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말이 어눌한 이주 여성 유색인종일 뿐이었다.
취직한 후에도 별다르지 않았다. 여성 프로그래머가 흔치 않았던 시기에 외로움은 계속되었다. 평소 업무적 대화만 있었을 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대화는 다른 부서의 여직원들과 잠깐의 커피 타임에만 가능하였다. 회식 자리가 있더라도 공대생 딱지를 못 뗀 듯한 남자들의 놀이 문화는 저질스럽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제이든은 깔끔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로 다가왔다. 날 것이 아닌 잘 다듬어진 그에게 빠져드는 데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외동딸이었던 그녀가 결혼 후 미국으로 가버릴까 봐 처음엔 그녀의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으나 한국에 정착하겠다는 말에 결혼을 승낙하고 작은 아파트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 보금자리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한 나날들이 지나갔다. 어느새, 두 명의 자녀가 생겼고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평화로운 한국 삶을 즐기던 2017년 어느 날, 미국 대사관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온다. 본인과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귀국해야 할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여권, 여행 물품 등을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철수 권고(Evacuation Oder)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곧 한반도에 전쟁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미국인과 미국인이 낳은 자녀까지만 미국인으로 인정받고 유사시 한국 국적인 한아름은 귀국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공대 다닐 적 느낀 소외감을 또다시 느꼈다.
대한민국 사람은 이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억도 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 벌어진 일을 보면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핵 개발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 위원장이 ‘로켓맨’, ‘무모한 늙은이’라고 서로를 비난할 때이다. 그때 미국은 '김정은 참수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까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2시간 30분 만에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고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전투기가 2시간 5분 만에 이란 수뇌부 48명을 제거한 것을 보면 그 상황이 트럼프 1기 때라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를 반대할 사람이 없는 트럼프 2기의 행보는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참수작전 타깃은
본래 북한이었다. - 2017년 -
다행히 대한민국에 아무런 일이 없었지만, 제이든은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 중인 위험한 나라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개한 국가를 떠나고 싶었다. 한국을 지우고 싶은데 아이들이 영어보다 한국어에 더 익숙해지자 미국인 남편은 더욱 참기 어려워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상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 미국인은 대한민국을 미개한 국가로 보았다. K-컬처라는 것이 싹트기 전이니까.
결국, 그 미국인은 미국인 자녀와 한국인 한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하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이 된 한아름의 생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미개어를 사용하지 않은 진정한 미국인이 되었다. 한아름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네이티브 스피커였지만 그녀는 발음이 부정확한 이주 여성에 불과했다. 한아름은 주변 가게에서 발음이 안 좋아 못 알아듣겠다며 여러 번 거절당했고 무시당했다. 상점에서 쫓겨나면서 등 뒤에 꽂히는 욕은 정확하게 알아먹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한아름은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명문대 출신 대기업 한아름 과장은 이제 탱자나무일 뿐이다.
한마디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내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껌딱지였던 막내아들 케빈과의 대화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아름이 학부모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케빈의 학교 행사에 간 날, 케빈의 친구인 올리비아와 그 아빠와 삼촌을 보게 된다. 엄마들끼리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아름은 올리비아 엄마에 대해 물어본다.
“그런데 올리비아 엄마는 왜 안 왔어? 어떤 분이셔?”
“맘! 뭐라는 거예요. 쉿!”
“엉? 왜?”
“올리비아는 데디-데디 패밀리예요.”
한아름이 만난 두 남자는 아빠와 삼촌이 아니라 올리비아의 동성 아빠 부부였다. 무식하다는 경멸의 눈빛을 케빈에게서 본 한아름의 문화적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보다 자신의 품에 있던 아이에 대한 배신감에 더 아팠다.
아빠-아빠 패밀리에서 엄마에 대해 묻는 한아름을
케빈은 미개한 동양인 쳐다보듯 보았다.
이방인 한아름은 미국에서 미개하고 무식한 바보로 고립되었다. 술로 달래다 증상이 심해져 우울증 약을 먹게 되었다. 이는 차후 법정에서 불리한 이혼 사유가 된다. 부부의 사이도 안 좋아지게 되었다. 어느 날 서류 봉투가 날아온다. 제이든의 일방적인 이혼 관련 서류였다.
이혼 소송이라는 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유색인은 기울어진 재판을 통해 이혼하고 추방당하듯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이주 여성에게 미국인 자녀에 대한 양육권은 논의조차 없었고 그냥 가정에서 도려져 버려졌다.
한국에서 똑똑했고 심지어 명문대에 대기업 출신이라 하더라도 미국에 가면 단지 말이 어눌한 유색인종일 뿐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한동안 떠나 있던 IT업계에서 경쟁력은 떨어졌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건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산 막일뿐이었다. 쉬기 위해 안식처로 가고 싶지만 부모님 댁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더욱 후벼 파는 것이다. 외동딸의 행복 하나만 바라고 평생 희생해 왔던 부모님을 행복한 가면을 쓴 채 볼 수 없었다.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 또한 온종일 사람의 온기가 없는 원룸의 문을 여는 것도 싫다.
서로 말하지 않더라도 단지 사람 무리 속에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 일주일에 두세 번 피난처에서 맘대로 지내자.’
무작정 나와 돌아다니고 혼술하다 들어온 곳이 웨스트 가든이다. 그 후 그녀는 익숙지 않은 도피 생활을 501호의 이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먹는 김치찌개다. 그때 김치찌개 생각이 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MT 둘째 날 아침, 한아름은 다른 대학 MT 숙소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잠을 깬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아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밖에서 길고양이가 도와달라고 우는 것처럼 누군가 가냘프게 이름을 부른다.
“아름아... 아름아... 한아름.”
정호였다.
정신을 차려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속옷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몸을 대충 추스르고 나갔다. 정호가 내민 것이 김치찌개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이미 식어있었지만, 어제 남은 고기까지 넣어 나름 모양은 냈다. 그리고 숙취에 좋다며 그 위에 달걀 프라이 반숙이 얹어져 있었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한아름은 속옷을 입지 않고 나온 것이 영 불편하였다.
“야, 속이 쓰린 데 무슨 김치찌개냐? 촌스럽게 숙취에 계란은 무슨.”
“엉, 그러긴 하네. 마땅한 게 없어서 속 편한 걸 찾다 보니 이것뿐이라.”
그때는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 서툴렀고 창피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달걀 프라이 반숙만 빨아먹고 김치찌개 국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릇을 건넨다.
“나 옷 입고 나올게. 갈 준비 하자.”
어제 다른 학교 여대생들이 더러워진 옷을 정리해 주고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도 못 한 채 덜 마른 속옷과 바지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여대생 숙소를 후다닥 나왔다. 빨리 이 기억을 씻어버리고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김치찌개를 오늘 다시 본다.
기억의 소환으로 이제 깨닫게 된다. 30년 전에도 자신을 위로해 준 사람이 있었다.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그냥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건네는 김치찌개, 그건 관심이었다.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곁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단지 몰랐던 것뿐이다. 오늘도 그 위로를 받은 것이다.
그때는 고마움을 몰라 국물만 마시고 정호에게 되돌려줬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고서야 비로소 관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오늘에서야 그 소중함에 보답하듯 501호는 반숙 위에 뜨거운 김치찌개 국물을 흘리고 밥 윗부분을 긁어 비빈 후 크게 한 숟가락을 먹는다.
‘정호야. 그때는 내가 어렸나 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뜨거운 밥 한 숟가락은 501호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이 되어주었다.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아름의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다.
그제야 그동안 고마웠던 일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모텔 카운터 직원이 105호를 보자 말을 건넨다.
“105호 아저씨, 저번에 말한 여자 또 왔는데 진짜 말 한마디 안 하던데요.”
“또 왔던가?”
“예. 그래서 전에 말한 것처럼 저도 다른 말 안 하고 501호 내줬어요. 근데 왜 501호죠?”
“잘했어. 일단, 돈이 없어 보이진 않고 모텔은 자주 오는 건 아닌 것 같고. 우리야 5평도 익숙해져 있지만 처음 오는 사람은 숨이 확 막힐 거야. 그래서 비싸도 넓은 방을 줬지. 그리고 5층은 대부분 조용한 사람들을 배정하고 있고 더구나 501호는 사이드에 있어 접한 방이 502호뿐이니까 더 조용하겠지. 혼자 있는데 옆에서 이상한 소리 나면 무서울 거 아냐.”
“아, 그랬군요. 저는 그냥 비싼 방 준 줄 알고 105호 아저씨 장사꾼 다 됐다 생각했는데.”
“돈 보다 더 중요한 게 원하는 걸 얻는 건데. 비싸더라도 음식은 맛있어야 하고, 약은 효과가 있어야 하고, 모텔은 안락해야 하고. 그런 말 몰라? 하여튼 담에도 오면 그냥 말 많이 하지 말고 501호 줘.”
지하 보일러실에서 모텔 경매가 있던 날에도 그랬다.
“요즘 장사가 잘 됐나뵈, 맥주가 마이 수거됐네예. 잔치 함 하입시다. 잔치. 이번에 뉴페이스 함 불러카 공짜 술 좀 먹입시다.”
새싹들이 움트는 봄철이라 마음에서도 사랑이 솟아나고 싶어 한다. 스프링 피버(Spring fever)처럼 뭔가 이유 없이 설레고 들뜨는 마음은 새로운 모험을 하게 한다. 긴 시간 움츠려있던 새싹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젊은 사람들이 모텔을 많이 찾게 되고 5층 위층에는 봄이 온다. 모텔 상층 객실에 놀러 온 그들이 남기고 간 맥주 덕분에 3층 아래층 사람들도 풍요로운 봄을 좋아하게 된다.
더도덜도 말고 학기 초만 같아라.
고수레처럼 맥주 4캔 중에 1캔을 남기면 3층 아래에 있는 외로운 장기 투숙객들이 마시고 액운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텔에서 묵을 일이 있으면 맥주 1캔을 남기고 가는 걸 권한다.
“그럼, 이번에 나랏일 하겠다는 3명 하고 501호 백치 아다다 데리고 오면 되겠네. 근데 누가 말할까요.”
“내가 501호에게 오라고 말해볼게 그래도 나랑 나이대가 비슷할 것 같은데.”
“나이가 비슷하면 오히려 오해할 수 있어요. 공식적인 자리니까 카운터 직원이 초대하는 게 나을 듯해요. 그냥 경매장 왔을 때 불편하지 않게 209호가 맥주하고 안주만 좀 챙겨주세요.”
“응, 그럴게. 그게 낫겠네. 부담 안되게 맥주 챙기는 건 내가 할 게.”
그녀가 외톨이라고 생각할 때
항상 그 옆에 사람이 있었다.
- 숙취에 힘들어한 그녀를 밤새 기다린 대학 동기 정호
- 통닭집에서 혼밥하는 그녀에게 김치찌개를 건네준 102호
- 모텔에서 잠자리가 불편할까 봐 조용한 방을 찾아 준 105호
- 지하 보일러실에서 모텔 경매가 있다는 걸 알려 준 모텔 직원
- 모텔 보일러실 경매장에서 그녀에게 맥주를 챙겨 준 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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