는 정말 가장 좋은 차를 샀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 큰돈을 쓴 일이었다.
어쩌면 무리였고, 어쩌면 낭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오래 남은 건 그 차가 아니라 아내의 말이었다.
오빠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살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차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내 차가 부끄러워 먼 곳에 세워두던 모습을 아내는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내는 내가 무엇 때문에 위축되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초라함 앞에서 무턱대고 현실만 말하는 대신, 내게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아내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내 선택을 좋다고 말해준 사람,
내가 고른 길을 믿어준 사람,
내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길 때조차 나를 함부로 작게 보지 않은 사람.
살다 보면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쉽게 평가하고, 더 쉽게 지적하게 된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내린 결정이 늘 완벽해서 좋다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족하고 서툰 줄 알면서도, 그 안에 담긴 내 마음과 노력을 먼저 봐준 사람이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살면서 내 선택을 자주 의심해온 사람이었다.
이 길이 맞는지, 이 결정이 괜찮은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그런데 그런 내 옆에서 아내는 대단한 조언보다 먼저 안심을 주었다. 괜찮다고, 좋다고, 잘했다고. 그 말들은 아주 평범한 말 같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지금도 신혼여행 첫날 아침을 기억한다.
혼자 예쁘게 준비하고, 혼자 산책을 다녀오고도, 늦잠 잔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많이 피곤했지?”라고 말해주던 사람. 그리고 자동차 대리점에서, 내 속내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오빠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라고 말해주던 사람.
어쩌면 그 두 장면 안에 아내라는 사람이 다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내 사정을 먼저 헤아려주고, 내 선택을 아껴주고, 내가 애써 준비한 것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까지 알아봐주는 사람. 부족한 현실 앞에서도 내 자존심이 함부로 무너지지 않게 조용히 붙들어주는 사람.
살아보니 사랑은 거창한 데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크게 감동시키는 이벤트보다, 상대가 애써 고른 식당을 좋다고 말해주는 일. 서툰 계획에도 함께 웃어주는 일. 오래 기다린 뒤에도 서운함보다 다정한 말을 먼저 건네는 일. 그리고 상대가 스스로 초라해질 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일. 어쩌면 사랑은 그런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더 분명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고, 아내는 여전히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내 삶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내 결정을 완벽하다고 믿어준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결정조차 따뜻하게 받아주며 나를 믿어준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고른 여행지를 좋다고 말해주고, 내가 준비한 선물을 기뻐해주고, 내가 내린 선택들 뒤에 숨은 마음을 먼저 봐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작게 여길 때,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참 고맙다.
어쩌면 내가 결혼해서 가장 오래 배우는 것은 사랑받는 법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존중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늘 말보다 먼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도 늦었지만 조금씩 배우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애써 건네는 마음을 귀하게 여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내 선택을 늘 좋다고 말해준 사람.
생각해보면 나는 그 다정한 한마디들 덕분에 오늘까지 왔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