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바라보는 가장 흔한 오류는 그것을 단순한 팽창국가로만 보는 데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중국의 부상을 제국적 야망, 민족주의의 폭주, 혹은 공산주의의 외연 확장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핵심은 그보다 훨씬 더 냉정합니다. 중국과 북한 같은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체제의 안정과 유지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중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과 서방이 기술, 금융, 해상로, 동맹, 규범을 통해 중국의 숨통을 조를 수 없는 상태를 만드는 데 더 가깝습니다. 2023년 제정된 중국의 대외관계법은 외교의 목표를 주권, 안보, 발전이익, 그리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직접 연결했고, 외교 수행이 중국공산당의 집중적 영도 아래 있음을 명시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오늘의 중국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중국의 대외전략은 국가의 이상보다 체제의 생존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서방은 오랫동안 착각했습니다. 시장이 열리면 사회도 열리고, 자본이 들어가면 권력도 분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에서 배운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시장을 허용하되 권력은 내주지 않는 것, 외자를 받아들이되 당의 지배는 약화시키지 않는 것, 부를 축적하되 체제의 통제력은 오히려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중국식 개방의 진짜 본질이었습니다.
중국의 진짜 위협은 시장과 기술, 자본, 글로벌 네트워크를 흡수한 뒤 그것을 다시 더 강한 통제국가의 연료로 바꿔버리는 체제적 능력에 있습니다. 중국은 시장을 받아들였지만 시장에 복종한 적이 없고, 세계화에 참여했지만 세계화의 규범에 자신을 맡긴 적도 없습니다. 개방은 자유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큰 국가역량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개방의 단순한 수혜자에 머문 것이 아니라, 개방을 이용해 통제를 현대화한 거대 체제가 되었습니다.
시진핑 체제를 단순한 장기집권의 욕망으로만 보면 절반밖에 보지 못합니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 권력 집중이 무엇에 대한 반응이었는가입니다. 2018년 중국은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없앴습니다. 이는 덩샤오핑 이후 어렵게 만들어졌던 집단지도와 승계 규범의 최소한의 장치가 무너졌다는 뜻이었습니다. 이후 2022년 시진핑은 세 번째 임기를 확보하며 최고지도부를 사실상 충성 중심으로 재편했고, 2024년 3중전회는 다시 한 번 고품질 발전과 국가안보, 당의 지도력을 한데 묶어 강조했습니다. 이는 체제 내부의 자율성, 파벌 균형, 분산된 의사결정을 더 이상 안정장치로 보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시진핑의 독재는 단순한 권력욕이라기보다 불신의 제도화에 가깝습니다. 중국 지도부가 소련 붕괴에서 읽어낸 교훈은 경제 비효율보다 정치적 이완의 위험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의 독재는 권력욕의 산물이라기보다 체제 붕괴에 대한 공포가 제도화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이 체제에서는 경제도, 외교도, 기업도, 군도, 데이터도 모두 당의 질서 안으로 재편됩니다. 권력의 집중은 효율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권력 집중이 곧바로 국가 역량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진핑 체제는 당의 통제력을 높였지만, 그 대가로 충성이 전문성을 압도하는 구조도 함께 키웠습니다. 특히 군에서는 이 역설이 더 선명합니다. 부패 척결과 전투준비태세 강화를 내세운 숙청은 겉으로는 통제 강화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핵심 보직의 공백과 경험 부족, 정보 왜곡과 비효율을 낳았습니다. 시진핑은 군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군을 더 세게 쥐었지만, 그 장악이 자동으로 더 강한 군사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의 중국은 권력을 더 세게 움켜쥘수록 조직의 자율성과 학습 능력,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함께 훼손하는 역설을 안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진핑 체제가 강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