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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해 Mar 24. 2023

사이비 신도는 정신병자라는 이들에게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방영직후 다큐의 주제가 된 JMS, 아가동산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요청하고 있고, 이중 아가동산은 사이비로 단정 지을 수 없다던 98년 대법원 판결 내용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나, 나는 신이다의 피디는 상황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법원의 판결은 그만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가처분 신청 판정날 전까지 다큐멘터리의 아가동산 파트를 많이 봐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이 다큐멘터리로 다시 한번 우리나라에 사이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무렵, KBS에서 진행된 '더라이브'라는 생방송에 김도형 단국대 교수가 KBS PD, 통역사도 JMS라는 폭로를 하였다. 외국인 성 피해자들을 통역하던 사람이 성범죄에 주목을 받고 있던 JMS신도였다는 사실에 많은 공분을 샀다. 


 일반인들은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저런 것을 왜 믿는지,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만 한다. 혹시 정신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종교인들을 싹 다 욕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사이비에 빠지는 것일까? 단어부터 살펴보자. 사이비는 외래어가 아닌 한자어다. 맹자라는 책에서 나온 단어인데, 같을 사, 말이을 이, 아닐 비 : 사이비이다. 풀어쓰면 같은데, 아닌 것이다. 에어팟과 차이팟으로 비유하면 쉽다. 분명 외관상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알아보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정품이 있지만 굳이 정품이 아닌 것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기꾼이 사기 치기 위해서이다. 같은 것으로 위장을 했지만 속이 다른 것은 사기꾼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들을 속이기 위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포괄적으로 종교가 아닌, 다단계 같은 불법회사들도 전부 사이비가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이비는 사기꾼이 사기를 치기 위한 도구이다.


 사기꾼이 작정하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려는데 일반인이 혹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유튜브에서 타짜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일반인에게 기술을 시연을 하는데, 타짜를 넘어, 마술을 넘어, 마법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 심지어 일반인이 아니라 기술을 당해본 포커 챔피언은 타짜의 기술을 직접 당해보고선 회의감까지 든다고 한다. "에이, 그렇게 눈을 속이는 기술을 몇 년을 한 사람이 작정하고 쓰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안 넘어가?"맞는 말이다. 사이비는 수십 년간 단련해 온 기술로 사람들을 꼬드기고 현혹시킨다. 성경에서 말하는 뱀의 혀처럼 진실을 말하는 듯, 자신의 본심을 숨기는 사이비들을 겪게 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사이비가 가장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말'때문이다. 말은 파장의 힘을 갖는다. 시각적 착각은 실제로 본 사람만 믿게 만들지만, 말은 파장처럼 퍼져나가 들은 사람들을 믿게 만든다.


 내가 강인한 사람이라서, 내가 다른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다. 파장의 대표적인 예는 파도이다. 파도가 움직이는 모습을 단면으로 본 것이 파장이다. 해변가에 들이치는 파도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휩쓸려가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해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쓸려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모래와 같아서 혼자서는 미약한 존재이다. 주위의 사람들과 더 끈끈한 관계가 될수록 강한 힘을 갖는다. 그 주위에 있는 모래가 쓸려나간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모래는 같이 휩쓸려갈 수도,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모래들과 다시 힘을 합칠 수도 있으나, 휩쓸려간 모래는 옆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수십 년을 함께한 관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나는 저런 것에 현혹되지 않을테니까 문제없어라는 태도로 사이비를 대하면 안 된다. 그 관계가 자신의 부모, 자식, 배우자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믿음이다. 사이비를 부정적으로 보고, 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면 사이비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실제 사이비집단의 작업을 당하면 누구보다 광신도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이비에 가장 현혹되기 쉬운 사람은 종교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이다. 의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종교 같은 미신을 논리적인 이유로 격파하는 나 같은 사람이 사이비에 취약한 사람이라니.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믿음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논리적인 것을 따지는 사람들을 풀어서 생각하면 논리적인 이유로 믿는 사람들이다.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과학적으로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에 저는 믿습니다. 같은 이유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은 물을 기준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것은 인간이 공동으로 세상의 이치를 밝히기 위해 맺은 언어적 약속을 뜻한다. 이는 이치를 밝혀낼수록 규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나는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알고 있어서 신을 믿지 않는데, 내가 왜 사이비를 믿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풍선 같다. 겉으로 보기엔 커다랗지만 허점을 찔리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논리를 믿을 수 있을 만큼 논리가 탄탄하지 않다. 이미 자신이 종교는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무시해왔는데, 사이비들의 논리를 이길 수 있을 만큼 지식이 탄탄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사이비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가 한 말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도 그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의심은 물에 떨어트린 잉크처럼 퍼져나가, 까맣게 물들인다. 논리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이 까발려지는 순간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이다. 유독 우리나라에 꼰대가 많은 것은 논리를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유를 따질 때 화내는 것은 허장성세이다. 풍선은 터지는 순간 풍선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낸다. 


 징크스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있다 라파엘 나달이라는 사람은 매 경기 전 12가지의 루틴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병을 라벨이 보이게 세워놓고, 경기장 안에서 금을 밟지 않는 그를 보며 논리적인 이들은 말한다. "아니 저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무런 과학적인 증거가 없잖아."하지만 나달은 2005년 19세의 나이로 세계선수권 2위에 올랐고, 현재까지도 현역인 레전드 선수이다. 만약 나달이 테니스 유망주들을 키우며 자신의 루틴을 교육시킨다면 논리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할 것이다. 테니스 실력이 간절한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아마 다른 학원을 찾아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나달에게 배운 나보다 못하던 친구가 나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면, 테니스 실력에 대한 갈망이 강렬한 사람이라면 다시 스스로 나달에게 찾아갈 것이다. 사이비는 이렇게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을, 허술한 논리를 부수고, 가장 약해진 시점에, 그들의 삶과 관계에 있는 주위사람들부터 천천히 물들여간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나아가서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인에게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개종시키려 한다. 공룡을 이야기하고, 지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진화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은 눈만 끔뻑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신론자들은 논리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기독교신자를 이렇게 내가 알려줘도 가짜를 믿는 광신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는 아무 말하지 못해서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믿는 것에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굳이 설득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착각을 한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며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오자, 종교는 더 이상 예전의 위상을 가지지 못한다. 과학이라는 신흥종교 밑에 모두가 모이는 것이다. 그만큼 보인다는 것의 힘은 강력했다. 과학이 밝혀낸 말씀인 지식은 사람들에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게 해 준다는 믿음을 쥐어줬다. 그렇다. 믿음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다. 믿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 또한, 눈으로 본 기적을 통해 과학은 정확하다는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수많은 논문이 서로 대립되는 내용으로 충돌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과학이라 말한다.


 다시 사이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결국 사이비는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선한 종교로 위장한 뒤, 자신들이 세운 논리로 사람들을 약하게 만들고, 남들이 끌어내지 못하게 관계를 끊어내게 만들고, 말로써 자신들을 믿어지게 만든다. 아무리 강하고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사람에겐 누구나 갈망하고, 두렵고, 무서운 것이 있으니 말이다. 돈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다단계에 빠지고, 도박에 빠진다. 죽음과 현실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며 각종 방법으로 사기를 치고, 속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암담한 현실에서 우리가 현혹되지 않는 법이 있다. 바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고통이다. 그 고통이 있기에 잠깐의 해갈이 의미가 있고 행복과 기쁨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고통에서 도망가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안 된다. 술을 진탕 먹고 숙취로 힘들어할 때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 자신을 마주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비를 얕봐선 안된다. 만약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신천지나, JMS나 아기동산에 빠지게 되었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빼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이미 믿어버리게 된 사람을 내가 다시 현실을 믿게 만들 수 있을까? 태풍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태풍 안에 있는지 모른다. 그 사람을 꺼내기 위해선 내가 태풍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손을 잡고 끌고 나와야 한다. 태풍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와 그 사람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일 것이다. 아니, 아직 나는 실패할 것 같다. 그러니, 모두 함께 내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혼자두지 말자. 사이비를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결속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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