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이 나지 않는 문장은 버리기로 했다

문장 포트폴리오의 비정한 아침

by 전진열

문장 포트폴리오의 비정한 아침


9시, 제 책상 위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됩니다. 소설가라는 명함을 들고 앉아 있지만, 제 머릿속은 이미 전날 써 내려간 원고라는 자산을 검수하는 깐깐한 투자자 모드로 전환되어 있습니다. 원고지는 영감을 기록하는 곳이 아니라, 투입된 시간 대비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하는 냉혹한 포트폴리오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밤사이 감성이라는 달콤한 호재에 취해 떠올렸던 문장들을 마주하는 시간은 참 쉽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꽤 우량해 보였던 미사여구들이, 동이 튼 오전에는 실속 없는 부실주처럼 그 민낯을 드러냅니다. 아무런 감동이나 서사적 배당을 주지 못하는 문장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그 문장들을 손절하기로 결심합니다.

감성이라는 이름의 부실주 색출하기


가장 먼저 거품을 걷어냅니다.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한 문장에는 불필요한 거품이 끼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문장의 부피만 무작정 키우는 건, 기업의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투기 세력에 의해 거품이 잔뜩 낀 종목을 지켜보는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팩트 중심의 사고를 하는 저에게 문장의 가치는 오직 서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슬픔을 묘사하기 위해 몰두한 비유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문장 자체는 외형만 번지르르하게 잘 빠졌지만, 정작 소설의 전체 지수를 견인하거나 서사의 회전율을 높이는 데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 고평가된 종목에 가깝습니다.


투자 시장으로 치면 수익은커녕 관리비와 기회비용만 야금야금 갉아먹는 비효율적인 애물단지일 뿐이죠. 이런 문장들을 '아깝다'는 이유로 붙들고 있는 것은 독자의 귀한 시간이라는 자본을 낭비하는 일이기에, 저는 오늘도 가차 없이 삭제 리스트의 맨 상단에 이들의 이름을 올립니다.

손절의 미학, 지워야 산다


문장을 지우는 과정은 주식 계좌의 파란 불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서늘합니다. 공들여 빚어낸 문장을 단 1초 만에 백스페이스로 날려버릴 때의 허탈함은, 우량주인 줄 알고 샀던 종목이 끝을 모르는 계단식 하락을 거듭할 때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매몰비용에 집착하면 원고라는 포트폴리오 전체가 망가집니다.


내가 이 문장을 쓰기 위해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혹은 이 비유가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비자발적 장기 보유'를 선택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포트폴리오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저는 주식 시장에서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시장이 내 예측과 다르게 흘러갈 때 비정하게 손절을 하듯, 소설의 본질에서 벗어난 문장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차 없이 매도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그것이 후천적 생존자로서 제가 터득한 가장 정직한 집필의 기술입니다.


비워낸 자리에 남는 정직한 순익


글쓰기라는 가내수공업 현장에서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자기만족'이라는 이름의 거품입니다. 작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배치한 수려한 비유들이 실상은 서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문장들을 과감히 쳐내고 남은 투박하고 짧은 문장 한 줄은, 비록 화려함은 덜할지언정 독자에게 확실한 서사적 배당을 약속하는 '우량주'가 됩니다.


결국 좋은 소설이란 화려한 수식어를 쌓아 올리는 성벽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심을 깎아내어 본질만 남기는 조각에 가깝습니다. 선천적인 천재성이 없어 매일 문장과 씨름하며 쩔쩔매는 저 같은 작가에게는, 이 지독한 삭제의 과정이야말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후천적인 성장의 길입니다.

오늘도 저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가벼워진 원고를 보며 안도합니다. 비워진 만큼 문장은 단단해졌고, 덜어낸 만큼 서사는 정직해졌습니다. 수익률 낮은 문장을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비정함. 그것이 제가 소설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생존자로서 원고지 위에서 매일 증명해야 할 가장 값진 수익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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