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했던 시절
나는 한때,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증명하는 데 열심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인지보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는 일이 더 중요했다.
회사 막내 시절, 나는 같은 팀 과장과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배였던 내가 조금 더 맞추고 참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고, 어렸고, 무엇보다 그 사람과 성향이 너무 맞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불편함이 먼저 쌓여갔고, 결국 우리는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부서를 옮기면 적어도 내 감정도 함께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자리를 옮긴 뒤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붙들려 있었다.
옹졸했던 나는 다른 부서로 가서도 그 과장의 잘못된 점을 다른 직원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정의감이 아니었다. 억울했던 마음, 상처 입은 자존심, 그리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과장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짧고 거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죽어라 ㅇㅇ팀.”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이상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봐라, 역시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내가 다른 부서로 가고 다른 직원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 팀 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마치 하늘이 내게 내려준 증거처럼 받아들였다. 내가 그 사람과 사이가 나빴던 건 내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화면을 캡처해 친한 직원들에게 퍼 나르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기대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를 욕해주기를,
내 말에 동의해주기를,
결국 내가 옳았다고 말해주기를.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정작 그 부서의 팀장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카톡을 보고도 태연했고, 여전히 그 과장과도 별일 없는 듯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팀장님을 찾아가 물었다.
“팀장님, 과장 카톡 보셨어요?
나이 먹고 그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카톡에 팀을 욕하는데 팀장이시면서 왜 가만히 계세요?”
그때 팀장님이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남들이 알아서 욕하고 비난할 텐데, 내가 굳이 왜?”
그 말은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기가 느끼는 대로 판단한다는 것.
남의 말 몇 마디에 생각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
그 과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문장을 보고도 안쓰럽게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그를 싫어했던 사람은 당연히 욕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 그 장면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판단까지 내가 대신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나는 다른 사람을 내 생각대로 설득할 수 없다는 것.
굳이 누군가를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것.
각자는 각자의 눈으로 보고, 각자의 마음으로 판단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 정도이지, 누군가의 마음속 결론까지 대신 내려주는 일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의 나는 너무 쉽게 흥분했고, 너무 쉽게 단정 지었다.
내가 불편하면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했고,
내가 상처받으면 상대는 나쁜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덜 억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게 불편한 사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을 향한 내 감정이 그 사람의 전부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관계라는 것도 늘 한쪽의 잘못만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도 과장이 되었다.
이제는 후배 직원들이 가끔 내게 와서 다른 직원들의 험담을 한다.
누가 이상하다, 누가 답답하다, 누가 문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한참 쏟아놓고는 내 반응을 살핀다.
그럴 때 나는 대체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맞장구를 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훈계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속으로만 생각한다.
부디 저 옹졸함에서 조금만 더 빨리 벗어나기를...
왜냐하면 나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험담하고 싶었던 마음도,
내 억울함을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도,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었던 마음도 모두 안다.
그래서 쉽게 나무랄 수가 없다.
그 시절의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안다.
사람을 오래 보다 보면,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준다는 것을.
굳이 내가 나서서 설명하고, 설득하고,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보고 느끼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을.
젊은 날의 나는 타인의 평가까지 내 손으로 움직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남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추해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한때 옹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빨리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금 더 빨리 마음을 거두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이가 든다는 건 아주 조금은 괜찮은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