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에서 마주하는 무력감
코트 위에서 마주하는 무력감
저녁 7시, 어김없이 테니스 레슨을 받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오전부터 소박한 글을 짓고, 오후에는 치열하게 투자를 합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코트에 들어서면, 밝은 조명 아래 노란 공들이 쉴 새 없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오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베이스라인에 서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질 때까지 스트로크를 반복하는 것으로 레슨이 시작됩니다. 코치님의 날카로운 지시에 따라 좌우로 뛰어다니며 공을 맞춰내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문장이나 데이터는 어느새 땀방울과 함께 증발해 버립니다.
제 머릿속은 코치님이 강조한 완벽한 폼을 복기하며 공의 높낮이와 스핀의 양을 계산하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제 발은 여전히 코트 바닥에 본드라도 붙인 듯 제때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공의 낙하지점을 이미 파악했는데, 정작 제 라켓은 공이 한참 다가와서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정타를 맞추지 못한 공은 라켓 프레임을 맞고 힘없이 네트 아래로 처박히기 일쑤입니다.
발리라는 이름의 벽
스트로크 연습이 끝나면 코치님은 저를 네트 앞으로 불러 세웁니다. 이제 발리 연습을 할 차례입니다. 네트에 바짝 붙어 서면, 베이스라인에서 보던 것보다 공의 속도가 훨씬 빠르고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발리는 공이 바닥에 튀기 전에 바로 쳐내는 기술이기에 스윙을 크게 가져가기보다는 라켓 면을 정확히 대고 밀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공이 눈앞으로 빠르게 달려들면, 제 몸은 본능적으로 방어하기 급급합니다.
공을 더 멀리, 더 강하게 밀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어깨와 손목에 잔뜩 힘을 불어넣습니다. 힘을 빼야 공이 짧고 정교하게 베이스라인 안쪽으로 떨어지는데, 제 라켓은 마치 야구 방망이라도 된 양 공을 사정없이 휘둘러 버립니다.
결과는 참담합니다. 라켓에 맞은 공은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베이스라인을 훌쩍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힘을 줄수록 공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저는 네트 앞이라는 유리한 고지에서 오히려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합니다. 힘 빼라는 코치님의 목소리가 공이 베이스라인을 넘을 때마다 더 따갑게 꽂힙니다.
상전이 된 라켓
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고르던 제게 코치님이 다가와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회원님은 라켓을 모시고 사시네요."
그 한마디는 제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라켓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발리에서 매번 실수를 범했던 이유는 잘 치고 싶다는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실수해서 점수를 잃거나 공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마치 감당 못 할 투자 손실처럼 여기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제 손에 든 라켓은 공을 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저를 완벽하게 증명해내야만 하는 무거운 상전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라켓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될까 봐 몸을 사리고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던 셈입니다.
소설에서는 거침없이 문장을 깎아내고 투자에서는 냉정하게 종목을 손절하며 비정함을 유지해 왔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코트 위에서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조금도 냉정하지 못했습니다. 라켓을 상전으로 모시고 사는 동안, 저는 테니스의 역동적인 즐거움이 아닌 실패의 공포만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힘을 빼는 기술
투자에서도 조급함에 매수 버튼을 꽉 누를 때보다, 한 걸음 물러나 시장을 관망하며 어깨의 힘을 뺄 때 비로소 수익률이 돌아오곤 합니다. 테니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발리에서는 라켓을 상전 자리에서 내려놓고, 그저 제 몸의 가벼운 연장선으로 여기며 공의 힘을 이용해 툭 휘둘러야 합니다. 공을 지배하려 드는 욕심을 버리고, 공의 흐름에 라켓 면을 맡기는 순간 비로소 공은 제가 원하는 궤적을 그리며 코트 안으로 안착합니다.
라켓을 꽉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조금 풉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라켓 그립의 감촉이 전보다 훨씬 가볍고 친숙합니다. 코치님이 던져주는 공이 다시 네트 앞으로 날아옵니다. 이번에는 머리로 계산하거나 힘으로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가볍게 라켓을 갖다 대며 공의 무게감을 느낍니다. 툭. 짧은 소리와 함께 공은 베이스라인 안쪽에 정직하게 떨어집니다. 오늘도 저는 라켓을 상전 자리에서 내려놓기 위해, 그리고 제 삶의 굳은 어깨를 펴기 위해 코트 위에서 정직한 훈련을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