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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해 Mar 30. 2023

인생 쉽게 사는 법

  인생 쉽게 사는 법이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을 터득해 나름 쉽게 살아왔다. 이 방법을 찾게 된 것은 정말 다행히도 나는 모든 분야에 걸쳐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하루에 14시간씩 갈아 넣은 게임은 실버 등급과 킬데스 28% 정도를 유지했다. 4번 싸우면 1번 이기는 것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게임을 했다. 공부는 내신에서 수학 0점을 맞아보고, 수능은 영어 8등급을 맞았다. 20살에 군대 가기 전 인바디를 측정했을 때, 점수는 17점이었다. 근육이 없는 수준을 넘어 체지방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훗날 군대 선임들에게 내 첫인상을 물었었는데, "진짜 ㅈ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팔굽혀펴기는 무릎대고도 못한다고 했는데, 키가 크니까 거짓말하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근육만 없는 게 아니라 심각한 몸치여서 대학교 시절 스키 강습 수업 때는 가장 못 하는 사람 5명 중에서 대장을 맡았다. 나를 가르쳐주던 강사님은 급히 전화해 후배를 불러 1:1로 수업을 진행해주셨다. 2박 3일간의 여정 간 나는 밤새도록 강사님과 수업을 받았다.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 그러나 나는 나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무엇이든 못하는 게 내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마음에서 목표가 생겼다. 게임으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지 않고 싶었고, 잘한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오래 한 게임인데, 공부는 못하더라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때부터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잘해질까? 학교 가선 그런 생각만 하고, 끝나고선 pc방에 갔다. 집에 와서도 게임을 하고, 자고 일어나서는 또 생각했다. 그 결과 나는 우리나라에서 1,000명 안으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4번 만나면 3번은 이기는 사람이 되었다. 게임 방송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름 인기도 있었다. 이젠 모두가 나랑 게임을 하고 싶어 하고, 게임에 접속하면 유명 인사가 되어 귓속말이 빗발쳤다. 이것이 내가 알게 된 인생 쉽게 사는 법 첫 번째, 피드백이다.


 어떻게 하면 잘하게 될까? 답은 방향성에 있었다. 내가 왜 죽었지? 고민했다. 왜 졌을까? 저 사람한테. 한 판에 10번씩 죽으면서도 반성하지 않고 나는 생각하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만 번의 죽음을 겪어도, 2만 번의 죽음을 겪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항상 4 목숨 중에 1번만 이겼다. 그러나 왜 죽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니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였다. 당시에 실력은 없었고, 못하는 사람 컨셉으로 방송을 시작했었는데, pc방을 끝나고 집에 와서는 컴퓨터가 좋지 않아 방송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날 녹화된 방송을 보면서 내 플레이를 보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점이 많았다. 게임에 집중했을 때는 내가 이렇게 하는지 몰랐었는데, 녹화된 화면을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족했던 점을 모두 적고, 학교 가서는 개선해야 할 점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서는 개선점을 연습했다. 그렇게 3개월 뒤 나는 어느샌가 실력 있는 사람 방송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 판에 10번, 15번씩 죽던 나는 당시에 2번, 3번, 아예 안 죽는 판도 많았다. 게임을 접기 전, 마지막 죽은 횟수를 보니 10만 번이었다. 이 중에 9만 번은 아무런 발전 없이 죽었던 판이었다. 이때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고 목표를 이루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적는 피드백을 배운 것이다.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과 위치 파악이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목표가 어디인지, 내가 어디쯤인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발만 보고 걸어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중간중간 목표에 잘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한다. 내가 죽었던 9만 번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간 게 아니라, 수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게임으로 재능의 첫 번째 벽을 뚫었다. 이 세상일들이 재능이 없다고 무조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구나.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이란 것이 존재하는구나 깨닫게 된 순간이다.


 군인은 어른들이나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중학교 2학년부터 6년간 게임을 했던 나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눈치도 못 채고 어른이 되어버렸다. 군대 가면서 제일 걱정했던 것은 역시 몸뚱아리였다. 20년을 숨만 쉬고, 잠만 자고, 앉아서 보낸 내가 군대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당시 군대는 쓰레기조차 재활용해서 써먹는 곳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줄 알았지만 나는 군대 선임들에 의해 강제로 체력 증진 프로젝트를 당하고, 행정병과 육체적 노동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게임을 하면서 터득한 피드백 기술 하나만으로 한 달 안에 에이스 취급을 받았다. 물론 육체적인 것만 빼면 모든 방면에서 에이스라는 조금 긴 타이틀이었다. 다행히 체력은 꾸준히 길러져 살면서 운동 안 해본 일반인 수준으로 전역할 수 있었다. 전역 즈음에 인바디를 쟀을 때 내 점수는 48점 정도였다. 웃을 수도 있는데 나에겐 엄청난 발전이었다. 지금도 당시를 회상하면 기분이 좋다. 내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니 하고선 말이다.


 전역 날이 가까워져 오자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밖에 나가서 뭐 하지? 알바를 하게 되겠지. 서빙하고. 시급 5천 원을 받으며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해볼 수 있는 일인데.. 특별한 것이 없을까? 군대에는 전역을 하는 병장들을 대상으로 하사 계급의 계약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전문하사라는 제도가 있다. 내가 살면서 군대 간부를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이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곧바로 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나는 7개월간의 하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단언컨대 나는 이 선택이 내 인생을 가장 크게 바꿔준 사건이었다. 아직 사회인이 아니라, 느끼지 못했던 재능의 벽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줬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 쉽게 사는 법 2번째, 워크 플로우 이해하기다.


 병사는 간부를 이해 못 한다. 그리고 간부도 병사를 이해 못 한다. 내가 병사 시절엔 간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하지? 이렇게만 하고 넘어가면 안 되나? 그러나 내가 간부가 되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간부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절대적 계급 체계라는 세상 속에서 징집되어 온 병사들은 간부를 높게 생각하고 설마 나를 싫어해서 그러겠어?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순응하면서 살게 된다. 핸드폰도, 외부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는 병사들은 주위에 같이 징집되어 온 사람들에게 의존하며 살고, 외부 세계와 연결된 간부를 정말 높은 사람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 하지만 간부의 입장에서 보니 실제로 저 병사가 싫어서 어떻게 골려줄까 같은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간부들은 병사들을 군인답지 않다며 욕을 하고, 진짜 너무 하기 싫은데 윗사람이 싫어서 한다고 이야기했다. 병사들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며 병사들이랑 같은 생각임에도 윗선의 지시 때문에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 핸드폰의 차이 때문에 나는 느꼈다. 병사와 간부가 서로를 이해할 일은 없겠구나.


 물론 요즘엔 핸드폰 사용이 가능해서 군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나 때는 이랬다~ 정도의 회고록이다. 우리 부대는 조금 특이해서 부대 내에 간부가 정말 부족했는데, 내 바로 위에 1명의 간부만 있었고, 그 간부마저 항상 출장을 가는 통에 나는 다른 전문하사와는 다르게 60명을 내 마음대로 통솔하는 일을 부여받았다. 다른 곳의 상사 정도 되는 사람이랑 같은 업무를 봤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고, 사회로 따지면 어느 한 회사의 부장님 정도의 업무를 봤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은 병사 시절에 해봤던 일들이고 3가지 정도의 일일 업무를 오후 3시 30분까지만 모두 끝내면 되는 일이었다. 일을 시키려고 단상에 올라가는 순간 그때 깨달았다. 시점의 차이를. 높은 곳에서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일을 주어지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관리자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일을 지휘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병사 시절에 내가 투덜댔던 일들은 정말 내 업무 하나만 봤을 때는 합리적인 불만이었다. 하지만 일의 전체가 보이자 그 불만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그곳에서 느꼈다. 일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가 단상에선 보였다.


 내 나이에 어느 회사 부장님 직급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일을 해볼 수 있었을까? 나는 이 방법으로 앞으로 들어가는 모든 집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사장님이 되려면 사장님의 관점에서 일하라는 일화가 있다. 그냥 알바하더라도 사장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빠르게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배려다. 업무를 볼 때 내 업무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보단 내 업무 외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배려하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실무자가 아닌 장의 자리에 올라가는 순간부터는 전체를 하나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터의 현장에서 지휘를 내리는 것보단 하늘에서 지휘를 내리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즉, 윗사람들이 장의 자리를 넘겨주는 이유는 업무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서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 신입 때부터 그런 자질이 보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고, 그런 관점에서 일을  때문에 한 발자국 멀어져 워크플로우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내가 겪은 두 번째 인생 쉽게 사는 법이다. 

 

 나는 나름 군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연대장님은 전역할 때까지 개선점을 말하고 나가는 나에게 병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최우수 표창까지 주셨다. 남자들은 전역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뽕에 차오르는데 나는 오죽했을까? 복학 전에 방음부스를 같이 제작하자는 먼저 전역한 군대 선임의 말을 따라서 입사하게 된다. 그리고 첫날에 부장님은 나에게 "너는 이런 일 못할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집에 가라."였다. 별생각 없이 갔던 방음부스 회사는 2.4M 크기의 30kg에 육박하는 나무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정말 잘 할 수 있습니다. 못 미더워 하는 부장님이셨지만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 이쪽 업계 덕분에 나는 배려를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2주간 손가락을 펼 수 없고, 허리에 극심한 통증으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녔다. 그 결과 나는 7개월 뒤 하나도 힘들었던 나무판을 3판씩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방음부스 일이  3~4개월 차에 들어가던 차에 우리는 정말 부당한 일을 겪게 된다. 본사 팀에서 현장 퇴근이 아닌, 사무실 퇴근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던 것이었다. 우리는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우리는 서울 및 근교 쪽에 설치를 담당하고 있었고, 본사 팀은 군산에서 제작 및 설치를 담당하고 있었다. 본사 쪽에서 제품을 만들고 서울의 목표 지점까지 화물을 넘겨주면 우리는 서울의 지점에서 설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치가 항상 다르다. 어느 날은 강동구에서, 어느 날은 강북구에서 일을 끝내게 되는데, 어디에서 일이 끝나던지 영등포에 도착해서 인증하고 퇴근하라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일을 끝내게 되면 그곳에서 그냥 집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했었는데, 일이 빨리 끝나는 날은 2~3시쯤에 집에 갈 수 있었다. 본사 쪽 직원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우리는 6시까지 일하는데, 차별이라면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일이 끝날 때까지 퇴근을 못 하는 것이라서 밤 11시까지 일할 때도 많았다. 심지어 2~3시에 일이 끝나도 집에 가면 엇비슷하게 끝나는 날도 많은데, 운 좋게 일찍 끝나는 날과 야근하는 날이 반반이라 불만까진 없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바로 불만을 제기했고, 부장님도 심하게 욕을 하셨다. 부장님은 회사 숙소에서 지내셔서 어차피 회사에 복귀하셔야 했음에도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러나 부장님은 본사에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회사 내에서 힘이 가장 강한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자신과는 상관없어서 이야기하지 않으시는 줄 알고, 군대 선임과 나는 부장님이 너무하다고 느껴졌다.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에 우리는 다시 현장 퇴근으로 바뀌었고, 부장님과 술을 마시며 전후 사정을 듣게 되었다. 부장님도 이런 처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우리들이 시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일을 더 해도 군말 없이 해주는 애들인데, 일하는 곳이 집과 가까운 날에 조금 일찍 간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면 속초 갔다 오는 날은 어떻게 보상해주냐는 말이었다. 오히려 군산 애들이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보내다 집 가는 경우가 많지 않냐고 그것이 더 부당하다는 말씀이셨다.


 이에 나는 왜 그럼 7일이나 있다가 이야기하셨는지 묻자, 부장님은 그래도, 윗선에서 이야기했는데 그것에 대해 바로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볼 수 없는 사장님이 좋지 않게 볼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윗사람이 시켰을 때, 그대로 한 뒤에 정정 요청을 하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정정 요청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겪은 세 번째 인생 쉽게 사는 법, 존중하기이다. 이 존중하기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이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존중 받기를 원하고, 도와주기를 원한다. 자신이 이루어 낸 것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대부분의 윗선에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권위이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권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이를 존중해준다면 상대방은 나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 존중해준다는 것은 띄어주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의 말을 신도처럼 좋아하고 웃으면서 알겠다고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그 사람은 나중에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이 존중하기는 권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자부심 있는 것을 띄어주면 된다. 하지만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대부분 나보다 높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회사의 신입을 통해서 예시를 들 수 있다. 신입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사수를 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담당 사수가 알려주는 모든 것들을 정말 그대로 해라. 그것도 행복하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도 결국 마음을 열고,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싫어할 사수, 상급자는 없다.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권위의 달콤한 맛이다. 권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정의한 상대방의 장점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을 깨우치고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 제대로 들어간다. 과학 기자재 영업회사였는데, 운전이 필수였다. 하지만 나는 33살이 될 때까지 운전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고3 이후로는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사하기 전이라 출퇴근 길이 왕복 100km가 넘었다. 새벽 5시 30분이 되어 첫 운전대를 잡고 회사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 되었다. 첫 출근하는 날이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길도 잘못 들어서 첫날부터 지각에 가까웠고, 다들 내 운전에 대해서 걱정했다. 일을 배우기 위해 회사 팀장님과 단둘이 서울에 영업을 하러 가게 되었다. 운전을 못 하는 것을 아시던 팀장님은 나를 조수석에 앉히시고 직접 운전을 다 하셨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팀장님이 운전하시는 것을 정말 세세하게 하나하나 지켜봤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수첩에 적었다. 언제 브레이크를 밟고, 언제 엑셀을 밟는지, 우회전할 때 어디서부터 확인하는지, 정말 세세하게 전부 다 적었다. 팀장님은 대체 뭘 그렇게 적냐고 물으셨고, 나는 웃으면서 운전을 너무 잘하셔서 배우고 싶어서 적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정말로 운전 도사가 되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팀장님은 내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하셨다. 나는 업무 중에 생각나는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항상 팀장님과 대리님, 과장님들에게 의견을 여쭤봤다. 그리고 실제로 해봤을 때 깨달았던 점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모두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셨다. 이것이 네 번째 방법 카피하기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 자신과의 차이점을 계속해서 분석했다. 하지만 3번째 방법대로 존중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방이 했던 것들을 카피하게 되었다. 카피하기의 장점은 정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시간은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다르다. 만약 재능이 있다면 고민하는 시간이 짧고, 큰 성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나는 이런 끙끙거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선임들을 그대로 따라 하면 재능이 없어도 고민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선임들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고, 같은 고민을 헤쳐나와 그 자리에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정말 말투, 단어 하나까지 전부 적어놓고 똑같이 따라 했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걱정해도 나오지 않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3번째 방법과 맞물려서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고, 나는 더 빨리,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무작정 따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카피하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카피를 하면서 모든 것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팀장님, 대리님, 과장님 전부 영업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이 세 가지 방법을 동시에 따라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의 장점, 단점을 전부 적었다. 그 뒤에 내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자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카피하기의 가장 큰 장점은 재능의 벽을 뚫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빨리 도와준다. 그러면 더 이상 카피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할까? 마지막 방법인 레퍼런스 찾기이다.


 예술을 배울 수 없을까? 나는 당연하게도 예술적 재능이 없었다. 썸네일은 내가 스무 살 때 대학교 기말과제로 제출한 그림이다. 3개월의 수업 끝에 최종적으로 낸 그림이란 뜻이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고 거짓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 2학년, 3학년 내내 과 수석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 시절을 끝마쳤다. 교수님들도 내게 거는 기대가 꽤 있었다. 내가 예술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유튜버 홍프로님 덕분이었다. 당시에, 모션그래픽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좋아하던 유튜버가 한 달 단기 강의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청도에서 논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수업을 들었다.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때 예술을 하는 법을 배웠는데, 방식은 이런 방식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의 레퍼런스를 몇십 가지 찾는다. 그중에서 정말 원하는 방식 몇 가지를 이유로 들어 고른다. 그 뒤에 그 이유를 종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 목표를 정한다. 그 뒤에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예를 들어 생긴 것은 이것을 고르고 재질은 이것을 고르고 색깔은 이것을 고르는 것이다. 그냥 눈감고 딱 그리는 것이 예술인 줄만 알았었는데 예술도 다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알게 된 것이 내가 영업회사에 취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방법이 바로 지금 AI가 예술을 학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과장의 역할을 맡는다든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든지 말이다. 그럴 땐 대중적으로 잘된 것들의 레퍼런스를 취합해보고 장점과 단점을 적으며 정리해보면 된다. 그 뒤에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상세히 적어본다. 그러면 어떤 레퍼런스에서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조합해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레퍼런스는 다양하게 찾아봐야 한다. 위대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음악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같은 분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생각하지도 못한 전혀 다른 분야와 섞일 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리고 이젠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면서 분야와 분야를 연결하는 직업이 살아남을 것이다. 전혀 다른 레퍼런스들을 섞어서 자신의 분야에 적용시키는 것. 이것이 내가 제안하는 인생 쉽게 사는 방법 마지막이다. 이 5가지 방식이 사람이 재능이 필요한 이유이고,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벽에 가로 막혔을 때, 뚫어내는 방법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이 없어도 알아서 뚫고 나간다.


 나는 이 5가지 공식을 통해서 그래도 나름 인생을 어렵지 않게 쉽게 살아왔다고 느낀다. 어떤 집단에 들어가면 옆 사람을 따라 하고, 배운 것들을 나만의 것으로 바꾸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남들을 배려하며, 나를 항상 돌아보며 목표와 현재 위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사람들을 존중하며, 좋아하고, 대중적으로 잘된 것들과 잘된 것들을 보고 분석해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당당하게 사업을 하겠다고 홀로 나왔고, 1년이 지난 뒤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죽 쑤고 있다. 내가 인생을 쉽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나를 좋아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평가가 좋았던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원래 재능이 없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이 수렁을 뚫고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15년간 겪어온 깨달음을 이곳에 적었다. 인생 쉽게 사는 법. 지잡대에 변변한 회사 한 번 들어가 본 적 없는, 경력도, 능력도, 돈도, 재능도 없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게 웃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좋아하고, 행복하니까.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 자신 있게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다음 15년 뒤에 적을 글은 정해져 있다. 혼자서 이뤄내는 법. 모든 재능 없는 사람들이 나를 인해 흔들리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 자그마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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