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계약서 앞에서 무너질 때
현실의 계약서 앞에서 무너질 때
오전 9시, 문장을 쌓아 올릴 때 저는 설계자가 됩니다. 문장 몇 줄로 인물들에게 안락한 집을 지어주고, 그들이 머물 거실의 채광과 벽지의 질감까지 제 마음대로 결정합니다.
제가 구축한 세계 안에서 저는 가장 유능한 건축가가 됩니다. 하지만 노트북을 닫는 순간, 저는 89년생 기혼 남성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팍팍한 현실로 돌아옵니다. 참담하게도 제 손가락 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문장은 정작 제가 발을 딛고 선 이 집의 계약서 한 장을 이기지 못합니다.
89년생.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황금기라 불릴 나이일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이 숫자는 매일 아침 갱신되는 생존 성적표와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나 여전히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한 무주택자라는 사실은, 제 자존심에 미세한 균열을 냅니다.
성실하게 쓰고 치열하게 투자하며 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는데도, 내 집이라는 골인 지점은 저만치 멀어져만 갑니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의 피로
작가로 살기엔 현실이 팍팍하고, 생존자로 살기엔 영혼이 지칩니다. 소설이라는 포트폴리오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전날 밤의 감성적인 문장들을 가차 없이 손절매하며 아침을 보내지만, 그 비정한 검열의 대가는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자본 잠식에 빠진 기업의 재무제표만큼이나 수익률이 낮고, 그 팍팍한 보상은 기혼 남성으로서 짊어진 생존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가볍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지치게 하는 것은 성실함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확신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된 요즘, 마주하는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더 잔혹한 복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주식 시장은 연일 비명을 지르며 급락하고, 화면을 가득 채운 파란 불빛들은 제가 들인 노동의 시간을 비웃듯 자산을 갉아먹습니다.
치솟는 환율과 고공행진 중인 유가를 보고 있으면 숨이 턱 막혀옵니다.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깎고 종목을 분석하는 제 노력이,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포성 한 방에 이토록 쉽게 휘청거린다는 사실은 허탈함을 넘어 공포로 다가옵니다.
하루하루 투자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거대한 세계 정세라는 파고 앞에서 기혼 남성으로서 가족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제 성실함은, 마치 폭풍우 속에서 촛불을 지키려는 것처럼 위태롭고 무력하게 느껴집니다.
후천적 생존자의 자조와 기록
기혼자로서 느끼는 책임감은 때로 작가로서의 창작욕을 무참히 잠식하곤 합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책상 앞의 모니터를 끄고 침실로 들어가 곤히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들을 때면, 작가의 비정함보다는 생존자의 절박함이 먼저 고개를 들어 스마트폰 속 차트의 붉은 숫자들을 다시금 훑게 됩니다.
소설 속 화가가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손을 떨며 절망하듯, 저 역시 어두운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의 불빛을 보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완벽한 서사를 설계하는 오전의 시간은 유능할지 모르나, 현실의 저는 임대 계약의 만료일을 계산해야 하는 불안한 유랑자일 뿐입니다.
제 이름으로 된 영토 하나 확보하지 못한 이 팍팍한 현실이 결국 제가 기록해야 할 가장 정직한 다큐멘터리임을 깨닫습니다. 화가가 그리지 못한 그림으로 고통받는 것처럼, 저 또한 완성하지 못한 ‘내 집’이라는 페이지를 억지로 외면하며 오늘도 불안한 문장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노트북을 켜는 이유
지치고 팍팍한 일상이지만, 저는 다시 노트북을 켭니다. 이것이 제가 터득한 유일한 후천적 생존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주식 계좌의 숫자가 저를 배신하고,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저를 소외시켜도, 제가 직접 쓴 문장만큼은 온전한 저의 영토로 남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집 문서는 없어도, 제가 지은 세계 속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벽지 색깔을 바꿀 수 있고, 타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설계자이자 관찰자, 그리고 고단한 거주자로서 하루를 보냅니다. 저녁 7시, 테니스 코트의 조명이 켜지면 다시 라켓을 쥐고 힘을 빼는 법을 연습할 것입니다.
내 집 마련의 꿈 또한 너무 꽉 쥐고 있었기에 자꾸만 빗나갔던 것은 아닐까요? 삶의 무게를 날아오는 공에 라켓을 툭 갖다 대듯, 이 팍팍한 현실에 정직하게 몸을 부딪쳐 봅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의 원고를 시작하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