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보장하지 않는 결말
데이터가 보장하지 않는 결말
소설을 쓸 때 저는 거창한 운명이나 촘촘한 인과관계를 설계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투박하게 밀어붙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는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나름의 '정답'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업의 실적, 이동평균선, 거래량 같은 데이터들은 제가 믿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지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믿음을 비웃듯 흘러갑니다.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고, 차트가 아름다운 정배열을 그리며, 거래량까지 터져주는 '완벽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매수 버튼을 눌러도, 주가는 보란 듯이 곤두박질칩니다.
소설 속 인물은 작가가 설정한 환경에 따라 움직이지만, 제가 가진 종목들은 모든 긍정적인 신호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비극적인 길을 개척해 나갑니다. 데이터가 보장하는 우량한 결말 같은 건, 애초에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소설보다 비논리적인 현실의 무게
우리는 흔히 삶이 소설보다 더 영화 같다고 말하지만, 투자 현장에서 마주하는 비극은 그보다 훨씬 더 투박하고 비논리적입니다. 소설 속 비극은 아무리 처절해도 독자를 납득시켜야 하는 '개연성'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습니다.
하지만 MTS 화면을 뚫고 나오는 장대음봉에는 어떠한 개연성도 없습니다. 설명은 그저 부수적으로 따라올 뿐입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제 분석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제가 신뢰했던 데이터들이 아무런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입니다. 실적이 좋은데 왜 떨어지는가? 이평선 지지가 왜 무너지는가? 소설가인 저조차 도저히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비논리적인 상황들이 매일 아침 반복됩니다.
주식 시장은 제게 소설 속 어떤 악역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이고 잔인한 비극의 감각을 가르쳐주는 현장입니다.
설명은 그저 부수적일 뿐
시장에서 '왜'라는 질문은 사치에 가깝습니다. 장대음봉이 떨어진 뒤에 따라오는 수많은 분석과 기사들은 그저 비명 뒤에 붙는 구차한 주석일 뿐입니다. 이유 없는 하락이 서늘하다면, 근거 없는 상승은 기괴합니다. 상승의 재료라고 들이미는 실체들을 뜯어보면, 결과에 끼워 맞춘 조잡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애초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서 자꾸만 설명을 찾고, 이유를 확인하려는 자세가 빚어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에서는 설명이 부족하면 서사가 무너지지만, 시장에서는 설명이 없어도 비극은 완결됩니다.
이 비논리적인 현장을 매일 목격하며 제가 배운 것은, 현실의 비극은 소설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단호하다는 사실입니다. 데이터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굴욕과, 개연성 없는 하락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이 투박한 경험들은 책상 앞에서의 고뇌보다 훨씬 더 선명한 통증을 남깁니다. 결국 주식 차트는 소설이 흉내 낼 수 없는 날것의 비극을 기록하는 가장 정직한 보고서입니다.
데이터 의존에서 벗어나
이제 저는 데이터가 주는 달콤한 시나리오에 기대지 않습니다. 모든 분석이 완벽해도 시장은 언제든 비논리적인 하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저는 설명되지 않는 장대음봉을 묵묵히 견뎌내는 '후천적 생존자'로 남기로 했습니다.
다만, 말처럼 하락을 보고 아무렇지 않기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테니스 코트를 세 시간이나 뛰고 나서 눈앞의 얼음물을 참아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야만 하고, 버텼을 때 과실을 얻은 짜릿한 경험을 떠올릴 뿐입니다.
아무리 버텨내도 열에 한 번은 이동평균선이 무너진 차트를 보며 묵묵히 손절을 감행합니다. 데이터가 배신한 자리에 남는 것은 어떤 수식어로도 가릴 수 없는 투박한 상실감이 뒤따를 뿐입니다. 하지만 늘 내가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을 바라보면 겸허히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데이터가 약속한 장밋빛 결말은 없지만, 설명되지 않는 비극을 묵묵히 버텨내며 얻는 이 씁쓸한 자립심이야말로 제가 시장에서 배운 가장 현실적인 수익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