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보다 숫자가 앞서는 89년생의 정직한 삼각 생활
낭만보다 숫자가 앞서는 89년생의 정직한 삼각 생활
소설가라고 하면 다들 햇살 드는 카페 창가에서 맥북 하나로 우아하게 글을 쓰는 디지털 노마드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영감' 대신 '주식 창'을 기다리고, 낭만보다는 통장 잔고라는 실재하는 숫자에 훨씬 더 집착합니다.
89년생 남자로 살아가는 저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투박하고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 실체는 오전의 집필과 오후의 투자, 그리고 저녁의 테니스라는 세 갈래 길 위에서 매일 길을 잃고 헤매는 후천적 생존자에 가깝습니다.
오전: 숫자의 세계에서 문장의 세계로 망명하다
9시, 정해진 마감은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사인 '나 자신'의 눈치를 보며 책상 앞에 앉습니다. 《후천적 왼손잡이》 시절부터 이어온 이 지독한 습관은 하얀 화면 위에 문장을 하나씩 쌓게 만듭니다.
한때는 차가운 시장에서 돈 냄새를 맡으며 수익률을 계산하던 생존자였으나, 이제는 문장에서 거품을 걷어내며 '정직한 문장의 단가'를 고민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뼈저리게 익힌 팩트 중심의 사고는 소설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제 등 뒤를 서늘하게 감시하는 가장 정직한 동력입니다.
제게 글쓰기는 영감이 번뜩이는 예술보다는, 엉덩이로 버티며 문장을 한 땀 한 땀 짓는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노동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문장에 쓸데없는 거품을 잔뜩 끼우는 건, 제 기준에선 기회비용만 날리는 수익성 제로의 사치라 느낍니다.
문장에서 거품을 빼는 작업은, 매일 아침 주식 잔고의 숫자를 확인하듯 눈물 나게 냉정해야 하는 생존의 영역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뼈저리게 익힌 이 팩트 중심의 사고방식이, 이제는 제 소설을 지탱하는 가장 정직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오후: 원고지 위에서는 소설가, 차트 앞에서는 개미
오후 2시, 우아한 문장의 세계에서 숫자가 지배하는 냉혹한 전장으로 강제 송환됩니다. 아침 내내 정직한 문장을 한 땀 한 땀 짓던 소설가는 퇴근하고, 요동치는 주식 차트 앞에서 파랗게 질린 계좌를 보며 함께 질려가는 평범한 투자자가 등판하는 시간이죠. 89년생 남자의 일상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참혹한 아이러니를 맛봅니다. 소설을 쓸 때는 인물들의 앞날에 사소한 행동 하나도 의미 있는 복선으로 정교하게 배치하면서, 왜 제 계좌가 나락으로 가기 전 보내는 그 선명한 하락 복선들은 매번 감쪽같이 지나치는지 자책하곤 합니다. 인물의 운명은 제 손끝에서 세밀하게 설계되지만, 제 자산의 운명은 시장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한낱 먼지 같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결국 주식 시장은 제게 소설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가장 정직한 현장입니다. 이 처절한 털림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감정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제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자양분이 됩니다.
상장 폐지의 공포보다 무서운 건 쓸 이야기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 작가의 빈 화면이기에, 저는 오늘도 차트라는 현장에서 기꺼이 생존의 기술을 배웁니다.
저녁: 작은 공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굴욕의 기록
저녁이면 테니스 라켓을 가방에 넣고 코트로 향합니다. 89년생, 이제는 적당히 노련해져야 할 30대 후반임에도 코트 위에서 저는 여전히 작은 공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해 쩔쩔매곤 합니다.
오후 내내 시장의 미세한 흐름을 분석하며 잔뜩 날을 세웠던 그 예리한 감각도, 정작 제 발 앞으로 정직하게 날아오는 공의 궤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거대한 자본의 흐름은 분석할지언정 눈앞의 작은 공 하나 읽지 못하는 이 투박한 굴욕담들이 매일 저녁 제 일상에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하지만 그 굴욕적인 순간조차 즐겁습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야 공이 제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배우며, 저는 글쓰기에서도 힘을 빼는 법을 익힙니다. 안 써지는 문장을 뒤로한 채 코트로 출근하여 흘리는 땀은, 정체된 머릿속을 맑게 비워주고 내일 다시 원고지 앞에 설 정직한 체력을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모두 후천적으로 살아남는 중입니다
선천적인 재능의 유무를 따지는 것만큼 제 기준에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로또 당첨 같은 천재성을 기다리기보다, 매일의 성실함으로 결핍을 메우는 후천적인 노력이 훨씬 더 정직한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믿으니까요. 화려한 성공 서사 대신, 조금 뚝딱거려도 제법 진지하게 버텨내는 저의 삼각 생존기를 이곳에 남겨보려 합니다.
이곳에서의 연재는 제게 또 다른 코트에 들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공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해도 다시 라켓을 가방에 넣는 마음으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정직한 생존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각자의 코트 위에서 고군분투 중인 여러분에게, 저의 이 서툰 기록이 기분 좋은 위트와 정직한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저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서투르고, 그만큼 더 정직하게 살아남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