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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Feb 24. 2024

떠나가 버린 마음



이대로 영원히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 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마음은 행방이 묘연한 지 오래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좋겠지만 기다리진 않는다. 마음 없이 텅 빈 몸뚱이로 사는 데 익숙해졌고 불편하지 않다. 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 그만 붙들려 있길 원한다. 나는 수렁에 빠져 있다. 마음이 떠난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채 멈춰 있다.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더 가벼워져야지 왜 이토록 무거워졌을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아 그대로 멈춰버린 난 이 수렁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앞을 향해 나가고 싶다.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떠올릴 수 있는 장면. 데버라 리비가 들려준 바로 이 장면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던 때에, 나는 기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유난히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리비의 이 문장에 사로잡혀 그의 모습을, 그와 닮은 여자들의 모습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내가 되기까지 반복재생하다 보면 살 만해졌으니까.




지하철에, 버스에, 택시에 실려 다녔던 날들엔 이름이 없다. 태워 보내지고 태워 돌아온 시간. 출발점과 도착점이 분명한 궤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그러다 완전히 길을 잃고 도착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출발점을 내 손으로 지우고 무질서한 시간 속으로 숨어버렸다.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고여 있다.



검고 사나운 바다 앞에서 하염없이 파도를 바라본다. 치는 둥 마는 둥 하는 우스운 파도. 바다는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파도를 밀어내지만,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시커멓기에 무섭다. 이곳은 성산 일출봉이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이 화산 지형에서 바다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성산 일출봉에 바다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아.


해녀가 갓 잡은 갖은 해산물을 파는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무리가 보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회를 먹을 것도 아니면서 무리를 따라 내려가보기로 한다. 성산 일출봉에 올라 처음으로 바다를 향하는 길. 산과 바다가 이어진 이 길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익숙한 능선과 낯선 수평선을 동시에 품고 있다.


검은 모래와 모난 바위를 지나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 실어 보낼 마음이 없다. 바다에 부탁해 돌려받을 마음이 없다. 겨울바다의 추위 앞에서 언제 잃어버렸는지 모를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바다의  성난 기세 때문에 그저  파도를  바라보는 일 앞에서 다 까먹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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